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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데라가 물고빠는 야나체크 오페라 중에 하나(암여우였나 예누파였나)는 이렇게 결말이 남

주인공이 사랑을 쫓아다니다 허탈함을 깨닫고 풀밭에 앉아있는 와중, 연못에 개구리가 뭔 일이냐고 말을 걸기 시작하고 설명해주려던 찰나, 오케스트라의 음악에 주인공의 말이 묻히면서 소란스러워지다 끝나버림

비평가들은 이걸 구조적으로 불완전하다 깠다는데 쿤데라는 구조의 완성도라던가 그런 걸 인정 안하는 사람이다 보니 그런 의견은 쓸데없다 무시하고 오히려 우스꽝스럼이 가미된 목가적인 향수를 머금은 장면이라고 극찬을 해버림

쿤데라의 소설 미학도 이런 식임. 어떤 웅장한 멋진 감동적인 장면보다는 아이러니가 가미된, 하지만 약간 비웃음이 나면서도 따뜻함이 느껴지는, 그리고 살짝의 허무감과 무의미함이 느껴지는 그런 장면들


농담 마지막은 버림받은 사람들이 다시 결합하고 소박한 연주회를 열다 야로슬라프가 실려나가는 거로 끝남

만약 여기서 연주회만 열다 끝났으면? 마치 아직 소중한 가치가 남아있다는 것처럼 보였을 거임. 야로슬라프가 쓰러지기만 했다면? 버림받은 가치 속에서 떠나가는 인간의 비극성이 돋보였겠지.

쿤데라는 이 두 가지 모두 거부하기 위해(왜냐하면 둘 다 삶의 탐구보단 억지스런 주장에 가까우니) 이 둘을 합쳐버렸다 생각함. 마치 아직 소중한 것들이 남은 것처럼 보이는 와중에 여기에 죽음이 끼어들며 훼방을 놓는 거임. 그 장면도 이걸 어떤 감정으로 부각시키기 보단 멀어져가는 추억을 회상하듯 아련하게 끝내고(위에 얘기한 오페라의 결말처럼)


쿤데라는 항상 무언가를 결론내리지 않음. 참존가에서 키치를 까다가도 인간 삶에서 키치는 분리할 수 없다고 인정함. 이 사람에게는 그때그때 장면마다의 탐구가 중요하지 이걸로 확실한 결론을 내리는 건 소설의 역할이 아니라고 무시해버림.

농담의 결말도 이를 보여주기 위해 여러 감정적 상황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게끔 합쳐버린 채 관조하는 시각에서 보여준 거라 생각함. 거기에 본인 취향인 우스꽝스럽고 목가적이면서 향수를 자극하는 보헤미안 감성을 잔뜩 담은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