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2020년과 2021년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해라고 단언하더라도 과언이 아니다.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거의 대부분의 시설을 이용할 수 없으며, 늦은 새벽 시간대에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는 행위 역시 일체 금지되었다. 2019년에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이러한 행정적인 규제 외에도 사람들의 생활 곳곳에 스며든 많은 것들은 코로나의 영향력에 의해 힘없이 휘둘렸으며, 문학 역시 이로부터 예외는 아니었다. 많은 독서가들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뒤흔든 현실과 유사한 현상이 등장하는 고전 작품들을 찾아 읽었다. 『데카메론』이나 『페스트』는 실제로 범세계적 전염병과 유사한 묘사가 있었던 덕분에 매출액과 대출 횟수가 유의미하게 상승했다. 그리고 사실상 작품의 배경에서만 유사점을 찾을 수 있는 『데카메론』과는 달리, 오늘 이야기할 『페스트』는 전염병의 진행에 따른 시민들의 반응이 현실의 코로나 바이러스의 진행과 상당히 유사한 덕분에 더더욱 많은 이목을 끌 수 있었다.
『페스트』에서는, 코타르를 제외한 대부분의 주요 인물들이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페스트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사랑 등의 관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랑베르, 사회에 만연한 살인 행위에 격렬하게 저항하는 타루, 의사의 직분을 다하는 리외, 신앙심과 견줄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파늘루, 자신이 수행할 수 있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랑과 아들을 잃는 슬픔을 겪은 오통까지, 이들은 이들의 사상과 결심 시기는 모두 각기 다르더라도 결국 페스트의 종식을 위해 힘을 합쳐 적극적으로 저항한 사람들이다.
나는 카뮈가 자신의 사상을 독자들에게 뚜렷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공들여 감추어놓았던 서술자의 정체를 작품의 후반부에서야 밝혔다고 생각한다. 서술자이자, 작품의 주인공격인 등장인물 리외는 작품에 등장하는 그 누구보다도 고결하고 초인적인 사람이다. 그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안타까워했으며, 자신의 의사라는 직책과 성실성이라는 선천적인 성품을 매개삼아 인격적인 부분에서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모습을 작품 내내 고수했다. 만약 서술자의 정체가 리외였다는 사실이 작품의 초반부에서 드러났다면, 리외의 가장 큰 자산이자 장점인 성실성이 다른 등장인물들이 중요시하는 관념을 짓누르는 듯한 형태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성실성이라는 관념 자체는 카뮈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했던 것과 약간은 동떨어져 있다.
카뮈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개개인의 관념과 가치관에 상관없이 위기 상황에 대처할 때는 사람들 간의 협력과 이해라는 형태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페스트』의 주요 인물들은 전부 중요시하는 것이 다르다. 리외는 이 각양각색의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의 구심점 역할을 해주긴 하지만, 그것이 리외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른 사람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앞섬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리외는 자신의 사랑을 위해 오랑을 떠나겠다고 선언한 랑베르를 십분 존중했다. 만약 랑베르가 오랑을 성공적으로 떠난다면, 오랑의 바깥에도 페스트균이 퍼질 가능성이 생겨버리기 때문에 ‘의사’ 리외의 입장에서는 이를 만류하는 것이 직업 윤리상 맞는 행동이지만, 리외는 랑베르를 만류하기는커녕 오히려 그의 뜻을 존중해주었다. 오통의 아들이 병에 걸려 힘없이 죽어갔을 때도, 이러한 질병을 신의 뜻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던 파늘루 신부에게 죄없는 어린아이가 고통을 받으며 비참하게 죽어버린 것 역시 신의 뜻이었냐며 따지기도 했지만, 이후 신부에게 특별한 앙금을 쌓지 않은 채로 그와 같이 성실히 보건대 활동을 수행했다. 신념과 가치관의 우열함을 따지는 것은 적어도 재난을 극복한 다음의 일이다. 누군가가 일반적인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사상을 간직하고 있더라도, 눈앞에 당면한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꺼이 팔을 걷어 올리는 사람이라면 그 사상마저도 존중받아야 마땅하다고 카뮈는 생각했으리라.
앞서 말했듯 카뮈는 개인 신분으로는 도저히 맞서기 힘든 재난 상황이 사람들의 눈앞에 닥칠 때, 공동체들 사이의 협력이 무조건적으로 필요하다고 보았다. 현재는, 2021년의 상황은 어떤가? 물론 현재 시점에서의 코로나 바이러스는 『페스트』의 페스트만큼은 위협적이지 않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의 갑작스러운 발흥과 전파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꾸준히 보여줬던 태도와 대응은 분명 이기적인 행동보다 이타적인 행동이 눈에 띄었다고 생각한다. 『페스트』의 전염병이 어느 순간 갑자기 물러간 것처럼, 코로나 바이러스 역시 우리 인류의 협력과 따뜻함에 힘입어 성공적으로 물러나는 날이 빠르게 도래하길 기원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