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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연세대 국학연구원에서 출간한 고 전 김준석 연세대 교수의 유고집 중 마지막 세 번째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허목, 유형원, 송시열 한원진 네 사람의 국가재조론을 중심으로 논지를 펴 나간다. 


저자는 여기서 송시열과 한원진을 보수, 허목과 유형원을 진보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프레임에 동의하지 않는다. 분명 송시열과 한원진은 주자절대주의자에 융통성이 없었고 당파적 색채가 강했다. 이런 점은 당연히 비판받아야 한다. 


게다가 송시열, 한원진의 세도재상론은 전제군주국의 원리를 부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다고 허목과 유형원을 진보로 설정하는 것도 완전히 맞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저자도 명시하듯 허목과 유형원은 고전유학의 영향을 받아 주자학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그러나 이는 노론 주류도 마찬가지였고, 당시 사회의 문제점을 남인계와 같이 인지하고 있었다. 다만 개혁의 방향이 토지제도보다는 수취제도와 군역제에 맞추어져 있었다. 실제로 토지제도 개혁은 기득권의 경제적 기반과 곧바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기에 건드리기 쉽지 않았으며, 이 상황에서 파탄에 빠진 국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부세제도의 조정이 필요했다.


저자가 보수라고 평한(실제로도 보수세력이지만) 한원진과 송시열은 호포제의 실시에 적극적이었고, 송시열의 경우, 조운제도의 개혁과 부세제도의 균평을 주장했다. 다만 정전제와 토지개혁론에 있어서는 현실성을 이유로 반대했을 뿐이다. 


한원진의 경우도 군제개편과 병법에 관심이 많아 나름 합리적인 개혁방안을 제시하기도 한 만큼 그들이 보수세력이라 해서 저자처럼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 일반적으로 소론계나 이부 남인의 개혁적 주장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한다. 그러나 대부분 그들의 주장은 너무나 개혁적이었고, 대부분의 실학자들이 현실정치와는 유리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들의 개혁정책이 실제로 적용되었을 때 어떠한 결과를 불러오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었다.


그것보다 문제는 당파에 관계없이 개혁정책이 시행되면 반대하는 기득권의 태도였다. 송시열의 호포론과 조운제도 개혁 논의도 공평한 수세를 위한 유집일의 방전법 논의도 모두 기득권에 의해 막혔다. 


박세당이 지적한 것처럼 군주와 지배층의 무사안일주의가 무제였지 개혁의 진보성에 따라 정책의 성패가 결정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은 개혁적인 정책이 늘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기득권의 반발과 개혁의 어려움을 간과한 생각이다. 정책을 입안하는 것과 실행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만약 급진적 개혁이 무조건 옳은 것이었다면 왕안석의 신법은 최고의 개혁으로 칭송받으며 대성공을 거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왕안석의 신법은 실패했다.


하지만 김준석의 높은 정치사상 이해도는 분명 후학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아마 그가 이제는 고인이 도ㅙㅆ어도 학계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이유는 그의 연구 열정과 높은 사상적 이해도 때문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