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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의 부조리, 저항, 사랑 3기획 중 저항에 속하는 소설 작품이다.

작은 항구도시 오랑에 갑자기 페스트가 들이닥친다. 페스트는 선인과 악인을 가리지 않고 그들에게 죽음을 안기고, 곧 하루에 수 백명의 희생자를 만들어내며 한 구덩이에 시체를 한꺼번에 파묻는 지경까지 이른다. 페스트라는 개인으로서는 저항할 수 없는 거대한 재앙에 한 명 한 명의 개성과 중요성이 사라지고 각자의 일생에 한 번 뿐인 죽음이라는 이벤트도 개인을 주인공으로 만들 수 없었다. 그 거대한 부조리는 시민들을 익명화한다.

페스트는 오랑 시민들에게 귀양살이의 감정을 안긴다. 시민들은 페스트로 폐쇄된 도시에서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넋두리를 호소한다. 페스트에 의한 단절은 생각보다도 오래 가는 것이어서, 육 개월이면 끝날 거 같다고 생각한 시민은 육 개월이 지나자 절망하고 아예 그런 희망을 버리고 헤아리길 단념한다. 그것은 동시에 그 재앙이 사라질 적을 생각하길 그만두면서 페스트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순간 또한 사라지게 되고, 오랑 시민들은 페스트의 절망을 자신들 정신의 독버섯으로 방치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의 낙심은 주변 사람들과의 교감 또한 끊어놓았다. 누군가가 자신의 절절한 사연과 고통을 큰 맘 먹고 펼쳐놓으면, 상대방은 그것에 공감하기보다 뻔하고 흔한 수사로 교감의 시도를 끝내버리는 것이고, 결국 그들 모두가 타인과 교감하기를 포기한 채 그러한 뻔한 말들이 오가는 장 위에서 안 받느니만 못한 위로를 주고받을 뿐이다. 이렇게 단절된 도시 오랑에서 시민들은 종교와 우상에도, 교감에도 뜻을 놓은 채 술과 향락에 빠져든다. 순응하지 않을 수 없는 어려움은 개인들을 자신에 맞춰 굴복하게 만든다.

의사 리유는 뫼르소에 이어 카뮈가 제시하는 부조리한 인물로 보인다. 그는 신 같은 절대적 우상은 믿지 않는다. 신을 믿지 않는데 왜 그렇게 헌신적이냐는 질문에, 자신은 신이 있다면 수고는 그만두고 신에게 다 맡겨버리겠지만 전적으로 그렇게 포기하는 이는 없기에, 신을 믿지 않고 이미 창조되어 있는 세계를 거부하며 힘이 닿는 데까지 투쟁할 뿐이라고 말한다. 또 그 투쟁의 승리가 일시적일 뿐이라도, 그것이 싸움을 멈출 이유는 되지 않는다고 역설한다. 그에게 페스트라는 압도적인 부조리는 '끝없는 패배'다.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환자를 치료할 뿐이다. 그에게 의사라는 직업은 자신이 부조리와 재앙과 싸우기 위한 방법이다.

"우리는 신성모독이나 기도를 초월해서, 우리를 한데 묶어주는 그 무엇을 위해 함께 일하고 있어요, 그것만이 중요합니다. 당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함께 그것 때문에 고생을 하고 그것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적인 살인을 반대하는 타루와 우스꽝스러운 이상을 가진 선량한 그랑은 보건대에 헌신한다. 서술자는 그렇다고 보건대에게 대단한 칭찬을 보내지는 않는다. 그에 따르면, 그들은 해야 할 일이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그 보건대는 '영웅적인 점이라고는 전혀 없다'. 작품 내내 영웅주의는 긍정적인 맥락과는 거리가 멀다. 부조리한 의사는 인간은 가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페스트에 저항하는 것은 영웅주의와 관계가 없으며, 성실성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에 따르면 그저 자기가 맡은 직분을 완수하는 것이다. 소설에 꼭 영웅이 있어야 한다고 누군가가 우긴다면 차라리 보잘것 없고 선량한 마음과 우스운 이상밖에는 없는 그랑이 그 영웅이어야 할 것이다.

페스트에 직면한 마을 그랑의 인물들은 각자 자신들의 가치를 가진 채 페스트에 저항한다. 신부 파늘루는 페스트 또한 신의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의사 리유의 진료를 거절하고 페스트에 걸려 최후를 맞이하지만, 페스트가 들끓는 장소에서 사람들과 함께했다. 사랑이라는 관념을 첫째로 여기는 기자 랑베르 또한 애인과 재회하기 위해 몰래 마을을 탈출하기로 한 계획을 포기하고 보건대에 투신하고 끝내 페스트가 종식될 때까지 견뎌내어 사랑을 쟁취한다. 부장검사의 아들 타루는 자신의 아버지에 의해 사형판결 된 피고인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을 죽게 하는 것을 거부하겠으며, 페스트 또한 그 중 하나라며 페스트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보건대를 처음으로 구성해 재난과 싸운다. (그 또한 영웅보다는 그저 인간이 되는 것이 자신의 관심사라고 리유에게 말하며, 처음으로 서로 교감하며 해수욕을 한다.) 타루와 반대로 법의 준엄함을 숭배하는 예심판사 오통도 법원에 휴가를 내고 자원봉사 사무원으로 싸우다 감염되어 죽는다. 모두 다른 것을 좇고 살아가지만, 페스트라는 거대한 재앙 앞에서 힘없는 개인은 서로 연대하여 페스트와 싸워나간다.

페스트는 끝이 났지만, 그것이 의사와 보건대의 공헌이 컸다고는 말하기 어렵지 않나 싶다. 페스트는 그들의 노력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는다는 듯 그저 자신의 목표를 달성했다는 듯이 종식을 기념하는 도시 오랑의 축제통과 대비되는 몇 명의 희생자를 끝으로 사라졌다. 개인들은 거대한 어려움 앞에 하나되어 싸워나갔다. 그것은 무질서한 프랑스에 혜성처럼 등장한 나폴레옹처럼 걸출한 일인이 영웅으로 나타나는 문제라기보다는 단지 힘없고 작은 그들이 해야만 할 일을 할 뿐인, 성실성의 문제였다. 자신이 어떤 신을 믿고, 어떤 관념을 가장 우선시하는지는 큰 문제가 아니다. 그것을 가슴에 품고도 연대한 개인들이 세계에, 혹은 그에 필적할 만큼 거대하게 느껴지는 무언가에 저항하는 것만이 중요하다. 저항이 성공하는지 실패하는지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별개로, 사무원 그랑은 어리석게 여겨지고 유치한 예술가의 꿈을 꾼다. 또 순진한 모습으로 여인 잔을 사랑한다. 그럼에도 꿋꿋이 순박한 마음으로 해야 할 일을 해나간다. 그가 페스트로 죽을 지경에 처했다가 살아났을 때, 원고를 자신이 죽을 줄 알고 태워버렸음에도 머릿속에 있다며 다시 쓸 수 있다고 낙관하는 모습은, 모든것이 원점으로 돌아갔음에도 다시 한 번 해보겠다는 시지프 같다. 나이들고 움츠려든 몸의 그도 여전히 부조리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내 사랑스러운 그가 죽음을 맞이하지 않음에 안도했다. 출판사 직원들이 그의 원고를 읽고 '모자를 벗고 경의를 표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