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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는 조선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격동의 시기였다. 조선에서는 영조와 정조가 집권하면서 중흥기처럼 보이는 시대를 만들었고, 서양도 미국 건국과 프랑스 혁명 등 정치 혁명이 일어나고 계몽주의가 유럽을 지배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많은 사람들이 서양과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했으면서도 조선은 실패한 이유를 궁금해한다. 실제로 이 문제는 많은 학자들도 의문을 가지고 연구하는 주제이다. 


여러 관점에서 본 다양한 연구가 존재하지만 적어도 이 책을 읽고 필자가 느낀 차이는 틀의 공고함 차이였다. 


조선은 이미 통치구조상으로 너무나 단단한 성리학과 사대부 국왕의 나라였다. 따라서 학문과 사상의 변동도 성리학이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졌고, 개혁적 사상을 내비쳤던 학자들조차 성리학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헌창의 지적처럼 인적 자원의 성장은 동 시기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았으나 성리학 일변도라 해도 좋을 획일성이 우수한 인적 자원의 이용을 막았다. 


결국 탈중화를 꿈궜지만, 결국 탈중화를 하지 못하는 소중화 의식처럼 결국 조선은 자기 것을 생산해내지 못했다. 반면 ㅇ일본은 성리학적 틀이 공고화하지 않았기에 고학과 국학, 난학 등의 다양성이 발달할 수 있었다. 


이 차이는 이 책의 마지막 논문에서 정조와 루이 14세를 비교할 때 더욱 두드러지는데, 문제가 많았던 구체제를 지도자 한 사람의 역량으로 끌어갔던 두 군주는 비슷한 점이 많았지만, 조선과 프랑스의 이후는 전혀 딴판이다. 


조선은 이후 세도정치를 거치며 무너졌고, 프랑스는 불완전하고 문제가 많지만 신체제를 출범시켰다. 이 차이를 가른 것은 지식의 다양성이었다. 프랑스는 인쇄술의 발달로 지식인들의 여러 견해를 담은 저서가 민중들에게 읽히고, 그 결과 민중이 일정한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었던 반면, 획일화된 조선 사상계는 외부의 충격을 받아들일 준비가 부족했다.


비록 나의 거친 생각일 뿐이지만 오히려 조선은 너무나 공고한 정치, 사상적 시스템이 오히려 독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