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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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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은 "놀랍지 않게도~완성하지 않았다." "말할 것도 없이~만들어 지지 않았다."이다.

미루기와 미완성으로 악명이 높은 다빈치는 계약할 때 완성 기한을 지키지 못할 시 패널티가 주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놀랍지 않게도 기한과 패널티를 무시하고 자기 식대로 작품을 만들거나 만들지 않았다.

그가 30세에 밀라노로 떠나기전 피렌체에서 의뢰받은 3작품 중 2작품은 미완성이고 나머지 하나는 시작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어떤 작품들은 미완성으로 두고 다시는 쳐다도 안봤으며 어떤 작품들은 평생을 가지고 다니며 수정했다.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던 작품들도 수정 의지가 있었으니 미완성이라고 볼 수 있다.


미루기의 주된 원인인 그의 별난 호기심은 사방으로 향했으며 이제 모든 사람이 알듯이 그는 수 많은 것들을 탐구했다.

구글 같은 검색 엔진이 없던 그 시절에 다빈치는 전문가들과 교류하거나 (옷도 멋쟁이로 입는 핵인싸였다고 한다.)

직접 실험하고 세세하게 기록했다.


그 중에는 현대의 지식으로 봣을 때 시간낭비로 보여지는 것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컴퍼스와 자만 사용해서 원과 똑같은 면적의 정사각형을 작도하는 것'처럼 스스로에게 과제를 주고 탐구했지만

현대 지식으로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또 그는 곡선 도형을 직선 도형으로 바꾸기 위한 169개의 공식을 만들었는데

케네스 클라크라는 사람이 이것들을 일컬어 "수학자들은 전혀 관심 없고 미술사학자는 더더욱 관심 없는 계산"

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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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것에도 차단되지 않는 호기심과 의욕을 갖고 그것을 알아내려하는 과정 자체를 죽을때까지 유지했다.

그러니 그 상태를 유지시키는 어떠한 행위도 그로선 쓸데없는 짓이 아니었다.

그가 그에게 내린 과제 중에는 "딱따구리의 혀를 묘사하라"라고 써있기도 했다. 대체 누가 딱따구리 혀를 묘사하고 싶을까

그는 그러고 싶었고 그렇게 했다.


그는 공증인의 사생아였기 때문에 가난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온갖 것들에 호기심을 가지고 세월아 네월아 실험할 수 있을만한

부자는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후원자가 필요했다. 그렇다고 돈을 대준다는 이유로 그의 호기심과 실험을 방해하는 후원자는

필요없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부유하고 유서 깊은 에스테 가문의 후손인 이사벨라 데스테는 레오나르도가 그려준 자신의

초상화를 갖고 싶었지만 레오나르도는 흥미가 없어 절대 그려주지 않았다. (그녀는 다른 화가들이 그린 그림 모두 자신을 뚱뚱하게

그렸다고 했다고 한다.) 매번 시간이 없다고 정중히 거절당한 그녀는 그가 자신의 그림을 그려줄 수 있는지 사람을 시켜 알아보게 했다.

임무를 받은 피에트로는 그녀에게 이렇게 답신했다.


"제가 들은 바에 따르면 레오나르도의 생활은 아주 불규칙고 불확실하며 그는 그저 그날그날을 위해

사는 것 같습니다."


그는 루드비코 공작에 후원을 받기 위해 과학적 지식과 미술 지식을 합한 창의적인 군사 기계도면들로

이력서를 채웠지만 말할 것도 없이 그 군사기계들은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밀라노에 그가 처음으로 취직한 것과 이름을 날린건 '야외극' 이었다.

쇼를 위한 기발한 장치들을 만드는 것은 과학과 미술의 결합을 좋아하는 그의 적성에 들어맞았다.

물론 그림과 해박한 지식으로도 곧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피렌체에서부터 갈고 닦은 미루기와 미완성의 습관도 더불어서.


루드비코 공작이 의뢰한 <최후의 만찬>은 다양한 면에서 다빈치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림 자체는 과학적 미술적으로 완벽했으며 그림이 그려진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장은

느긋한 다빈치의 작업 방식을 보고 너무 꼴배기 싫어했다. 그는 한낮에 갑자기 와서 몇번 붓질하고

가기도 했다. 수도원장은 루드비코에게 이 사실을 꼰질렀다. 공작에게 불려간 다빈치는

자신의 작업방식을 장황하게 설명하고 유다 모델이 아직 미정인데 계속 수도원장이 절 이렇게

괴롭히면 유다 얼굴에 수도원장을 그리겠다고 했다. 그러자 수도원장은 입 꾹 닫고 상관하지 않았다.


기한을 훨씬 넘긴 최후의 만찬은 프레스코화기법으로 그려졌는데

이것은 회반죽에 벽이 마르기 전에 그림을 재빨리 그려넣는 기법이라고 한다.

당연하게도 다빈치와는 맞지 않는 방식이었으며 다빈치는 자신이 만든 합성 안료를

사용해 그림을 느긋하게 그렸다.

최고의 권력자도 교회의 수도원장도 전통적인 그림 기법도 그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그는 그렇게 최후의 만찬을 완성시켰다.

하지만 최후의 만찬은 그 합성 안료 때문에 보존 상태가 오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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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는 마치 야외극처럼 살았던 것 같다.

재미있는 순간의 쇼를 위해 모든 것을 동원하는 것.

그의 작품들은 이제 완성 미완성 구분없이 모든 것들이 추앙 대상이 되었다.

어쩌면 모든 것에 완성과 완벽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은 마음을

다빈치를 추앙하는 것을 통해 드러내는 것 같다.



["그는 하루는 두오모의 성가대석 형태를 고민했고, 다른 날은 군상공학자로서

베네치아와의 전쟁을 고민했고, 다른 날은 루이 12세의 밀라노 입성을 기념하는 야외극을

기획했다."클라크는 "레오나르도는 자신이 좋아하는 다양한 일을 했으나, 그 때문에 우리 후손들은

더 가난해졌다."라고 한탄했다.

인류의 예술 작품 목록에 [앙기아리 전투]나 다른 잠재적인 걸작이 빠진 것을 감안 할 때,

클라크의 말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레오나르도가 야외극부터 건축에 이르는

여러 관심사를 쫒느라 보낸 시간 탓에 우리 후손들이 가난해졌다면, 그 덕분에 그의 삶은

더 풍요로워진 것 역시 엄연한 사실이다. 50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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