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비슷한 글 썼던 것 같은데.. 모르겠당.
욥기는 여러모로 특이한 성서임.
0. 문장과 비유 등이 네임드 서사시급으로 아름답고 좋다는 건 시편이나 바울서신,
요한복음도 가진 비슷한 특징이니까 대충 넘어가고.
1. 저술 연도가 아무리 보수적으로 잡아도 아브라함 이전.
모세5경의 잠정적 저자로 인정받는 모세 시대보다 더 예전에 완성된 책이라는 뜻.
그래서 구약성서를 편집할 때, 심지어 이건 유대인이 야훼신앙으로 쓴 게 아니다라는 소수의 반대의견도 있었다고 함.
2. 성서인 것 같지만 사실 유일신 교리에 대한 회의와 의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작품.
내용의 9/10은 신에게 인정받던 의인 욥의 이유없는 고난 + 그에 대한 정당한 불만과 의심을 드러내는 욥
-> 거기에 보수적인 유일신론, 권선징악론으로 어설픈 비판을 하는 친구들 -> 그들을 좆바르는 욥의 논리적 무쌍임.
3. 재미있는 유일신 : 악(악마? 사탄?)의 관계를 모여줌.
욥기 서두는 이렇게 시작함.
야훼+천사들이 있는 곳에, 갑자기 악마가 등장함.
야훼가 "너 어디있다 왔냐?" 물음.
악마는 "세상 여기저기를 돌아보다 왔나이다"라고 답함.
재미있지 않음? 기독교식이면 사탄은 신에게 저주를 받아 영원히 배제된 존재임.
사탄과 야훼가 같은 장소에 있거나 대화를 주고 받는 장면 따윈
욥기를 제외하고 성경 전체에 없음.
더 재미있는 포인트는 그 다음임.
야훼가 욥의 선함을 자랑함.
사탄은 그거 다 구라고 야훼가 욥에게 돈, 장수, 많은 자식들을 주니까 믿는 척 할뿐이라고 함.
그리고 자신이 시련을 주면 욥은 신을 저주할 거라고 장담하며 시련을 허락해주길 요청함.
그러자 야훼가 콜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웃기지 않음?
여기 나오는 야훼는 전지전능하지도 않고,
사탄에게 속고,
사탄에게 악을 행하길 허락하는 존재임.
악과는 1도 관련없고, 사탄보다 훨씬 우월한 존재로 묘사된 나머지 성서 속 신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거.
4. 종장 무렵에서 드러나는 진짜 의도 : 신 < 인간
욥의 논리를 꺾는데 실패한 친구들이 gg를 칠 무렵,
신은 갑작스레 욥 앞에 등장해 기나긴 장광설을 펼침.
하지만 그 안에 지금껏 욥이 내세운 질문이나 논리에 대한 대답은 1도 없음.
그저 나는 신이고, 지구와 바다 괴물들을 다 만들었다.
난 이렇게 강하고 킹왕짱이다. 근데 니가 나에게 개겨? 가 전부임.
욥(혹은 욥기의 저자)은 그 논리에 승복하는 척, 그랜절을 하고
신은 빼앗았던 욥의 건강, 재물, 자녀들을 회복시켜 주며 끝이 나지만,
솔직히 이성적으로 이 부분을 읽고 난 후에 드는 느낌은
적어도 논리와 이치의 영역에선 욥이 신을 이겼다는 거임.
결국 욥기 속의 신은
? 왜 선한 이들이 불행을 겪는가?
? 왜 신은 세상에서 날뛰는 악마 혹은 악의 문제들을 방치 혹은 (유일신의 전지전능 교리가 맞다면) 조장하는가?
에 대해 아무 대답도 못한 셈이니까.
결론적으로 욥기는, 성서 = 기독교의 가장 큰 논리적 모순인
[절대적으로 선한 신 :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세상 + 신을 따르는 이들의 고통]
의 문제의식을 던지고 있는, 시대를 감안하지 않고도 대단히 현대적이고 심오한 작품이라는 거임.
아무튼 믿어라~ 뒤지기 싫으면
욥기 저자는 그 말에 순응하는 척 하면서 존나 큰 퍽유를 날리고 있음. 이걸 성직자들은 알면서도 부정하려 하고, 신자들은 캐치를 못하는 게 어처구니없을 뿐이지.
오.. 다시 읽어봐야겠다 - dc App
욥기 멋지지. 고대 바빌로니아의 서사시 중 <고난 당하는 의인>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욥기의 내용과 아주 흡사하다고 하네. 파산과 질병으로 망한 한 귀족이 신의 지혜에 대해 의심하며 심오한 고뇌 속에 괴로워하고, 결국 마르두크 신이 원상복구 시켜주는 내용. 성서의 많은 부분이 그렇듯 욥기도 메소포타미아 신화에서 모티프를 거의 가져온 문학 작품임 ㅇㅇ
표절했구나 - dc App
해럴드 블룸은 아예 성경에서 모세 5경이랑 욥기 같은 장들을 일종의 코스믹 호러로 규정짓기도 하더라 - dc App
논리에 앞서서 신을 믿어야 한다는 뜻 아님? 선불교에서도 비슷한 말이 있고. 카라마조프 형제들에서도 그런 말이 있고.
뒷부분만 보고 그렇게 결론 내리면 신:악마가 공존하는 세계관이나, 분량 대부분을 차지하는 욥의 항변을 설명할 수 없게 됨. <죄와 벌>이 종교소설이라는 비약과 비슷하게 작품의 일면만 본 주장이라고 생각함.
