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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전 시대를 아우르는 최고의 소설가일 뿐만 아니라, 파스칼과 키에르케고르 류의 대단히 위대한 종교 사상가이면서 변증법적이고 실존적인 사상가이기도 하다. 그의 표현 도구는 철학자나 신학자의 것이 아니라 이야기꾼의 것이다. 하지만 긔의 인물들의 이런저런 경과와 열띤 토론드 ㄹ속에서 그는 인생, 종교, 그리스도교의 최고의 문제들 ㅡ 신앙의 무신론 문제, 하느님의 실존 문제, 악의 문제, 육화와 구속 문제, 삶과 죽음의 문제, 영혼과 불멸의 문제, 교회와 가톨릭 교회의 문제 등 ㅡ 과 활기차고 열정적으로 대결한다. 그리고 인간 마음의 모든 감정들과 수많은 격정들을 고집스럽게 파헤치고 있다. 발작적 긴장, 대재앙의 음산한 분위기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주제들[인물들]을 끊임없이 소용돌이치는 광란적 전개 속으로 몰아간다. 이 인물들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도덕 세계 전체처럼 유연하지 못하고 측량할 수 없으며 극단적이다. 고문하는 천사적 인물들이고,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타락한 영혼들이다. 또한 모두 해방의 열망으로 살려는 미친 듯한 갈증으로 충만하다. 지상적 사랑을 통하여 사람은 신적인 사랑, 은총에 다다른다. 이 은총이 죄인에게 주어지는 이유는, 그가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니라, 고통을 겪었고 회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질서와 평온의 유순한 행복을 위해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악, 미움, 진흙, 절망, 번죄 등으로 값을 치른, 하느님 안에서 구원이라는 초인간적 열락(悅樂)을 위해서 창조되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신학 세계는 심층적으로 종교적이지만, 가끔은 의심의 폭풍에 시달리는, 그러나 어느 순간 그리스도 안에서 안전한 항구와 구원의 닻을 발견하는 영혼의 세계를 보여 준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관한 작업 노트의 강력한 고백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의 힘을 얻게 된 한 영혼의 도약을 잘 표현한다. "내가 그리스도를 믿고 고백하는 것은 어린이와 같은 것이 아니다. 나의 '호산나'는, 이 소설에서 악마가 말하는 것처럼, 커다란 의심의 도가니를 통과했다." 소설가가 그리스도에게 매달리게 된 것은 어린이의 경우처럼 손쉽거나 은혜로운 신앙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그를 파멸에서 구원하셨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의 밑바닥에 머물렀었고, 그를 파멸에서 구원하셨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의 밑바닥에 머물렀었고, 그를 비참하게 만들기도 하고, 그를 드높이기도 하는 격정들을 경험했다. 그는 무신론과 공범인 사회주의의 행보와 심연을 샅샅이 조사했다. 그는 인간의 질문에 관해 모든 해답을 탐색했고, 단 한 가지 해답밖에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이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상실한 모든 것을 속량하고 구원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고유하고 진정한 신비학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업적으로부터 비추어 나온다."[I. Tilliette, Filosofi davanti a Cristo, Brescia, 1991, p.299.]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베드로와 함꼐 단신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라고 고백한 다음에, 도스토예프스키는 온 힘을 다해 열정적인 도약으로, 불타는 사랑으로 그분께 매달린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그의 완전한 신뢰와 온전한 의탁의 태도는 진지하고 감동적이다. 잘 알려져 있는 것들 가운데는 1854년 폰 위신(von Wisin) 부인에게 보낸 편지가 있다. " ... 나는 그저 속세의 사람, 불신과 의심 ... 으로 가득 찬 사람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게는 온통 분명하고 거룩한 신경(信經)이 형성되었습니다. 이 신경은 매우 단순합니다. 자 보세요! 저는 그리스도보다 더 아릅답고 더 심층적이며 더 마음에 들고 더 합리적이며 더 힘차고 더 완전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믿습니다. 그저 단순히 없기만 한 것이 아니라, 질투 어린 사랑으로 단언컨대, 있을 수도 없습니다. 또한 설령 누군가가 그리스도는 진리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제게 입증하거나, 또는 실제로 진리가 그리스도 바깥에 있다고 하더라도, 저는 진리보다는 오히려 그리스도와 함께 머물고자 할 것입니다."

