참 어려움
신에 대해선 나이젤 워버턴의 책이 있지만
자유의지에 대한 철학자들의 다른 관점은 제대로 다룬 책이 없거나, 번역되어 있지 않음
풀릴 수 있는 문제일까?
그런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그래서 정답이 뭐냐?
모르지?
그러면 이게 풀릴 수 있다는 문제라고는 어떻게든 증명해줄 수 있냐?
못하지?
그러면 이거를 탐구하는 게 유용성이 있는 건지 아닌지 알려줄 수 있냐?
갈리지? 사람들끼리?
ㅅㅂ 철학 왜 하냐?
풀릴 수 없는 문제일까?
그러면 왜일까?
보통 여기서 나오는 게 "철학적 혼란"이라는 거임.
우리가 어떤 것(보통 언어)에 의하여 혼란에 빠져서 그렇지, 이거는 풀릴 수 없는 문제라고, 해결solve이 아닌 해소dissolve될 문제라고 말하는 거임.
이렇게 말하는 사람 많음.
보통 이런 사람들은 비트겐슈타인을 그의 시조로 삼음.
그런데 정작 비트겐슈타인은 좀 애매하게 대답함.
논리철학논고로 대표되는 초기에는 신의 유무에는 불가지론을 세움.
그런데 논고에서 자유의지는 있다고 봄.
6.373 세계는 나의 의지로부터 독립적이다.
여기서 세계를 따르느냐 마냐부터 각각 선이냐 악이냐, 행복이냐 불행이냐로 나눠진다고 말함.
이거를 후기인 철학적 탐구에는 바꿨음...
후기에도 철학적 혼란으로 이 일이 벌어졌다는 건 완전히 동의하지만, 거기에 이런 거는 포함이 안 된거 같아.
신의 유무에 대해선, 해석가들은 많은 사람들이 계속 불가지론적이라 하지만,
철학적 탐구 373에서 "문법으로서의 신학"이 있다고 말하는 거 봐선 자기 철학에서 신을 믿을수는 있다, 신앙을 보일 수 있다고 말하는 형태를 보였음...
자유의지는 완전히 달라짐.
철학적 탐구 174에서부터 조짐이 보이는데, "신중함"이라는 단어가 사실은 특정한 내적 체험일 뿐이라고 말함.
그리고 탐구 189-315에서 주욱 이 "내적 체험"이 언어화될 수 없는지를 밝힘. 사적 언어는 없다는 말 들어봤을 거임.
그리고 316-693까지 계속 "사적 언어"라고 생각한 원하기, 기대, 이해 같은 것이 다 공적이라는 걸 밝힘
완전 자유의지를 거부하는 거임
이것의 절정은 탐구 2부 284에서 나옴. "만약 신이 우리 마음속을 들여다보았다고 해도, 그는 거기서 우리가 누구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사적 언어는 문법을 벗어났으므로 신이 와도 이것을 접촉할 수 없다는 거고, 이거에 자유의지도 포함된 거임.
하지만 이럼에도 "철학적 혼란"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 비트겐슈타인을 시조로 삼으며 이런 논증이 헛된 거라고 말하고 있음.
뭐 사실 이게 나쁜 일은 아님.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극복 논증도 많이 제시되어서.
하지만 그래도 이런 점을 통해 말할 수 있는 건 있음.
이 문제가 진짜 어렵다는 거.
신에 대해선 나이젤 워버턴의 책이 있지만
자유의지에 대한 철학자들의 다른 관점은 제대로 다룬 책이 없거나, 번역되어 있지 않음
풀릴 수 있는 문제일까?
그런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그래서 정답이 뭐냐?
모르지?
그러면 이게 풀릴 수 있다는 문제라고는 어떻게든 증명해줄 수 있냐?
못하지?
그러면 이거를 탐구하는 게 유용성이 있는 건지 아닌지 알려줄 수 있냐?
갈리지? 사람들끼리?
ㅅㅂ 철학 왜 하냐?