내가 생각하기엔 욥기야말로 "현문우답"의 대표적 예시인 거 같음
욥기에 소위 악의 문제로 해석할 건덕지가 들어있는 건 맞는데, 이 부분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욥기 저자가 1차적으로 말하고자 한 문학적 메시지가 가려지고 후대인의 질문이 시대착오적으로 주인공이 되는 문제점이 있음. 욥기와 비슷한 작품은 고대 근동의 다신교적 환경에서도 있었고, 당연히 유일신 신앙을 전제로 한 소위 '악의 문제'에 집착하면 안됨. 그보다는 당시 저자가 1차적으로 말하고자 한 의미를 탐구해야 함.
난 천주교신자인데 사실 욥의 질문에 대해 하느님이 주신 답이 거칠게 요약하면 '니가 뭘안다고 깝치냐. 모르면 아닥하고 있어'라서 그냥 똥싸다 끊긴느낌이었음. 사실 이 문제때문에 종종 신앙에 의심을 품기도해. 독갤에서 이런글 보니까 너무 좋다. 고마워
성경 읽어봐야겠네 ㅋㅋ
1. 욥기의 성립 연대는 Ernst Alex Knauf와 Philippe Guillaume에 의하면 BC 5세기; Ludger Schwienhorst-Schönberger에 의하면 BC 5~2세기임.
2. 욥기의 사탄은 악마를 뜻하는 게 아님. "사탄은 아직 구체적으로 하느님의 적수인 마귀를 가리키지 않고, ‘고발자, 고소자, 적대자, 반대자, 원수, 적수’ 등의 뜻을 지닌 보통 명사로 쓰인다."(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석성경》 욥기 1장 6절 주석)
" '사탄'은 자구적으로는 '반대자'를 뜻한다. 그는 후기 전승에서 나타나는 악한 인격적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 심부름꾼으로 땅을 살필 임무를 지니고 있다. 그의 입에서 이 책의 핵심 질문이 나온다. 사심 없는 신심이 존재하는가?"(《길 진리 생명 해설 성경(지혜문학편)》 욥기 1.6-12 주석
그리고 욥기의 목적은 악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고, 그보다는 책의 핵심 질문을 이걸로 봐야 함: "욥이 까닭 없이 하느님을 경외하겠습니까?"(욥 1장 9절) 즉 사심 없는 신심이 과연 가능하냐는 말임.
이게 일반적인 기독교 측의 해석임. 뭐 문학작품이니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데 글쓴 독붕이처럼 '악의 문제'에 집중해서 이렇게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많음 - dc App
그래서 욥기는 뭘로 읽어야하냐? 카톨릭 판본 성경? 아님 개신교 판본?
일단 욥기가 그런 용도로 쓰이지 않는다는게 중요함, 신약에서도 욥의 고난에 대한 내용은 등장함. 뒤의 언급이나 욥기의 맥락을 보면, 자신의 앞날도 모르고 세상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도 모르고 심지어 눈앞의 식물이 자라고 있는 것도 알 수 없는 인간으로서의 무지함. 당장 닥쳐온 상황만 보고 신이 인간을 버렸다고 판단할수 있는가
욥이 승복하는 척하고 카운터를 날렸다기엔 오히려 욥의 뒤에 고백하던 이제는 내가 귀로 들었다가 눈으로 보게되었다는 그 마지막 말이 어떻게 보면 굉장히 주제를 관통한 말이라. 욥기가 이질적으로 보이지만 후에 성경에서 여러차례 언급되는 이유가 있음
욥이 후반부에 토로한 신이 나를 버렸다는 주장에 대한 현답이라고 보는게 이 의견임, 욥은 시험을 통과한 인내의 사례로 신약에 등장함
욥기는 현시대에 대한 묵상을 많이 하게 하는 부문인듯. 흔히 요새 말하는 '부자니까 착한거지 부자가 아니면 착하기 힘들다' 라는 사상을 사탄이 비슷하게 말하면서 시작. 그리고, 욥이 자신의 정의를 항변하면서 끝내는 내가 하느님보다 더 의롭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자신의 교만'을 발견하는 장면이 나오지. 결국 고난을 통해 욥은 자신이 몰랐던 자신의 교만을 발견
그리고 그 죄를 회개함으로써 복을 내리시고 지나간 아픔을 치유해 주심. 결국 주님이 주시는 시련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나약함과 겸손을 깨닫고 더 성장하고 회개함으로써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해주지. 결국 기독교적으로는 더 깊은 영성으로 가는 방법을 제시 해주는 성경서가 욥기라 생각함.
편집자의 의도와 독자의 의미는 다를 수 있으므로 해석학적으로 여러 의미를 끌어내는 건 좋다고 생각함. 그러나 서지 정보 같은건 틀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게오르그 포러는 욥기의 상한선은 시인이 포로후기 형태의 욥 전설을 이용했다는 점, 그리고 예레미야와 애가서를 사용하였던 것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말함. 또한 3:14 이하의 열거 방식은 페르시아 국가 행정과 일치하고 있으며, 19:23 이하 부분은 다리우스 1세에 대한 지식을 전제하고 있음. 그러므로 욥기는 기원 전 5-4세기의 작품이며, 첨가된 부분들은 늦어도 기원 전 3세기의 것임.
댓글 고맙다. 이런 피드백을 기대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