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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온 이광수의 중단편집이다. 여태까지 읽어본 이광수 작품은 '무정'이 전부였는데, 급 뽐뿌와서 일겅보았다. 작품 하나하나씩 감상을 적어보고자 한다.



1. 무정

: 이광수가 장편 '무정'을 집필하기 약 7년 전 완성한 단편이다. 장편보다는 분위기가 훨씬 어둡고, 문제의식의 범위도 다르다. 장편 '무정'이 조선 전반에 걸친 다방면의 계몽이라면, 단편 '무정'은 '정략 결혼'에 집중되어있다. '정략 결혼'에 관해서 이광수는 매우 부정적이다. 장편 '무정'에서 세 인물이 자유 연애를 하듯 이광수는 자유 연애를 적극 옹호하였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부모가 맺어준 결혼은 허울 뿐인 가짜 사랑이고, 자유 연애만이 남녀간 진정한 사랑이라는 의미다. 

 이러한 작가의 가치관에 비추어, 소설 속에서는 정략 결혼으로 서로 무관심했던 남편에게 무시당하고 결국에는 첩에게까지 밀려난 본처의 비극적인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2. 소년의 비애

: 이것도 역시나 '정략 결혼'에 관한 단편인데...딱히 흥미로운 부분은 전혀 없었다. 제목 속 '소년'인 '문호'는 문학에 재능이 크고, 사촌 동생인 '문해'는 철학에 관심이 크다. '문호'는 자신의 사촌 여동생인 '난수'가 문학에 큰 재능이 있다 여겨 매우 아낀다. 가족 간의 선을 넘을랑 말랑하는 장면들도 보이긴 하는데, 그건 넘어가도록 하고...

 아무튼 이 '정략 결혼' 때문에 '난수'는 얼굴도 모르는 남편에게 시집을 간다. 그렇게 가족이 다 함께 처가에 들른 남편의 얼굴을 확인하는데...제목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도록 하자. 다시 말하지만 '소년'은 '문호'이다.




3. 어린 벗에게

: 내 생각에 이게 가장 최악의 작품이지 않았나 싶음. 이광수 본인의 뇌피셜 자랑 시간이었다. 상해에 유학 중인 '나'가 조선에 있는 벗에게 보내는 서간체 형식의 소설인데, 이야기에 앞서 주제의식이 너무 나대는 소설이다. 이야기 좀 진행하다가 가르침 투척. 이야기 좀 진행하다가 가르침 투척. 

 이야기는 작가의 주장을 역설하기 위한 소재로 밖에 안 쓰인다. 물론 수단으로서 이야기가 쓰일 순 있지만...극적인 사건도 일어나긴 하지만 너무 작가 본인의 주장을 전파하려 치중했다는 생각 밖에 안 든다. 이건 소설이 아니다.




4. 방황

: 일본에 유학 중인 '나'가 다다미 깔린 기숙사에서 몸살 앓고 가만히 누워 '죽음'과 '미래'를 걱정하는 내용이다. '미래'에 관한 그의 걱정이 꽤나 눈여겨 볼만한데, '나'는 본인이 일본에서 열심히 수학하여 조선으로 돌아가 국가를 위해 온몸 바쳐야 한다는 일념에 사로잡혀 있다. 이것은 사실 이광수 본인의 생각이지 않나 싶다. 그런 이가 친일 운동의 선봉장이었다는 사실을 보면, 동경 삼재도 인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5. 가실

: '가실'은 옛 설화에 나오는 인물의 이름이다. 해당 설화는 '가실'이라는 남자가 이웃에 사는 '설 씨녀'를 사모하였는데, 어느 날 그녀의 아버지가 군사로 징집되었다는 이야기를 듣자, 그는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를 위해 자신이 아버지 대신 군사로 징집되어 나가겠다고 한다. 그리고 1년 뒤 돌아와 혼례를 치르기로 약속하였다. 허나 3년이 되도록 그는 돌아오지 않았고, 아버지는 딸에게 이만 다른 남자와 결혼하자 이야기 하였으나 딸은 끝까지 거부한다. 결국 시간이 예상보다 오래 흐른 뒤 돌아온 가실은 설씨 녀와 결혼하여 백년해로했다는 이야기이다.

 단편 스토리는 설화와 똑같다. 근데 내가 진짜 개빡치는게 하나 있는데, 해당 단편에서는 전쟁에 참가한 가실에게 끊임없이 설 씨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는 바깥 소식이 들려오고, 그 진위가 끝날 때까지 안 밝혀진다는 점이다. 이광수 장난치냐? 가실이 본국으로 돌아가는 데서 바로 끝내면 어떡하냐고, 뒤질래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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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거룩한 죽음

: 동학의 지도자 최제우를 모티브로 삼은 단편. 그냥...동학을 위해 최제우가 순교하는 내용이다. 그냥 말 그대로 동학을 위해 거룩한 죽음을 맞이하는 이야기다..패스...동학에는 관심이 없어서




7. 무명

: 이광수도 계몽적 의도를 빼고 쓸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었다. 작가가 실제로 옥에 갇혔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으로, 주인공인 '윤 씨'가 옥 중에 병에 걸려 병감으로 옮겨지고, 그 곳에 거주하는 수감자들과 겪는 해프닝들로 이루어져있다. 사실 이전 단편들은 죄다 설화, 민담 속 전형적인 인물의 경향이 강했는데, 해당 단편에서는 좀 더 현실적이고 입체적인 인물이 등장한다는 점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당시 열악한 상황을 통해 독자들의 비위를 상하게 하는 솜씨도 꽤 탁월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묘사는 '남은 쌀밥에 남은 반찬을 섞어 침 묻은 젓가락으로 휘휘 저은 다음, 그걸 쓰던 행주에 넣어 이리저리 누르고 떡을 만들어, 맛있어 보이는 부위는 본인이 먹고 남은 부분은 다른 수감자에게 준다'는 것이었다. 디테일하게 묘사하기에 현실적이다. 차라리 이런 느낌으로 이광수가 소설을 쭉 썼더라면 작품 주제, 표현의 폭이 더 넓어지지 않았을까?




8. 꿈

: 이것 역시 '조신 설화'를 바탕으로 한 중편이다. '조신 설화'는 그래도 꽤 알만한 사람들이 있을텐데, 원님의 딸에게 사랑에 빠진 스님이 관세음보살 상 앞에서 사랑하는 이와 맺게 해달라 비는 와중 잠이 들었는데, 꿈 속에서 산전수전 다 겪고 깨어나 무상의 깨달음을 얻고 큰 스님이 되었다는 설화이다. 내용 역시 동일하다. 다행히도 이 작품은 완벽하게 결말을 맺었다. 가실 같은 트롤 짓을 할까 겁이 났다. 130쪽이나 되는 중편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이광수는 이 작품을 집필할 당시 불교에 심취했다 한다. 해설을 읽어보면 작가 본인이 친일한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그림자와 같이 따르는 업보를 따돌릴 수 없다'라는 작중 메시지를 이 소설에 담아낸 것 같다고 한다. 

 아이러니한 건, 작가 연보를 살펴보면 이 작품을 낸 1939년은 김동인과 함께 친일 활동에 참여하고 친일 문학 단체인 조선문인협회 회장이 되던 때이다. 정말 이광수가 죄책감을 느낀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해설이 이광수에게 쉴드 쳐주는 것일 수도 있다...진실은 이광수만이.....아무튼 이 중편을 읽으며 꽤나 마음에 들었던 구절로 감상을 끝내본다. 

 '중생이 사는 곳에 죄가 있어서 나라가 있는 곳에 옥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