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까는 글이 올라올 때까지만 해도, 신경 안썼었는데

너무 오래, 너무 자주, 너무 어리석고 한 편으론 오만한 의견들이 올라오는 것 같아 몇줄 쓴다.


비유를 통해 이야길 시작해보겠다.


낚시에 대한 책이 한 권 있다 치자.

이 책의 독자는 낚시를 처음 시작해보려 하는 초심자이다.

혹은 책을 읽는 것만으로 낚시의 세계를 이해했다고 섣부르게 생각해버리곤,

어딜 가서든 "낚시란 말이야~" 운운하며 만족스러워 하고는 

자신들의 등 뒤로 꼿히는 비웃음의 시선은 애초에 예상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 이라고 폄하해도 상관없겠군.

책의 내용은 당연히 입론 수준의 것이다.

생물학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의 역사 따위가 아니라

때로는 지나치다 싶을만큼 간추리거나 비약한 수중 생물의 생태,

지은이의 개인적 취향에 따라 취사선택된 낚시 방법, 추천 낚시대, 미끼 따위겠지.


이런 책이 비난받아야 하는 상황은 다음의 경우일 것이다.

1. 책이 유도하는 행위 자체가 보편적인 도덕, 사회의 법과 규칙에 어긋날 경우

이를테면 <가내 대마초 재배에 대한 넓고 얕은 지식>같은 경우 쌍욕과 함께 법적 처벌을 받아야겠지.


2. 책의 내용과는 다른, 과장되거나 명백히 거짓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제목을 붙이거나 광고를 하는 경우.

이를테면 이 책의 제목이 <한 권으로 끝나는 세상 모든 지식에 대한 완벽하고도 깊은 담론>이거나 <인문학 박사 논문 작성과 학위 획득을 하기에 충분한 넓고도 깊은 지식> 따위라거나. 이런 건 명백한 기만행위니 존나 까야한다.


3. 책이 독자들 모두에게 분명한 악영향을 주거나, 악영향을 주기 위해 기획되었고 실제로 그러할 때.

위의 1.에서 예를 든 마약재배 서적이나, 낚시 서적에서 '쓰고 남은 떡밥은 꼬박꼬박 낚시터 물에다 버리고 오자' 따위의 소릴 지껄이는 경우가 그러하겠지.


이것 외에 더 있나? 내 짧은 생각으론 없을 듯 하군.


우선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라는 책이 목적하는 바는 제목에서 여실히 드러나듯

'인문학'이라는 넓은 학문적 바다에 대한 호기심을 느끼는 독자들을 위한 기초 입론서로서의 역할이다.

자, 무엇인가를 '알고 싶어한다'라는 욕구 자체가 비난받을 일인가?

더군다나 그 '알고 싶어하는' 욕망의 대상이 옆집 자취녀의 욕실 풍경이나 성생활이 아니라

인문학적 지식인 경우에도 그 욕망 자체가 비난받아야 하는 것인가?

한 명이라도 많은 인구가, 서양철학사나 사회학의 대략적 계보나 주요 사상가들의 사상을 

일부분이라도 알고 있는 것이, 그 반대의 경우보다 명백하게 해로운 것인가?

당연히 해당 도서가 목적한 의도는 도덕, 규칙, 법에 합치할 뿐만 아니라, 

무식과 반지성주의에 점령된 헬조선을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두 번째, 책의 내용 역시 제목과 작가 의도에서 명시한 내용 그대로를 담고 있다.

깊이있는 성찰? 탐구? 그런 것 없다. 옷가게로 비유한다면 트렌디한 편집샵과 같은 느낌이지.

하지만 얕게 아는 것 자체가, 혹은 얕은 앎을 통해 지적 세계에 입문하는 것 자체가 문제일 수는 없다. 

세상의 모든 학문에는 소위 입론, 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아인슈타인도 자연수 체계와 사칙연산부터 수학을 배우기 시작했고,

피카소도 뎃생부터 그림을 배워나가기 시작했을 것이다.

입론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거나 비난하는 논리는 5살된 아인슈타인 앞에

고차 방정식을 들이미는 덜떨어진 행동과 전혀 다를바가 없다.

그러는 인간들도 다들 처음엔 입개론서로 책 읽기 시작한 주제에.


세 번째, 이 책의 내용이 독자 중 상당수에게 악영향을 미치는가?

한번 읽기만 하면 독자들의 100%가 교양 속물이 되고 마는 무시무시한 악마의 책인가? 

아니지. 이 책에서 그런 의도성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컨텐츠를 소비한 인간들의 행동에 대한 책임은 그들 각자에 있지.

컬럼바인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들이 마를린 맨슨과 fps게임의 광팬이었다 하더라도,

해당 뮤지션과 게임 개발자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처럼,

지대넓얕을 읽은 독자들 중 어느 덜떨어진 것들이 페북에서, 인스타에서, 트위터에서,

지식인 코스프레를 하고 솔직히 절반도 이해하지 못한 문장들을 찍어올리며 삽질을 한다고쳐도

그 책임을 저자에게 물을 수는 없는 법이다.

이건 사실 저자의 탓이 아니라, 그 개개의 인간들이 덜떨어진 탓이거든.

사실 책을 잘못 이해하는 사례는 소위 말하는 고전에서도 너무나 자주 일어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자살한 머저리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신적 사랑과 관용을 설파한 예수의 <신약성서>를 읽은 유럽인들이 얼마나 많은 악마적 살인과 맹신을 저질렀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생산적 비판이라는 게 있고, 비생산적이고 멍청한 비판이라는 게 있다.

<지대넓얕>을 위에 나열한 이유들로 까는 것, 심지어 안읽고 인상 비평 정도의 근거만 가지고 까는 것, 

구체적인 책 내용상의 오류 하나 제시하지 못하면서, 매일같이 똑같은 개소리로 비판하는 것은

모두 한심하고,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하지 못하는 지적 사다리를 걷어차려는 저열한 오만함에서 기반한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지대넓얕>이라는 팟캐스트와 출판이 불러일으키는 선작용은 그들이 지적하는 소소한 부작용보다는 훨씬 크다고 생각한다.

항진명제만 되풀이하는 철학 자체의 한심함과 번역 역량의 부재 때문에 실제보다도 난해하게만 번역된 인문과학책들,

그 허접한 벽돌로 쌓여진 딱히 올라갈 마음도 들지 않는 한심한 상아탑 안에서 

잘난 척, 심원한 척, 근원적 진리라도 알고 있는 척 하던 먹물들이나, 

그런 먹물들도 아닌 주제에 좆도 아닌 학문적 엄숙함에 동조해 까고 자빠진 일부 독갤러들 보다는

헬조선의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인문학을 알리고

허세든 인스타용이든 사람들을 '인문학'에 접근하게 만들고, 인문학적 대화를 나누는 것을 일종의 트랜디한 유행으로 만들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지대넓얕은 칭찬받아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솔직히

김도인 썰푸는 것 듣고 명상 배우러 다니거나

채사장 음모론 썰들에 경도되어 진실이라고 믿거나

이독실 썰듣고 '어머, 기독교는 참 괜찮은 종교인 것 같아. 나도 이번 주 부터 교회가서 저런 오빠 있나 볼까?' 생각하거나

깡쌤 썰듣곤 "대한민국은 정말 죽창 말곤 답이 없구나!!" 생각해버리는..


팟캐스트나 텍스트를 인간적 호감, 재미가 있다는 이유로 일체의 비판, 자주적 사고의 과정없이 

절대적 진리로 믿어버리는 인간들은............ 좀 안타까운 건 사실이다.. 그러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