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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고르는 사변으로 기독교를 설명하려는 시도에 저항한다. 기독교는 이성과 논리로 변호되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헤겔 식으로 보편적 개념을 통해 기독교가 이해되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죄의 개념이다. 죄는 단독자가 신 앞에서 짓는 양심의 문제이지, 인류 일반의 것으로 정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죄는 이성이 결코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키르케고르는 이 책의 서문에 분명히 명시한다.
"이러한 종류의 글(기독교의 교화적인 글)은 어떤 관점에서 아무리 엄밀하다고 할지라도. 이러한 종류의 냉담한 학문적인 글과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것이다."


이 글은 이성적으로 종교를 증명하고 규명하려는 글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정반대로 이성이 종교를 증명하고 규명하려는 시도를 비판하는 글이다. 종교는 단독자의 차원에서만 이루어지는 일이지 보편자의 차원에서 규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흔히들 니체가 신을 죽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종교의 입장에서 종교를 학문(철학)과 결별시키고자 한 시도는 키르케고르가 처음일 것이다. 종교는 개인의 신앙심과 반성의 문제이지 규명해야 할 보편적 세계관, 인류관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키르케고르는 강력히 주장한 것이다.


창조과학과 같은 행위는 키르케고르적 관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된다. 신앙은 세계를 이성으로 규명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신앙은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의 자신에 대한 반성이다. 신도가 진정으로 신을 믿는 것은 그가 진정으로 신의 사랑을 느끼고 신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지, 신의 섭리를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며, 그럴 수조차 없다.


그런데 창조과학을 주장하는 사람은 신에게의 사랑을 표현하는 대신 신의 존재를 이성적으로 규명하려고 한다. 사랑이란 일체의 논리를 초월하고 있는 것이며, 이것이 종교의 본질이다. 그런데 창조과학의 주장자는 본질인 사랑이 아니라 사변으로 종교를 표현한다. 그것은 학문이 할 일이지 종교가 할 일이 아니다. 키르케고르적인 입장에서 창조과학 주장자는 진정으로 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신을 이해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키르케고르는 분명한 업적을 남겼다. 신앙으로부터 학문을 분리한 것. 그것은 21세기, 과학의 시대에 신앙이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세계를 사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과 사랑을 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