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돕스의 냉전 3부작을 전부 읽었다. 그리고 소련의 마지막에서 허망함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1945>에서 스탈린의 소련이 어떻게 타협할 수 없고 믿을 수도 없는 적으로 점차 변해갔고, <1962>에서 흐루쇼프의 소련이 미국과 발을 맞춰 한 발씩 뒤로 물러나던 모습을 떠올리자니 더더욱 그렇다. 확실히 돕스의 3부작은 단순한 역사책보다는 조금 더 서사성이 살아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1991>은 소련의 느리지만 분명한 죽음을 천천히 따라간다. 브레즈네프가 살아 있던 시기, 아프가니스탄에 개입하기로 결정하며 끝없는 수렁에 빠지던 일과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이 점차 자유의 물결에 젖던 순간부터 시작해, 더 이상 눈 감고 있을 수만은 없을 때까지 무너져내리는 소련을 재차 되살리기 위해 고르바초프가 서기장에 오르던 순간까지. 이 순간, 독자가 역사를 알고 있는 것만 아니었다면 소련에 무언가 새롭고도 의미 있는 햇빛이 비출 것이라 예상했을지도 모른다. 허나 그렇지 않다. 그러기에는 소련은 이미 몇 십 년의 세월 동안 너무나 많은 업보를 짊어졌고, 이제는 그것들을 되갚아야 할 시기가 찾아왔을 뿐이다.



체르노빌은 소련의 취약점을 너무나 절묘한 시기에 찔렀다. 소련의 산업 구조, 은폐를 위한 언론, 그리고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숨길 수는 없게 된 바깥 세상까지. 가장 우스운 것은 정작 체르노빌 사태에 대한 소련식 부주의한 대처가 그 당시 체르노빌을 방문했던 고위직까지 방사성 물질에 노출되도록 야기했다는 점이다. 더 이상 이런 방식으로는 나라를 이끌 수 없었다. 자유 같은 서방 세계의 기준을 굳이 넣지 않더라도, 경제적으로, 그리고 산업적으로.



고르바초프라는 인물의 어쩔 수 없는 이중성 역시 체르노빌 사태로 드러나고야 만다. 물론, 그는 당시 소련 공산당에서 개혁 의지를 가장 강렬히 불태우던 이들 중 하나다. 허나 그럼에도 그는 공산주의자였고, 공산주의자에게는 공산당과 나라를 이끌 전통적인 방식이 있었다. 돕스는 고르바초프를 언급할 때 있어서 늘 이 점을 지적하며, 공산주의자의 태도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전통적인 강령에 대한 준수와, 최대한 많은 것들을 남에게서 숨기려고 하는 은폐 선호적 정책들을 탓하곤 한다. 덕분에 그는 다른 공산주의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체르노빌 사태를 모두에게 빠르게 알린다는 선택을 고르지 않았고, 국내 시민과 해외 언론이 그를 규탄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슷한 일들이 몇 번이고 변주된다. 고르바초프의 개방성은 소련 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격려했고, 국외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좋아했지만, 정작 소련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시민들조차 그를 믿지 못했다. 임기 이후로 점차 가라앉기만 하는 경제와, 높아지는 자유에 대한 열망을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하는 엘리트주의적인 공산주의자에 대한 염증이 강해진 것이다. 허나 슬프게도, 돕스는 이 모든 일들을 지적하면서도, 고르바초프가 그런 사람이었기에 이런 식의 소련 해체가 가능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가 끝까지 공산주의자의 방식을 버리지 않았기에 비로소 (마지막에 있었던 무산된 쿠데타를 제외한다면) 내부의 큰 저항 없이 소련 공산당이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힘을 잃어갈 수 있었던 것이라고.



예정된 죽음을 향해서 가는 사람의 모습은 늘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