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민폐덩어리 괴짜가 주인공인 작품의 경우, 독자를 주인공에게 몰입시키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주인공이 맡은 악역 역할을 성공적으로 다른 인물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이 방면에서 가장 유명한 『돈키호테』를 한번 살펴보자. 1편에서 무고한 양떼를 도륙하고 이발사의 대야를 빼앗아 쓴 트러블메이커 돈키호테는 2편에서는 공작 부부의 노리갯감으로 전락되어서야 비로소 악역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이는 돈키호테의 안타까운 최후에 독자들이 공감하고 슬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독자들은 주인공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면서 자연스럽게 주인공에게 몰입하고 공감하기 마련이다. 주인공이 악하거나, 눈치가 없거나, 타인에게 민폐를 지속적으로 끼친다면 그만큼 독자들의 공감을 사기 힘들 것이다.
물론 소설의 주인공이 독자들의 공감을 무조건적으로 사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쉽사리 이해되지 못할 발상과 사상을 내비치는 등장인물이 충분히 매력 있는 인물로 여겨지는 경우도 결코 드물지 않다. 다만 오늘 이야기할 『바보들의 결탁』의 주인공 이그네이셔스 라일리는 본연의 매력보다는 거리감과 이질감이 물씬 느껴지는 인물이기 때문에 맡은 악역이라는 배역을 다른 인물에게 떠넘길 필요가 있었고, 작가인 존 케네디 툴은 이그네이셔스를 둘러싼 다른 인물들에게 부정적인 색체를 가미함으로써 성공적으로 악역 교체를 해냈다.
괴짜 이그네이셔스 라일리는 작중에서, 그리고 독자들에게서 전혀 호감과 공감을 사지 못할만한 인물이다. 과도하게 뚱뚱한 체구, 계절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촌스러운 옷차림, 어머니에게 얹혀사는 무능력함, 다른 사람의 말을 수용할 줄 모르는 쇠고집 등 이그네이셔스는 그를 사람 대 사람으로서 바라볼 때 긍정적인 면모는 거의 찾을 수 없다시피 한 인물이다. 작중의 거의 모든 트러블도 이 사람에게서부터 기인했으니 그에게 천덕꾸러기 이상의 평가를 내리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이그네이셔스는 작중 내내 시답잖은 이유를 대가며 트롤링과 악행을 자행했기 때문에 그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작품의 후반부에 위치한 이그네이셔스의 결여된 줄만 알았던 인간미가 엿보이는 사연 – 반려견의 죽음에 슬퍼하는 이그네이셔스를 어머니 라일리 부인을 비롯한 그 어느 누구도 공감하고 위로해주지 않았다는 사연이 밝혀지고 나서야 비로소 독자들이 이그네이셔스에게 공감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툴은 악역 교체뿐만이 아니라 이그네이셔스가 한껏 꼬아놓은 여러 사건들도 너무나도 쉽고 간편하면서 참신하기까지 한 방법으로 단숨에 해결해버렸다. 이 대목은 『바보들의 결탁』의 핵심과도 같은 부분이기 때문에 직접 책을 보고 느끼길 권한다. 결과적으로 아들 이그네이셔스를 거추장스럽게 생각했던 라일리 부인은 아들에게서 해방되었으며, 알게 모르게 계속 구박을 받으며 살던 리바이 씨는 아내가 쥐고 있던 가정에서의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었다. 멀쩡한 일자리를 갈구하던 존스는 번듯한 직장과 상을 받을 수 있었고, 퇴직을 손꼽아 기다리던 미스 트릭시는 드디어 지긋지긋한 회사를 때려치울 수 있었다. 몽상가 머나는 구제불능의 이그네이셔스를 구제하고 있다는 망상을 이어갈 수 있었고, 어딘가 어수룩하고 허술해 보이는 경찰 맨큐소는 음란물 유통업자를 구속하는 공훈을 세워 천덕꾸러기 신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그네이셔스가 중심이 돼서 발생한 갈등과 불만들은 툴의 원숙하고 참신한 전개 덕분에 너무나도 세련된 방식으로 순식간에 잠재워졌다.
사실 사연 단 하나만으로 이그네이셔스의 수많은 민폐 행적이 나름대로 존중받게 되었다는 관점을 억측이라고 바라보는 독자도 있을법하다. 죽은 개를 애지중지하던 이그네이셔스에게 어머니 라일리 부인이 보인 행동이 상식에서 과도하게 벗어난 반응도 아니었을 뿐더러, 어머니와 이그네이셔스의 관계가 틀어졌다고 해서 이그네이셔스가 다른 이들에게 행한 괴악한 행동들에 면책특권이 내려져야만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충분히 있을법한 이러한 의문점은, 작품에 산적한 트러블들이 알렉산더가 단칼에 찢어버린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한순간에 일소되어버린 직후에는 아무래도 좋을 일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여러 갈등을 빚던 이그네이셔스는 작중 드러났던 갈등이 거의 봉합되었을 때 집을 떠남으로서 어머니와 자신 사이의 마지막 갈등을 해소시켰다, 드디어 혼자만의 삶을 살 수 있게 된 어머니 라일리 부인도, 잦은 핍박에서 벗어나 생전 처음으로 여행다운 여행을 떠난 이그네이셔스도 불편한 동거를 하던 시절보다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아무튼 이그네이셔스는 마지막 책임을 졌다. 일반인들과 좀처럼 섞이지 못한 그는 그와 필적할만한 괴짜 머나와 도주하는 것으로 마지막 책임을 졌다. 그만의 방식으로 책임을 진 이그네이셔스를 보다 온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나.
나 이 소설이 미국의 문송합니다를 그려낸 것 같았음 - dc App
얘는 과 이전의 문제같긴 해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