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독서 갤러리라는 갤러리를 알게 되어서
지난 학기 동안 읽은 책을 정리해볼 겸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작년 1학기에 읽은 책들은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나서 제외했는데, 돌이켜보면 몇 권 안 읽기도 했군요...
* 각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I. 소설
I-1. 크리스마스 캐럴/가면고 - 최인훈
크리스마스 캐럴은 최인훈의 실험적인 경향이 두드러지는 작품입니다. 총 다섯 편의 연작소설로 구성되어 있는데, 크리스마스 캐럴 1, 2, 3은 부조리극을 소설로 옮긴 듯한 인상을 줍니다. 반면 4는 전형적인 리얼리즘 작법으로 씌어져 있고요. 5는 최인훈의 평소 스타일이라고 할만한 모더니즘 스타일로 돌아옵니다. 부조리극이 대체로 그러한 것처럼, 사람들 사이의 소통 가능성이 끝나버렸다는 일종의 비감이 소설 전체에 깔려 있는데, 얼핏 읽기에 그 비감은 한국 근현대사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일제의 지배와 독립, 625전쟁과 분단, 서구적인 근대화의 기치와 전통적-민족적 스노브들이었던 군부독재 세력 사이의 충돌 등등. 이렇게 읽는다면 아버지는 군부독재 세력으로, 주인공의 동생 옥이는 근대화의 지지자로, 주인공은 그 사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젊은 지식인으로 읽을 수 있겠군요. 그러나 너무 피상적이고 역사주의적인 독법이라는 생각 역시 듭니다. 어쨌거나, 크리스마스 캐럴은 분명 실험적인 소설로서 충분히 매력적으로 읽힙니다. 하지만 구운몽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과 같은 강렬한 인상을 주지는 못하는군요.
가면고는 광장이나 구운몽에서 읽어낼 수 있었던 최인훈 소설의 특징적인 주제, 즉 파우스트적인 방황과 구원의 주제가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문체 역시 크리스마스 캐럴의 부조리극에 가까운 문체보다는 보다 최인훈의 평소 스타일에 가까습니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가면고는 미라와 민이라는 두 인물 사이의 현생을 초월한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 사랑이 단순히 낭만적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민의 사랑은 타인을 파괴해가면서까지 자신에게 맞추려는 사랑, 자신의 정신을 모든 인간에게로 확대하려는 그런 사랑이라는 점에서, 파우스트의 사랑에 가장 가까운 사랑일지도 모르겠군요. 그러나 이 사랑은 끝까지 파우스트의 이기적인 사랑과 같은 형태로 남아 있지는 않습니다. '구원받았노라'하고 외치는 신의 목소리와 같은, 한 줄기 최후의 희망이 소설의 마지막까지 남아 있지요. 재밌는 점은, 최인훈 작가는 왈츠 대신 원무곡이라는 어휘를 더 선호하는데, 유독 가면고에서는 왈츠라고 쓰고 있군요. 이건 말 그대로 사족입니다.
광장과 구운몽이 괜히 한 권의 책으로 묶인 것이 아니듯, 크리스마스 캐럴과 가면고 역시 괜히 한 권의 책으로 묶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두 작품은 모두 고독에 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캐럴은 근대성과 고독, 가면고는 근원적인 고독에 관한 소설입니다. 그리고 최인훈의 소설이 으레 그런 것처럼, 고독이라는 주제는 궁극적으로 사랑에 결부되어 풀이됩니다.
