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한 추론-부조리의 벽까지
정해진 본문을 읽고 드는 생각, 느낀 점이나 궁금한 점 등 다양하게 자신의 의견을 나누시면 됩니다.
지나친 비방이나 분란을 일으키는 댓글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주 독회 일정 : 2021년 9월 12일 저녁 8시~9시 사이
다음 주 독회 본문: ~철학적인 자살까지
근데 분량 조절 관련해서 논의도 해야할거 같음
일주일치 적정량을 모르겠어서 ㅇㅇ
일단 소제목으로 나눔
부조리한 추론-부조리의 벽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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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독회 일정 : 2021년 9월 12일 저녁 8시~9시 사이
다음 주 독회 본문: ~철학적인 자살까지
근데 분량 조절 관련해서 논의도 해야할거 같음
일주일치 적정량을 모르겠어서 ㅇㅇ
두 질문이 책에서 언급되던데 이거 읽다보면 해결됨? 1. 삶을 수렁에 빠트리는 이런 부정은 과연 삶의 무의미에서 오는가? 2. 삶의 부조리는 과연 희망이라든가 자살같은 길을 통해서 삶으로부터 벗어나길 요구하는가? 설마 카뮈는 이 질문을 지가 해놓고 대답은 안하는거 아니겠지?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옴 - dc App
ㅇㅇ 읽다보면 해결될 뉘앙스인듯: 아마 제목에서 인간이 시지프에 비유되는거 보면, 벗어나려는 몸부림 자체에서 일종의 의미를 찾아야 하는게 아닌가라고 조심스레 유추해봄
니체 말대로 철학을 삶에서 시행해야함-> 근데 부조리철학 실행할려면 자살해야함->그럴만한 새기덜은 문학에만 있음 - dc App
평소 깊은 생각을 하지 못하고 철학적 트레이닝도 받지 못해서 이 책 처음 읽을 때 많이 당황했음. 내가 알고있는 부조리는 중학생때 두발규제, 군시절 다 똑같은 처지면서 유치하게 호봉제니 뭐니 하며 선임들은 가능하던거(군대리아 우유에 적셔 먹기 등)못하게 하기 등 밖에 없는데… 카뮈는 부조리를 세계의 두꺼움(왜 두꺼움이라 표현했는지 모르겠음)과 낯섬, 사르트르적 구토, 거울에서 발견한 이방인, 인간 자신의 비인간성 앞에서 느끼는 불안이라 하던데 일상과 다소 동떨어진 정의라 이해하기 어려웠음.
일단 부조리를 발견하면 자살할지, 희망을 가지고 일상으로 복귀할지 선택해야 하고 이를 검토하겠다는거 아님?
근데 까뮈는 희망 "마저" 냉소하는 거 같은데
그게 부조리에서 도피한다는 면에서 자살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거 아닌가
희망은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거임. 미리 스포하자면 현실에 대한 끊임없는 투쟁, 반항 없는 삶이라는 거임.
삶의 부조리는 과연 희망이라든가 자살같은 길을 통해 삶으로부터 벗어나길 요구하는가(희망과 자살을 비슷하게 부정적으로 봄 => 부조리는 죽음을 명하는가=>죽음에 이를 정도의 논리는 존재하는가=부조리의 추론 회피equasive/위희divertissement=> 삶의 모순을 부조리한 희망과 죽음이 서로 응수하며 벌이는 비인간적 유희로 봄 - dc App
희망조차도 부조리한 어떤 것(삶을 초월하고 그 삶을 승화시키며 삶에 어떤 의미를 주어 결국은 삶을 배반하는 '어떤 거창한 관념'을 위해 사는 사람들의 속임수)으로 보는데 냉소적인 서술이지만 절대 자살장려 같은건 아닐 것이 분명하고 읽어보면 그런거 같다는 느낌도 들어서 인지부조화 옴 - dc App
나름대로 대충 정리해보자면,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지 못할때 즉, 낯설음을 느낄때 찾아오는 복잡한 감정?이 부조리이다 이는 지성의 한계(결국엔 가설로 흐르는)때문이며 비합리와 지성의 벽을 인식하는 것만이 인간이 할 수 있는거다
카뮈는 이것이 시작이라했으니 이제 과연 논리적 추론으로 자살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가? 에 대해 파고 들것같다
그런데 41쪽의 ‘비합리’와 ‘명확함’ 두 단어의 정의를 내리기 참 어렵다 둘이 맞대면을 하는것이 부조리함이라는데..