방금 전 인용구 가운데 "또는 실제로 진리가 그리스도 바깥에 있다고 하더라도, 저는 진리보다는 오히려 그리스도와 함께 머물고자 할 것입니다."라는 마지막 구절이 과르디니(Guardini)를 비롯하여 많은 학자들에게 걸림돌이 되었다. 그러나 그 구절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진리에 대해서 갖고 있던 개념에 따라 이해되어야 한다. 그에게 진리란 과학적, 수학적, 계량적, 대상적, 추상적, 그리고 검증 가능한 것이어서, 삶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둘에 둘을 더하면 넷이 된다. 이것은 삶이 아니고, 죽음의 시작이다."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중요한 진리는 계량되는 진리가 아니라, 결단의 대상이 되는 진리이다. 즉 자유와 결단에응답을 요구하는 진리이다. 가장 중요한 도스토예프스키 연구자들 가운데 하나인 베르자예프(N. Berdjaev)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의 진리를 사법적이고 이성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은 자유의 길에서 벗어나 강제의 길로 넘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십지가에 못 박힌 자유, 골고타의 종교, 곧 자유의 종교를 확신하고 있는 채로 남아 있다." 다른 곳에서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에 대한 믿음을 하느님이며 인간인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부터 분리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 온 일생에 걸쳐 그는 그분의 신적인 얼굴을 향한 어떤 배타적인 감정, 일종의 고양된 사랑을 유지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무한한 사랑 떄문에, 반(反)그리스도교적인 이본주의적 세상과 결별했다. ... 언제나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빛난다. 그에게는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빛이다. ... 그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어둠 속에서 빛이 재발견된다는 것과, 또한 신적인 형상과 실체가 가장 몰락한 한 개인 안에서도 재발견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어 한다. ... 도스토예프스키는 어둠 속을 뚫고 우리를 인도했지만, 어둠에 마지막 말이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 그리스도의 빛은 세상을 정복했고, 어두운 모든 구석을 비춘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그리스도교는 음울한 그리스도교가 아니라, 빛나는 그리스도교, 사도 요한의 그리스도교이다."

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의 그리스도교는 정교회의 그리스도교, 강하게 논쟁적인 핏빛 그리스도교로서, 이 위대한 러시아 소설가의 눈에는 무신론보다도 더 나쁜, 인류의 최악의 원수가 될 정도로 복음을 변조시킨 가톨릭 교회에 대하여 뼛속 깊은 증오를 품고 있다. 『백치』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무신론보다 더 나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 무신론은 그저 '무'를 설교할 뿐이지만, 가톨릭 교회는 그곳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자신이 헐뜯고 능욕하는 변조된 그리스도를 설교한다. 완전히 뒤집힌 그리스도이다! 단언컨대, 맹세하건대, 가톨릭은 '그리스도의 적'(Antichristus)을 설교한다! 이것이 바로 오래 전부터 품어온 나의 개인적 견해이다." 도스토예프스키에 따르면, 그것은 바로 로마의 교황으로 육화한다. "교황은 '삼중관'(tiara), 곧 지상의 권좌를 차지했고, 창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창에 덧붙여 거짓말, 술책, 사기, 열광, 미신, 범죄 ... 등이 추가된 것을 뺸다면, 모든 것이 그대로 계속되었다. 모든 것이 돈으로, 낮은 지상적 권력으로 교환되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적의 가르침이 아니란 말인가?!"

"도스토예프스키의 그리스도는 신-인적(teandrico) 그리스도로서, 심층적으로 러시아적 그리스도, 러시아의 그리스도이다."[lbid, p.309] 실상 '신을 등에 업은 민족'(「카라마조프 노트」)인 러시아 민족에게는 거룩한 영상, [곧] 지워지지 않는 이콘으로서 순수한 그리스도 관념을 보존하는 [사명]이 있다. 러시아 민족은 여정으로서 그리스도와 목적으로서 그리스도를 모시며, 그리스도와 함께 종말론적 시간[의 바다]를 건너갈 준비를 한다. 하지만 로마는 그리스도를 배신했고, 로마 가톨릭 교회는 권력, 박애주의, 자유의 억압 등의 유혹에 지배를 받고 있다.

슬라브족 영혼의 모습을 충실하게 그려낸 화가인 도스토예프스키는 동시에 아름답고 웅장한 작품을 산출하고 또 자신의 형제들에게 사랑의 증거를 주려는 염려에 지배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소설가는 "고통, [곧] 그에 따르면 온갖 인간적 복권의 해방의 수단인 고통의 신비가이다."(L. 세뉴)

도스토예프스키는 한 사람, 한 사람 안에서 그리스도를 보았고, 그의 모든 저술들은 하느님 아드님의 위격을 그 중심으로 삼고 있다.

《신학사 4》. Battista Mondin 씀. 이재룡 · 윤주현 · 안소근 옮김. 가톨릭출판사. 489-494쪽.
원제: Storia della teologia, IV






요약
1. 그리스도의 광채는 가장 몰락한 개인의 어둠 안에서도 빛난다.
2. 러시아 정교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