I-2. 제 49호 품목의 경매 - 토머스 핀천
제 49호 품목의 경매를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느낀 소감이 있다면, 이제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사조조차도 낡은 것이 되어버렸다는 인상입니다. 일렉트릭 음악은 1970년대에는 가장 포스트모던한 음악으로 떠받들어졌지만 지금은 낡은 장르가 되고 말았죠. 비디오 아트도 80년대 이후로는 구식의 예술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물론 일본의 애니메이션 산업과 라이트노벨, 그리고 웹소설 시장에서 우리는 여전히 포스트모던의 영향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대중음악과 영화에도 역시 포스트모던의 영향력이 남아 있고요. 그러나 오히려 콕 집어서 포스트 모던을 표방하는 작품들, 이를테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나 핀천의 소설들과 같은 작품들은 오히려 구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제 49호 품목의 경매는 피어스 인버라리티라는 사업가의 유산관리인으로 임명된 에디파 마스가, 트리스테로라는 비합법적인 우편조직과 얽히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관한 음모론적 소설입니다. 그러나 매스미디어와 통신수단의 지배와 그에 대항하는 저항조직의 이야기는, 지금 읽기에는 따분한 이야기가 되어버린 듯 합니다.
I-3. 야만인을 기다리며 - 존 쿳시
야만인을 기다리며는 쿳시의 소설들 중에서 가장 독특한 분위기를 지닌 작품입니다. 쿳시의 소설들은 보통 대명사 '나' 대신 대명사 '그'를 화자로 내세우는데, 야만인을 기다리며의 화자는 '나'입니다. 쿳시의 소설들 대부분은 그 시대적 배경과 공간적 배경이 명확한데, 반면 야만인을 기다리며의 배경은 탈시대적이고 무국적입니다. '나'는 제국의 변방에서 일하는 치안판사이고, 그곳은 야만인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야만인들과 균형을 유지하며 살아가던 어느 날, 줄 소령이라는 인물이 치안판사의 근무지에 찾아오고, 모든 것이 변하게 됩니다. 줄 소령은 야만인들을 고문하고 습격 사건을 조작해 그들을 제국의 적으로 규정하고, 소탕 작전을 벌이게 됩니다. '나'는 그런 줄 소령에 맞서 야만인들의 편에 서기로 결정하고요. 야만인을 기다리며를 관통하는 아이러니의 핵심은 백인 지식인이라는 위치의 양가성입니다.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서 야만인과 줄 소령이 필요한 것 만큼이나, 온건적인 지식인인 '나' 역시 필요합니다. '나'는 야만인들의 편에 서기로 결정함으로써 야만인들에게서도 제국에게서도 소외를 당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가 단순히 정의의 편에 섰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어쨌거나 '나'는 야만인 소녀의 성을 함부로 취하고, 야만인들의 문자를 서구적인 기준에 맞추어 해석하려는 전형적인 백인의 모습으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제가 읽어낸 야만인을 기다리며는 정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I-4. 추락 - 존 쿳시
감히 말하자면, 쿳시의 추락은 제가 이제껏 읽어온 소설 중에서 최고의 걸작입니다.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를 저지르는 것 같기는 하지만, 저희 학교에 소설창작 강의를 오신 정용준 소설가님도 인생 소설(?)로 추락을 꼽으셨으니, 다분히 주관이 개입된 의견이기는 해도 독단적인 의견까지는 아닌 것 같군요. 추락은 정말로 좋은 소설입니다. 데이비드 루리라는 영문학 교수가 끊임 없는 추락을 겪는 이야기인데, 감탄할 수밖에 없을 만큼 치밀한 아이러니가 그에 얽혀 있습니다. 멜라니 아이삭스라는 제자에 대한 성적인 폭력을 에로스의 추구로 정당화하는 부분에서는, 롤리타를 읽으면서 느꼈던 아이러니와 꼭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아이러니는 아파르트헤이트의 후폭풍과 농장주 살해(farm murders)라고 불리는 남아공의 현실과 연결되면서 한 층 심화되고 있고요. 그러나 이런 단편적인 분석은 완벽하게 무의미한 것 같습니다. 한 비평가는 추락을 '아이스피켈로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얼얼하게 만드는 소설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그 표현이 이 소설의 강렬함을 가장 잘 전달하는 것 같습니다. 추락의 아이러니는 깊고 섬뜩하고 아찔합니다. 다 읽고 나서는 정말로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게끔 했고요. 독서 갤러리 여러분들께도 꼭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II. 희곡
II-1. 페르시아인들 - 아이스퀼로스
아이스퀼로스의 비극도 읽어봐야 한다는 생각에 읽기는 했지만, 솔직히 그다지 재미는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오리엔탈리즘이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이기도 하고, 또 그 이야기로서의 매력이 확실히 소포클레스의 테베 3부작과 같은 걸작에 비견되기엔 많이 부족합니다. 일단 비극적인 아이러니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군요. 비극적 아이러니는 그리스 비극을 읽는 이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텐데요. 소포클레스의 비극을 읽으면서 정말로 불멸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페르시아인들 쪽은 단지 평범한 교훈적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이스퀼로스가 3대 비극 작가 중에서 가장 앞선 사람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당연히 그럴 법도 하지만요. 어쩌면 이런 교훈적 이야기가 비극의 표준이던 시대에, 안티고네와 오이디푸스 왕 같은 작품을 쓴 소포클레스가 대단하다고 해야 할까요.
