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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데서 메마른 바람이 불면 연기가 나부끼곤 했다.
이따금 경운기가 지나고,
늙은 걸음이 요추가 구부러진 채 느릿느릿 대답 없이 재잘댔다.

도시로 나오며, 경계심을 가득 품은 눈길은
언제나 가장 도회적인 것을 향해 거리를 두고 서 있었다.
에곤 실레와 프로이트와 기타와 맥주와 미술관 따위에 향하여
거리를 두려 억지를 부리며 삼투압처럼 스며갔던 것이다.

학자들의 이름을 되뇌인다.
니체, 훔볼트, 프란츠 보아스, 레비스트로스, 푸코, ...
어조는 어느새 갈수록 느려지다가
붓다, 노자, 그리고 부르디외에 이르러 가장 폭력적이 되었다.

그렇다,
그들은 발가벗기는 취향이었다.

그 간의 껍데기가 가버려야 하는 순간이 되자
나는 더 이상 ‘조합(composition)’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이제는 안녕을 고해야 하는 걸까, 의문이 유성처럼 스쳤다.
플랭크랄까, 스쿼드랄까.
그 운동들이 노리는 ‘코어’라는 것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이 살아난 즈음이다.

시가를 시작하면서도 이것이 내 아비투스,
그러니까 새로운 껍데기,
또는 브랜드 택 붙이기에 지나지 않을는지 걱정했다.
그러나 그건 걱정할 일이 아니다.
이미 그러한 것.
행위의 출발은 의도이고,
많은 경우에 그 의도로부터 나는 스스로 자유롭지 못하다.

시가의 좋은 점은 느리다는 것이다.
조루처럼 2분 만에 폭발하는 끽연이 아니라,
미적미적, 식기를 기다리는 커피처럼 아껴 태운다.

속물이어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얼러본다.
추하지만, 말해보자면
이 역시 빠는 일 아닌가, 모정의 부족이 발현한.

기대만큼이 아닌 섹스로도 충분한,
베드토크 끝에 희뿌연 잠듦처럼,
연기가 나풀대고 있다.

사르고,
살고,
사라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