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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의 만엔 원년의 풋볼 (1967)을 읽었다
개인적인 체험을 그냥 저냥 봐서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웬걸 만엔 원년의 풋볼은 개인적인 체험 싸다구를 후려칠 정도의 완성도와 몰입감을 가지는 갓작이었다
노벨상 크라스를 확인할 수 있었던 갓소설이었다
소설의 백미는 중반 이후 부터인데 골짜기의 1860년과 1960년이 거울상 세계라는걸 독자에게 되풀이에 되풀이를 하고 나서다
이야기는 형과 동생, 폭력을 혐오하는 형이 동생의 폭력성을 관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막바지로 치달을수록 더 이상 동생의 이야기가 아니라 형의 이야기가 시작이 된다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며 형이 생각하는 두 세계의 거울상 같은 관계에 균열이 일어난다
100년전 마을의 봉기를 일으킨 증조부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 아닌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면서다
만약 소설이 단지 백년 전후를 대비하며 100년전 사건이 100년후에도 되풀이 된다는, 폭력은 반복된다는 주제에 그쳤다면 범작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설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폭력성이라는 것이 세계를 향한 진취적인 태도일 수도 있다는 것으로 발전한다
전후의 패전국에서 외부인, 타자의 점령에 대해 비굴한 태도로 고립된 골짜기 주민들을 일깨우는 것은 동생 다카의 물리적인 폭력성이고
형 미츠와 같이 무력감에 빠진 전후의 지식인이 물리적인 폭력성에 대해 혐오를 드러내지만 동시에 자신에게도 흐르는 그 폭력성에서 허무로 빠지지 않고
세상에 도전하는 삶의 태도를 발견한다
내가 월남전에서 자행된 한국군의 만행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밝혀야 한다면 나는 더이상 한일 관계의 피해자 역할을 할 수는 없고 마냥 자기 혐오로, 비관적인 태도로 일관할 수는 없다
미츠가 다카의 씨앗을 키우기로 결심한 것처럼 폭력을 혐오하는데 그치지 않고 내 안의 폭력성에 대해 인정하고, 과거의 사실, 역사에 대해 인정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살아가는게
살아남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역사에 대한 가장 정중한 태도이자 반성일 것이다
용기는 사실을 말하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실과 함께 살아가는 데 있다
주제를 떠나서 소설이 완성도가 있고 캐릭터들이 다양해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동생 따라다니는 농촌 청년 호시오 캐릭터가 좋았다
쿨찐 지식인인 주인공과 다르게 호시오는 대가리를 굴리지는 않지만 경험을 통해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직관이 있고, 의리가 있다
일본인 특인건지 아리까리한 말 하면서 상대방 떠보고 관심법 쓰는 거 그로 인해 파생하는 중2병스러운 내면 묘사와 심리 추리쇼만 꾹 참고 적응하면
노벨상 크라스를 느낄 수 있다
막판에 형이 명탐정 코난 빙의해서 동생이 살인자가 아님을 추리하는 장면은 너무 오글거렸다...
오랜만에 본 잘 쓴 소설이었다
난 초반에 하차할뻔 ㅋㅋ 전후 일본의 광기와 폭력성 그리고 그 회복가능성 제시까지 다룬 오에 문학의 정수인거 같음. 나도 인상깊게 읽었음
그런데 왜 그 혁명의 대상이 하필 조선인인지가 궁금함. 참 기이한 지점인듯.
가해자로서의 책임을 끌어안고 불길을 걷는 캐릭터를 위해서 한국인을 등장시킨 걸수도요. 님이 말한 베트남전의 책임처럼...
강제 동원돼 잡혀온 조선인이 골짜기 땅을 사들이고, 소비재로 마을 경제를 틀어쥐고 쇼군처럼 군림하는게 아마 제국주의 식민 침탈에 책임을 느끼는 일본 지식인의 어떤 반성 아닐까여.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시절과는 반대의 상황이 됐으니까여. 이게 한국인이 보기에는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역할의 역전이지만, 일본 지식인의 입장에서, 일본 민중은 자신들을 지배하는 계급의 존재에 딱히 저항하기보다는 그냥 무력하게 받아들이는 수동성을 비판하는 거 같기도 하구요. 혁명이란 것의 내용이 웃기는게 프랑스 혁명마냥 대상을 단두대로 보내는게 아니라 기껏해야 물건 훔쳐가는 정도의 소소한 것이고, 그나마도 값나가는 것은 마을 사람 전체에 분배가 안되니까 전전긍긍하다가 다시 조선인 천황이 나타나니까 공손하게 돌려주는게 웃기져
오에는 패전 후에도 책임지지 않는 일본 사회의 지배계급과 의심없이 새로운 지배계급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타자를 만들어 자신들의 지위를 공고히 하려는 일본 민중의 수동성을 비판한 거 같아요
그렇군요. 항상 보면서 의문이었던 부분인데. 그래서 이 소설이 혐한좌익이라는 기이한 지점에 있다는 평가도 좀 있었던거 같아요. 그런데 말씀하신거처럼 오히려 한국인을 그 위치에 등장시킴으로써 여러 효과를 얻을 수 있을것 같네요. 뭔가 그것에 의해 소설 구도 전체가 뒤틀어지는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