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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3때 있던 일이었어.

나는 공부에 지쳐 혼란스러웠을 때고, 내가 좋아하는 대학수학을 공부하지도 못했었음.

진로도 고민이 되었던 때였어.


그때 커뮤니티를 둘러보다가, 디시인사이드에서 “수학 갤러리”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음.

나는 정말 무릉도원을 본 줄 알았어.

물론 거의 다 이해할 수 없는 글이었지만, 대학수학하는 사람들이 전부 모여서 질문도 하고 토론도 하는 게 너무 멋졌음.

내가 원하던 수학과 진로에 딱 맞는 갤러리였던 거임.


글을 쓰기에는 무서워서 못하고 눈팅만 계속하고 있었는데,

진짜 보물같은 글들을 보게 되었어.

그 보물같은 글들을 모아보니까 다 한 사람이 썼던 거더라고.


닉네임은 “자살시급”. 진짜야. 닉넴이 그래.


그는 사실 거의 글을 툭툭 던지듯이 썼지만, 그럼에도 정말 정교하고, 정말 insight를 주는 글들을 써냈어.

1주일에 한두번씩 그렇게 글을 쓰고, 나는 그 글을 꼭꼭 씹어먹으려고 천천히 하나하나씩 보았음.

대수학부터 해석학까지, 위상수학에서 정수론까지 수학의 전 분야를 다 다루었더라고.

그가 서울대생이라는 것도 얼마 되지 않아 알게 되었음.


그런데 이 분, 좀 문제가 있었음.

수학 갤러리와 함께 우울증 갤러리를 하던 사람이었는데,

거의 일주일에 한번씩 팔에 자해를 하던 사람이더라…

닉네임처럼 많이 우울해하는 사람이었고.


나는 고3 수리논술이 끝나는 그 날부터 그 사람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현대대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음.

2월달에 갈루아이론까지 배우게 되었고,

정말 수학이 극명하고 아름다운 것임을 깨닫게 되었음. (수학 교수들도 갈루아 이론이 아름답다고 말함)


3월달이 되어서 나는 디시에서 활동하기 시작했고, 질문도 하고 수학철학적인 내용을 쓰기도 했음.

나도 그처럼 좋은 글을 써보고 싶었고, 뭘 써야 하나 생각하다가

갈루아의 유언을 번역해보면 어떨까 싶어서 준비했음.

한 2개월동안 독서실에 틀어박혀서 번역 준비를 했음. 5월에 그 글을 썼어.


그런데 쓰고 난 뒤, 찾아보니 그 사람이 사라졌더라고.

마지막 글은 우울증 갤러리에 쓴 “나 너무 행복하다”라는 내용.

그렇게 그 사람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모른 채 나 혼자 남게 되었음.


생각을 했어.

어떻게 디시같은 놀음판 같은 곳에서 그렇게 좋은 글을 썼을까.

그리고,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결심했어.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그만큼 좋은 글을 써서,

다른 누군가가 이 글을 보면서 도움을 받았으면 한다고.


시간이 좀 지났을 때, 수학 갤러리가 거의 개판이 되었음.

“아벨”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쓸데없는 이야기로 거의 도배를 하고,

다른 닉을 새로 파서 자기 자신만 옳다고 찬양하는 글을 써냈음.

특히 0.999…=1 같은 지리멸렬한 주제로 특히 글을 많이 썼음.


사람들이 다 떠나가려고 했음.

그때 내가, 하나의 장문의 글을 쓰려고 했어.

0.999…=1 에 대한 논의를 완전히 끝내버릴 수 있는 완벽정리글을 쓰겠다고.

그리고 이 갤러리를 다시 구해내겠다고.


나는 4주 걸릴 거라고 봤어.

3개월이 지나도 반도 못 끝내더라.

여름날에는 거의 밤을 새다시피 했어.

그때 구하려고 했던 사람들? 이미 다 떠나갔어.


그 어떤 여름날 신검을 받았는데 정신과에서 불러서 나에게 7급을 주더라.

병원에 갔더니, 우울증이 너무 심하다고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하더라.

그렇게 겨우겨우 끝매쳤음. 5개월이 지난 뒤였음.

사람들은 이미 다 떠나간 뒤였음.


그래서 글은 어땠느냐.

글의 평가도 안 좋았고, 무엇보다도 내가 가지고 있던 신념이 무너지게 되었음.

나는 수학을 “절대적 진리로 다가가는 유일한 방법” 정도로 생각했는데,

굉장히 문제가 많은 관점이었음을 0.999...에 대한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음.

0.999...에 대한 논의를 완전히 끝내버릴 수는 없더라.

불완전성 정리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되었음.


그렇게 굉장히 우울할 때 정말 도움이 된 책이 있었어.

"철학적 탐구"와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임.

정말 감명깊게 읽었어.

난 그렇게 문학 탐구에 발을 들였고, 철학에 대해 본격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어.

그때부터 수학에 눈이 안 가더라.


처음에는 분석철학쪽으로, “철학적 탐구”, “이름과 필연”, “과학, 철학을 만나다”를 읽었고

좀 공부하다가 바슐라르가 사실은 과학철학자였다는 걸 알게 되었음.

그걸 계기로 대륙철학쪽으로 가서 푸코, 칸트, 하이데거 등을 읽게 되고…

그렇게 처음으로 코딩 과목에서 F를 받는 완전 문과충 철학가가 되어버렸음.


한 1년 뒤에. 어찌저찌 “독서 마이너 갤러리”를 알게 되었어.

처음에는 그냥 눈팅만 하다가, 어떻게 글을 쓰게 되고,

나중에는 마치 0.999… 때처럼 완전 미친듯이 글쓰기와 퇴고에 집중을 하게 되더라고.


이렇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어. 여기서 글을 안 쓰기에는 내가 낭비한 시간이 너무 아깝지.


나는 “자살시급”처럼 되고 싶어.

사람들이 내 글을 보고 자기 길을 확실히 정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

나도 그처럼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



내 갤로그 가보면 내가 쓴 철학글들 스크랩해놨어. 이제 거기서 읽을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