풀릴 수 없는 문제일까?
그러면 왜일까?
보통 여기서 나오는 게 "철학적 혼란"이라는 거임.
우리가 어떤 것(보통 언어)에 의하여 혼란에 빠져서 그렇지, 이거는 풀릴 수 없는 문제라고, 해결solve이 아닌 해소dissolve될 문제라고 말하는 거임.
이렇게 말하는 사람 많음.
보통 이런 사람들은 비트겐슈타인을 그의 시조로 삼음.
그런데 정작 비트겐슈타인은 좀 애매하게 대답함.
논리철학논고로 대표되는 초기에는 신의 유무에는 불가지론을 세움.
그런데 논고에서 자유의지는 있다고 봄.
6.373 세계는 나의 의지로부터 독립적이다.
여기서 세계를 따르느냐 마냐부터 각각 선이냐 악이냐, 행복이냐 불행이냐로 나눠진다고 말함.
이거를 후기인 철학적 탐구에는 바꿨음...
후기에도 철학적 혼란으로 이 일이 벌어졌다는 건 완전히 동의하지만, 거기에 이런 거는 포함이 안 된거 같아.
신의 유무에 대해선, 해석가들은 많은 사람들이 계속 불가지론적이라 하지만,
철학적 탐구 373에서 "문법으로서의 신학"이 있다고 말하는 거 봐선 자기 철학에서 신을 믿을수는 있다, 신앙을 보일 수 있다고 말하는 형태를 보였음...
자유의지는 완전히 달라짐.
철학적 탐구 174에서부터 조짐이 보이는데, "신중함"이라는 단어가 사실은 특정한 내적 체험일 뿐이라고 말함.
그리고 탐구 189-315에서 주욱 이 "내적 체험"이 언어화될 수 없는지를 밝힘. 사적 언어는 없다는 말 들어봤을 거임.
그리고 316-693까지 계속 "사적 언어"라고 생각한 원하기, 기대, 이해 같은 것이 다 공적이라는 걸 밝힘
완전 자유의지를 거부하는 거임
이것의 절정은 탐구 2부 284에서 나옴. "만약 신이 우리 마음속을 들여다보았다고 해도, 그는 거기서 우리가 누구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사적 언어는 문법을 벗어났으므로 신이 와도 이것을 접촉할 수 없다는 거고, 이거에 자유의지도 포함된 거임.
하지만 이럼에도 "철학적 혼란"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 비트겐슈타인을 시조로 삼으며 이런 논증이 헛된 거라고 말하고 있음.
뭐 사실 이게 나쁜 일은 아님.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극복 논증도 많이 제시되어서.
하지만 그래도 이런 점을 통해 말할 수 있는 건 있음.
이 문제가 진짜 어렵다는 거.
자유의지도 그렇지만 결정론 비결정론도 궁금하네
그건 잘 모르겠다... 그거는 진짜 계속 불가지론으로 삼은 거 같다고 생각함
일단 논고는 불가지론 확실함 아침에 계속 해뜨는지도 모른다고 봤어
글쿠만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햄릿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 dc App
신이 없다는 증거는 나에게 내 말을 잘 들어주고 이쁜 여친이 없다는 것이다...
그건 신이 있어도 못해줘 - dc App
시바럼아 ㅠㅠㅠ
스콜라철학의 대답이 존나 깔끔한데
"자유가 증명될수있으면 그건 자유가 아니니 그냥 있다고 믿어라"
스콜라철학은 스피노자의 "이 세계 전체의 자유는 있지만 자유의지는 없다"는 말에 대항하진 못할듯?
대니얼 데닛이 자유의지에 집중하는 철학자 같던디
그러나 그에게는 데이비드 찰머스가 있었지...
철학에는 관심없어서...철스퍼거들 때문에 흥미를 잃어버림
14.138은 못만나네 ㅠ
키릴로프가 신이랑 자유의지랑 엮어서 설명하지 않았나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