어떤 면에서? 난 말 그대로 인간의 욕구에서 말미암는 명확함 vs 하지만 그런 명확함을 받지 않는 세계의 대립으로 봤는데
그런 대립에서 부조리가 비롯되거나 그런 대립 자체를 부조리로 명명한거고
인간의 호소 그리고 비인간적인 세계의 대립 이렇게도 될것같고.. 그냥 더 와닿게 이해하고 싶어서 변형 시켜봤던 거였음 그리고 분량에 대해선 변함 없이 아니면 좀 더 늘려도 될 것 같아 독회 특성상 질질 끄면 무너지니까 빨리 끝내는게 날듯
확인 담번에는 좀 더 늘릴 생각이긴 해
비합리는 신과 희망의 영역, 명확함은 지나친 이성주의로 보면 편함.
그리고 명확함은 지나친 이성주의, 세계의 무관심함이라고 두 가지 표현으로 써서...
분량 적당한것 같은데? 철학적 자살까지 읽어오면 될 것 같아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부조리를 정의하는 방법, 그러니까 인간의 욕구와 그를 충당할 수 없는 현실의 대립에서 부조리가 나온다고 말하는 것. 내가 생각했을 때 카뮈는 그 욕구로서 친근함 혹은 명확함에의 요구를 언급한다. 불멸에의 욕구도 그러한 욕구안 것 같다. - dc App
인간 행동의 비인간적인 면 혹은 기계적인 면이 주는 낯섬 또한 부조리의 감정인데 이것은 아마도 부조리를 인지한 다음부터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인간이 무의미한 행동을 하는 것 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 dc App
우선 당연한 말이지만 카뮈의 부조리가 우리가 사용하는 부조리와는 다르다는 점. 카뮈는 현실세계에서 어떤 것을 바라보았을 때 느끼는 그 이질감에 대해서 말한 것 같음. 이질감을 느끼는 대상은 사회, 사람, 나아가서 본인까지 될 수 있는 것 같고. 아무튼 어떤 것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은 부조리는 아니지만 읽어보면 결국 우리는 부조리라는 것을 느끼는 거지.
그 부조리에 대한 해결책은 자살, 희망, 그리고 따로 말은 안 했지만 단순 관조인 것 같음. 초반부터 신념과 자살을 자꾸 엮으면서 해결책일 것처럼 탐구하는데 뒤에 남은 거 보면 아니겠지만 암튼 읽아봐야할 것 같고 결국 어쨌거나 희망으로 가지 않을까싶네. 카뮈 본인은 실존주의가 아니라 하지만 뭐 결국 실존주의 말마따나 우리를 가로막는 수많은 선택들 사이에서
저항하고 살아남는 것이 목표겠지. 마지막으로 관조... 이건 희망도 없고 목표도 없이 똑같은 일상을 부조리를 느끼든 느끼지 않든 반복하는 게 아닌가 싶음. 아무튼 뒤를 마저 읽어보고 다음주에 오겠읍니다.
카뮈는 사르트르의 예시를 들며 우리의 일상 속의 단절을 직시할 것을 굉장히 강조한다. 이후 세계와 자신의 단절, 이 단절을 직시함으로 인해 희망과 자살이 생겨나는데, 이 자살은 과연 옳은 것일까를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음. 희망은 비합리에 대한 굴복과, 일상세계에서의 합리화로 구분되는데, 이것도 부정적으로 보고 있음. 그럼 과연 우리는 이 단절, 곧 부조리로 명명되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화두로 삼고 있음. 씨발 다 읽어버려서 스포의욕 억제하느라 개힘ㅂ드노
늦어서 미안하다...불침번이여서 연등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