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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었다. 백성들의 가산이 축나고 추위와 청군에 의해 맥없이 죽어나갈 때도, 문재(文才) 있는 당하관들이 충정과 목숨 사이에서 갈팡질팡할 때도, 당상관들이 각자가 중요시하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공연한 언성만을 앞세울 때도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었다.



 병자호란이라는 전쟁은 주로 주화파와 척화파의 대립이라는 관점에서 다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명분보다 실리를 앞세웠던 주화파들이 척화파들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았었지만, 친명배금이라는 당대 조선의 스탠스를 이해시켜줄만한 충분한 전후 상황의 설명과 만력제에 대한 재평가가 어느 정도 활발하게 이루어진 현재에는 두 진영의 주장은 서로 반대되었더라도 그 뿌리는 나라를 진정으로 생각한 충심에서 동일하게 비롯되었다는 관점이 대세가 되었다. 청에게 굴종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일찌감치 직시한 최명길과 임진왜란 당시 명으로부터 입었던 보은을 잊으려야 잊을 수 없었던 김상헌. 많은 사람들은 두 사람의 사상과 행동은 상이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이 두 사람 사이의 우열을 심도 있게 논쟁하려기보다는 둘 모두를 병자호란 당시의 대표적인 충신들로 여기는 편이다.



 조선의 지배층에만 국한되었던 이 통상적인 이분법과는 달리, 김훈은 삼전도의 굴욕이라는 국가적 치욕 밑에 짓눌려 알게 모르게 신음하던 백성들에게 주목했다. 그는 조정의 명운과 백성의 명운을 동일시하지 않았다. 남한산성에서 지속적으로 생계를 꾸리던 토박이들의 입장에서는 임금과 청군 모두가 자신들의 삶을 핍박하는 불청객이었다. 산성 밖의 백성들은 주둔한 청군들에 의해 노예로 부려지고 살해당했지만, 산성 안의 백성들이라고 하더라도 편안한 삶을 향유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우유부단한 인조와 현실을 애써 외면한 채 임시방편에 가까운 대안만을 쏟아내는 관료들에 의해 무의미한 희생을 강요받았다. 인조와 대신들, 군병들이 성 주변을 에워싼 청군들과 함께 남한산성을 떠난 후, 대장장이이자 지역 토박이인 서날쇠가 먼 훗날 있을 어린 아들의 혼례를 생각하며 빙긋 웃는 대목에서 『남한산성』이 마무리되었다는 사실은 조정의 높은 사람들이 산성을 떠난 이후에서야 백성들이 비로소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는 것을 강하게 시사한다. 국가 간의 전쟁은 대개 권력자들 사이의 불화와 갈등에서 비롯되지만, 그로 인해 삶을 침범당한 민간인들은 통수권과 외교권을 지닌 권력층들이 받은 피해에 가려 좀처럼 조명을 받지 못하는 법이다.



 공교롭게도 『남한산성』의 배경은 바로 직전에 읽었던 카뮈의 『페스트』와 매우 흡사하나,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서로 크게 동떨어져있다. 카뮈는 최대최악의 전쟁이었던 2차 세계 대전을 페스트라는 과거의 전염병에 빗대 『페스트』에 녹여냈다. 그는 『페스트』를 통해 범국가적 재난에 맞선 여러 평범한 사람들의 단결성과 헌신을 찬가했지만, 김훈은 『남한산성』을 통해 무능하고 우유부단한 권력층에 의해 핍박과 피해를 받은 평범한 사람들의 처지를 안타까워했다. 두 작품의 지배층은 유능한 면모가 단 한 번도 부각되지 않았다고 단언하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시종일관 무능한 모습을 보였고, 그로 인해 평범한 시민과 백성들이 느끼는 고통은 더더욱 가중되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작가가 작품에 담아내고자 한 메시지가 상이하기 때문에 작품의 결말 역시 서로 다른 측면이 부각되는 편이다. 『페스트』의 결말은 격렬한 시민들의 투쟁 끝에 되찾은 평화를 집중적으로 조명하지만, 『남한산성』의 결말은 전쟁의 원흉들이 산성을 뜬 다음에서야 힘겹게 평온을 찾은 백성들을 조명한다. 카뮈와 김훈은 충심이라는 같은 씨앗으로 각기 다른 꽃을 피운 최명길과 김상헌처럼 흡사한 소재를 차용했지만 각기 다른 방향의 사상과 결론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 이후, 이 최악의 전쟁에 발을 담그던 수많은 국가들은 전쟁이 군인들만의 일이 아님을 뼈저리게 실감하게 되었다. 이 시기의 기술력과 전쟁 규모가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전과는 비교도 될 수 없을 정도로 커지면서, 민간인 희생자의 수가 군인 전사자의 수를 아늑히 추월해버렸다. 특히 전쟁의 막바지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두 개의 원자폭탄은 전쟁이 더 이상 군인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높은 비율의 민간인 피해자들로 보증했다. 원폭 투하의 결정 자체에는 많은 이견이 있으나, 일본 군부가 이미 기울어버린 시류를 읽지 못했다는 점은 특별한 대책 없이 남한산성에서 농성하던 인조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시대가 나아가면서, 지배층의 판단착오는 민간인들의 더 큰 피해로 이어지게 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권력층의 책임 소재는 날이 가면 갈수록 커져만 간다는 것이다. 단 한 사람의 무능함과 부패함이 수백만 내지 수천만 명, 심지어는 수억 명까지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지배층은 자리에 맞는 책임감과 능력이, 시민들은 진영논리에 함몰되지 않은 채 어떤 리더가 나라에 더 적합한 인물인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더더욱 중요해졌다. 이는 벌써부터 시끌시끌하게 입방아에 오르는, 내년에 있을 대선을 많은 국민들이 주목해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