III. 시집
III-1. 두이노 비가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모든 천사는 끔찍하다'는 도입부로 유명한 작품입니다. 신비주의적이고 신화적인 분위기의 서정시인데, 고백하자면 읽기만 읽었을 뿐 무슨 의미인지는 전혀 모르겠군요. 관념어가 굉장히 많기도 하고, 신화적인 상징들이 다수 등장해서 읽어내기가 힘든 작품이었습니다. 천사라는 이미지 아래에서 시인의 체험과 우주를 하나로 엮는, 뭐 그런 시라는 해석이 달려 있기는 한데 해석을 보고 읽어도 잘 모르겠군요. 엘리엇의 황무지도 이만큼 난해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요. 어쨌거나 굉장히 난감한 작품이었습니다. 릴케를 읽는 수업이라도 들어봐야 할 것 같아요.
III-2. 오늘은 잘 모르겠어 - 심보선
심보선 시인은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인입니다. 87년 이후 한국 스노비즘의 계보학이라는 에세이도 굉장히 재밌게 읽었고, 그을린 예술이라는 저작도 언젠가는 읽어 볼 생각입니다. 어쨌거나, 오늘은 잘 모르겠어는 좀 특이한 시집인데요, 전반부는 존재론적인 고찰이 주로 담긴 시들이 많고, 후반부는 사회학자가 쓴 시 답게(?) 사회주의 리얼리즘 스타일에 가까운 시들이 많습니다. 언어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씌어진 시도 있고, 소설시라고 하는 독특한 장르의 시도 있습니다. 더 첨언을 하고 싶지만 제가 시에는 영 문외한이라 그러지를 못하겠군요. 재밌게 읽은 시집입니다.
III-3. 죽은 눈을 위한 송가 - 이이체
아는 선배는 이이체의 시가 자의식 과잉이라고 까던데, 좀 그런 면이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좋은 시집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밌게 읽었어요.
III-4. 구관조 씻기기 - 황인찬
황인찬 시인님이야 거의 문단의 아이돌이니까,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소위 말하기를 절제된 느낌의, 낯설고 날카로운 관조가 돋보이는 시라는데, 저야 뭐 그런가보다 하고 읽게 되지요.
IV. 철학
IV-1. 호모 사케르 - 조르주 아감벤
이것 역시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읽은 책입니다. 순수하게 철학적이거나 문학적인 내용이라면 어떻게든 읽어낼 수 있을텐데, 거기에 정치학적인 지식까지 요구하니 읽기가 너무 힘겹더군요. 아무래도 요즘 인문대학에서 자주 논의되는 저작이다보니 이해도 못하면서 꾸역꾸역 읽기는 읽었습니다. 조에와 비오스의 이분법, 생명권의 박탈, 법 밖에 선 존재로서의 호모 사케르, 법 밖에 서 있기에 오히려 법의 작동을 보증하는 호모 사케르의 특성, 주권자로서의 호모 사케르인 왕 등등, 대충 무슨 담론을 전개하고 있는지 감은 잡히지만,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힘들었고, 확실히 난해한 저작이었습니다.
