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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백승영의 니체,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을 읽고 있다. 저번에는 서양철학사를 읽었다. 이 두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나는 철학과 학생이다. 내가 철학과에 진학한 이유는 플라톤적 마인드였던 것 같다. 이 세상에는 절대적인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 이데아에 닿는다면 나는 해탈한 성인군자로 살 수 있지 않을까?


근데 서양철학이 진행될수록 점점 더 진리의지에 의거한 절대진리 탐구에 대해 회의적이 되고, 결국에는 부정되기에 이른다. 니체는 진리라는 것이 관점적인만큼 삶에 대한 해결책도 관점적으로 제시한다. 삶을 긍정하자.


니체의 관점적 진리로써 영원회귀를 인간이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까? 스스로를 기만한다고 생각해서 받아들이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진리의지가 그것은 하나의 관점이라고 생각해서 거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리의지를 극복할 수 있을까?


나는 진리의지라는 것이 사회적 결과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생에 대한 본질적이고 본능적인 욕구가 지성의 측면에서 양태로 존재하는 것이 진리의지라고 보는 것이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렇게 진리의지를 인간 본성적인 것으로 본다면 진리의지는 극복하기 힘든 것이다. 우리는 기만당하고 싶지 않아하고, 영원하고 질서있는 것을 갈망한다. 진리의지가 인간의 본질적인 부분이라면 인간은 생성의 세계에서 허무주의에 빠질 수 밖에 없게 된다.


니체는 진리의지를 사상적인 결과물로 봤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진리의지를 본성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관점주의를 채택하고 생성 세계를 긍정하여 허무주의를 극복하자는 니체의 해결책이 인간 본성으로 가능할까 하는 회의감이 든다. 우리는 기만당하기를 싫어하고 영원한 걸 좋아하는 것이 본성인데, 니체의 해결책은 스스로를 기만하여 유한한 것을 좋아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알쓸신잡에서 유현준과 유시민의 논쟁을 봤다. 유시민은 영생하고자 하는 것은 삶을 무의미하게 만든다며 비판했지만, 유현준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건축 또한 영원한 것을 남기고 싶은 욕구라고 말했다. 나는 유현준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나의 존재를 대상에 투사하여 그것을 영원하게 남기고 싶은 것. 영생이 불가능한 세상에서 그런 행위로나마 영생의 욕구를 달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런 행위가 허무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불완전하고 서글프지만서도 최선의 방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