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의식 민족주의


소개


‘우리 안의 파시즘’, ‘대중독재’ 등을 제시하며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이분법에 문제를 제기한 역사학자 임지현 교수의 희생자 의식 바로보기. 한국과 일본, 폴란드와 독일을 넘나들며 ‘순수한 희생자’라는 이데올로기의 위험성을 낱낱이 파헤친다. 침략자에 저항한 역사를 강조하면서 자신들의 가해를 망각하는 작업을 통해 피해자 입장만을 강변하는 태도는 진정한 정의와 평화를 가로막는다. ‘기억 연구자’이자 ‘기억 활동가’ 임지현 교수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를 정확하게 비판함으로써 전 세계적인 기억의 연대를 만들고자 한다




일부내용 발췌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가 전제하는 가해자와 희생자의 이분법적 세계관에서는 식민주의, 제노사이드, 홀로코스트 등을 근원적으로 비판할 수 없다. 그것은 식민주의와 홀로코스트를 낳은 세계사의 규칙을 비판하고 바꾸기보다, 규칙은 그대로 둔 채 패자의 자리에서 승자의 자리로, 희생자의 자리에서 가해자의 자리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겠다는 욕망을 낳기 쉽다.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희생자가 된 역사에 대한 회한과 비판에서 출발하지만, 자리를 바꾸어 승자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면 식민주의와 홀로코스트의 규칙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식이다. ‘세습적 희생자’라는 의식에서 벗어나 자신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역사적 성찰이 21세기 문화적 기억의 서사적 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해자가 먼저 용서를 빌어야 한다는 통념을 깨고 피해자인 폴란드가 먼저 용서를 주도한 사목 서신의 전복적 상상력은 역사 화해에 미온적인 전후 독일의 사과를 끌어내려는 고도의 정치적 메시지였다. 가해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폴란드 주교단의 메시지를 받은 독일 주교단은 좌불안석의 심정으로 어떤 식으로든 용서를 빌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대국적으로 보면, 폴란드-서독 간에 대화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편지는 대성공이었다.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 1970년 폴란드-서독의 국교 정상화, 1989년 서독 수상 헬무트 콜과 폴란드 수상 타데우쉬 마조비에츠키(Tadeusz Mazowiecki)의 평화 메시지 교환, 오데르-나이세 국경선의 국제적 재인정과 독일 통일, 폴란드의 유럽연합 가입 등 숨 가쁘게 탈냉전의 역사를 거치면서, 이 사목 서신의 역사적 의미는 점점 중요해졌다. 편지는 가톨릭의 문화에서 개인의 영역에 머물던 용서의 의미를 국제정치의 영역으로 옮겨놓았다.




서로 경합하는 기억의 연대는 특정한 기억 아래 다른 기억을 위계적으로 줄 세우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기억의 연대는 지구적 기억구성체에서 서로 다른 기억이 만나고 얽히면서 생성되는 불협화음을 비판적 긴장 관계로 유지하는 데서 출발한다. 희생의 기억을 탈영토화하여 ‘제로섬게임’적 경쟁체제에서 벗어날 때, 자기 민족의 희생을 절대화하고 타자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 뒤에 줄 세우는 기억의 재영토화에서 벗어날 때, 그래서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를 희생시킬 때, 기억의 연대를 막고 있는 장벽이 터지면서 지구적 기억구성체는 삐걱거리면서도 다양한 기억이 합류하여 흐르는 연대의 실험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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