IV-2. 향연 - 플라톤
사실 철학도로서 이 유명한 대화편을 뒤늦게서야 읽었다는 사실이 좀 부끄럽긴 합니다. 아마 향연을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향연에서 가장 유명한 연설 정도는 들어보셨을 것 같습니다. 아리스토파네스가 들려주는 사랑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 말이죠. 헤드윅의 The Origin of Love라는 곡이 아리스토파네스의 연설을 패러디하고 있고, 아마 그 때문에 더 유명해진 것도 있을 듯합니다. 예, 익히 알고 계시는대로, 향연은 에로스에 관한 대화편입니다. 그리고 플라톤의 대화편 중 문학 작품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대화편이기도 하고요. 요약하자면, 에로스는 단순한 육욕일 뿐만 아니라 아름다움의 이데아와 완전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다는 이야기입니다.
V. 문예비평
V-1. S/Z - 롤랑 바르트
구조주의 비평이론가들의 비평서 중에서 아마 가장 자주 언급되는 비평서가 S/Z가 아닌가 합니다. S/Z는 오노레 드 발자크의 잘 알려지지 않은 중편소설인 사라진에 대한 비평을 근거로 해서, 서사물 전체에 적용될 수 있는 비평이론을 탐구하고 있는 저작입니다. 정신분석비평이나 해체주의 담론을 일부 수용하고 있기는 해도, 기본적으로 구조주의적인 비평서라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글쓰기의 영도에서 논하던 리얼리즘 비판도 자주 나오고, 인물, 사건, 배경 등에 대한 구조주의적인 관점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또 리얼리즘 소설이 현실 그 자체를 재현할 수는 없다는 비판 역시 자주 인용되는 부분이고요. 기존의 구조주의 혹은 신비평과 확실히 구분되는 지점은 텍스트에 대한 가장 완전한 해석을 부정하고, 독서의 다가성을 인정했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점에서는 구조주의보다는 변형생성문법을 떠올리게끔 하기도 하네요.
V-2. 이야기와 담론 - S. 채트먼
구조주의 비평이론의 교과서로 많이 쓰이는 책입니다. 작품을 서사 차원과 담론 차원으로 구분하고, 서사로는 인물, 사건, 배경 등을, 담론으로는 발화형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구조주의 언어학의 기본 관점인 기표-기의의 대응관계를 비평이론에 대입시킨 것이죠. 서사는 기표적인 것으로 텍스트의 물적 구조이고, 담론은 기의적인 것으로 텍스트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조금 단순화된 기술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어쨌거나 이런 기본적인 틀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서사이론에 관한 책입니다. 교과서로 쓰이는 책인 만큼 구조주의 비평이론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볼법한 글인 것 같습니다. 사실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 형상 개념도 응용되고 있는데, 이미 형이상학적 개념으로도 폐제된 질료 형상론을 굳이 끌어들이는 이유는 모르겠군요.
기타 수업과 관련해서 읽은 책들은 제외했습니다.
그러고보면 독서량이 참 부족하군요.
양질의 도서들 고루 읽으셨네요 부럽습니다
존 쿳시 좋아해? - dc App
인문대에 전공독서 너처럼 많이하는애들 많음? 취준때매 전공 놓는경우가 많을꺼같은데
아무래도 인문대 특성상 경영학 등을 부전공하는 경우가 많고, 전공 관련 독서를 열심히 하시는 분들이 좀 드물긴 한 것 같아요.
추락은 저도 좋았어요
리뷰 잘 봤습니다. 좋은 책 많이 읽으셨군요. 호모 사케르는 단독으로 읽기보다 <예외상태>를 먼저 읽고 보시면 훨씬 수월하실 겁니다. 김항 교수가 쓴 <종말론 사무소>도 좋은 서브텍스트구요.
바르트와 채트먼의 책이 끌리네요 저도 사서 읽어봐야겠습니다 ㅎ
같은 대학생인데 수준차이 쉽헐 ㅜㅜ 책 리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