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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디스토피아 소설의 선구자격인 작품이다. 나는 이 책보다 이 책을 다룬 여러 독후감들을 먼저 접했었는데, 대부분의 독후감들이 『우리들』과 디스토피아 장르 안에서 명작들로 칭송받는 오웰의 『1984』와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사이의 연관성에 주목한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우리들』을 읽고 나니, 왜 이 책을 읽은 선발주자들이 연관성에 주목했는지를 여실히 알 수 있었다. 그만큼 『우리들』이 디스토피아라는 장르에 끼친 영향력은 지대하다.
『우리들』과 『1984』 사이의 공통점도 상당히 많지만, 그보다는 『우리들』과 『멋진 신세계』 사이의 공통점이 더 크고 많아 보인다. 지엽적인 부분에서의 공통점이 더 눈에 띄는 전자와는 달리, ‘자유냐 행복이냐’라는 화두를 이야기의 공통적인 중심 줄기로 삼는 후자가 더 유사하게만 보인다. 『우리들』의 화자 D-503(이하 D)은 자유를 제한하면 제한할수록 행복의 크기는 커진다는 단일제국의 가치관을 믿어 의심치 않던 모범시민이었으나, 제국에 반기를 든 레지스탕스의 일원 I-330(이하 I)에게 홀린 후 자기가 믿어 의심치 않던 기존의 가치관이 점차 허물어짐을 느낀다. D의 I를 향한 사랑과 집착이 커질수록 그는 점점 더 대담하고 적극적으로 제국의 규칙과 통제를 따르지 않았으며, 이 반항은 제국의 지도자인 ‘은혜로운 분’과 대담하게 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체제와 행복을 열심히 저울질하던 D는 은혜로운 분이 감히 천칭의 한편에 체제와 행복을 함께 달아버린 것을 전혀 반박하지 못했다. 그는 결국 제국이 권장하는 뇌수술을 받았으며, 레지스탕스의 계획을 전부 밀고한 후 I의 처형식을 무덤덤하게 지켜보는 것으로 단일제국의 완벽하고 충직한 개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D가 겪은 일련의 과정은 『멋진 신세계』의 존과 버나드의 행적과 사뭇 비슷해 보인다. 체제에 대한 의문, 체제에 대한 나름대로의 저항, 지도자와의 대담, 저항의 실패, 그리고 이 과정을 관통하는 ‘자유 없는 행복, 행복 없는 자유’라는 가치관까지. 두 작품의 디테일은 사뭇 다르더라도 작품의 전개, 그 중에서도 특히 중후반부의 전개는 거의 판박이 수준이다. 『멋진 신세계』의 작가 올더스 헉슬리가 『우리들』이 자신의 작품에 끼친 영향력을 공식적으로 부정했던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우리들』의 영향력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오웰과『우리들』과 매우 유사한 소설을 쓴 헉슬리가 디스토피아의 한 획을 그은 거장들이기 때문에, ‘만약 자마찐이 한창 격동하던 시기의 소련이 아니라 이들처럼 정세가 안정된 민주주의 국가에서 태어났더라면 더더욱 좋은 대접을 받지 않았을까‘라는 근거 없는 가정이 마냥 근거 없게만 들리지는 않는다.
『우리들』은 물론 인지도라는 측면에서 저 두 작품들에게 크게 뒤진다. 하지만, 인지도의 우열만으로 작품의 우열을 따질 수 없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알지 않은가? 『우리들』 역시 확실하고도 개성적인 장점이 있다. 『1984』와 『멋진 신세계』를 포함한 여타 디스토피아 소설들과 차별화되는 『우리들』만의 장점은 다름 아닌 작품의 분위기에 걸맞은 다소 건조하고 딱딱한 문체다. 내 개인적인 취향에는 다소 벗어나있는 문체지만, 『우리들』이 개인 대신 단체를 중요시하는 단일제국의 열렬한 추종자, D의 일기 형식을 취한다는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자먀찐이 선택한 문체만큼 『우리들』에 어울리는 문체는 없다고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다. 대상의 내면보다는 기하학적인 외견에 주목하는 문체, 사견과 감정을 일체 배제한 것 같은 건조하고 무감각한 문체. 이러한 문체가 세상에 단 하나만의 수요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들』의 몫이다.
장르문학의 선구자들은 21세기의 현대인들의 시선에서는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선구자들의 참신함은 후발 주자들에 의해 남용된 나머지 일종의 클리셰로 굳어버리기 일쑤고, 이 클리셰가 보다 도발적인 후발 주자들에 의해 비판의 도마에 올라 마구 비틀어지고 헝클어지는 일 역시 대수롭지 않게 일어난다. 우리는 선구자들을 평할 때 21세기의 관점을 채택하기보다는 작품의 출간이 독자들과 작가들에게 끼친 파급력을 기준으로 삼아야한다. 과학 기술이 수많은 전공자들과 소비자들에 의해 발전하는 것처럼, 장르 역시 수많은 작가들과 독자들에 의해 발전한다. 현재는 초라한 신세의 발명품을 최초로 만들었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 발명품들이 한때 시대를 풍미한 적이 있는 물건들이라면 오늘날 충분히 존중받는 것처럼, 장르의 선구자들 역시 장르에 끼친 영향력이 컸다면 그만큼 오늘날에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날 실크로드를 잘 이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장건의 이름이 빛바래지 않는 것처럼, 오늘날의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이유로 쟈마찐의 위대함을 깎아내리는 일이 없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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