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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방은 삼중당 문고판 괴테의 <베르테르> 번역본...
   
만리타향 머나먼 곳으로 출장을 나온 관계로 
가장 가볍고 작은 부담없는 책을 찾아서 가지고 나온 것이
바로 저 삼중당 문고로 나온 <베르테르> 번역본이었음.
- 1980년대 중반 딱 700 원이었던 심플한 삼중당 문고.  
  
이번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괴테나 베르테르라기보다는...
저 책의 번역자 '박환덕' 교수에 대한 이야기임.
밤에 누워서 잠자기 전에 한 페이지씩 읽으면서 가슴에 확 와 닿는 것은
역시 번역은 외국어 실력 못지 않게 한국어 실력이 엄청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릴 적에는 누가 어떤 레벨의 번역을 하지는 알 길이 없으므로, 그냥 읽었음.
그러다가 중학교 3학년 시절 거의 2달 걸려서 범우사에서 나온 <양철북>을 읽고...
귄터 그라스에도 꽂혔지만 더 나아가 번역자 박환덕 교수에게도 꽂혔음.
너무 놀라서 학원사 세계문학전집으로 나온 <넙치>를 읽었는데 역시 박환덕 번역이었고,
삼중당 문고로 나온 <국부마취를 당하고>를 찾아 읽었음 - 이 책도 박환덕 번역이었음.
  
박환덕 교수는 귄터 그라스를 잡고 한 권씩 번역하면서 도장 깨듯이 과제를 부러트렸는데,
작가 귄터 그라스가 엄청나게 지저분한 문체로 정신사납게 글을 쓰는 데도 불구하고
상당히 완성도 높은 우리말 구사로 읽는 맛을 잘 살려서 전달하였음.
   
이후 독일어 권 작가의 책이라면 박환덕 교수의 번역을 일부러 찾아다니게 되었는데...
범우사에서 나온 카프카 선집 번역은 거의 최고 수준이었고, 정말로 마음에 들었음.
박환덕 교수는 카프카 학회 회장을 오래 역임하는 등 카프카 전문가였는지라...
    
하지만... 알고보니 박환덕 교수는 완벽한 번역이라는 평을 받는 사람은 아니었음.
한국어 구사 능력이 너무 좋아서 뻑뻑한 원작의 문체를 유려하게 바꾸어 버리고,
원작에 충실하기보다는 읽기 좋은 의역을 많이 하는 역자로 분류되는 케이스...
    
21세기 들어서면서 새로 출간되어 나오는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에서는
대개의 경우 박환덕 교수의 옛 번역은 채택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어느덧 그의 번역본은 범우사 정도에서만 나오고 있는 정도인데...
   
이십 여 년 만에 박확던 교수의 <베르테르> 번역본을 읽고 있으려니까,
과거 1세대 번역가들이 남긴 번역본이 엄밀하게 보면 정확성이 떨어진다하더라도
한국어 구사 실력에 의한 능란한 문장 전개는 요즘 사람들이 따라잡기 어렵다고 생각됨.
"책 읽는 맛이 제대로 느껴지는 번역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그런 생각을 도저히 버릴 래야 버릴 수가 없으니...
   
정확한 완역이냐, 읽기 좋은 의역이냐
어느 쪽이 더 좋은 것인가라는 논란은 끝이 없지만....
학문적으로 연구도 해야 하고 정확한 게 중요한 사람은 그런 번역본 찾아 읽으면 될 것이고,
어떻든 수 십 년 동안 이런저런 책을 사 읽은 경험에 의한 판단 및 개인적인 취향에 의거하여
"유려한 문장력으로 즐겁게 읽을 수 있게 하는 번역자와 그 사람의 번역본"을 선택하겠음.

그런 의미에서... 박환덕 번역은 개인적으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좋은 번역본임.
    
    
[사족 성격의 잡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베르테르>에 등장하는 '롯테'에게는 도저히 정이 안감.
딱히 정숙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남자에게 사랑을 제대로 주는 것도 아니고,
상황이 그렇게 흘러간다고 해도, 결과적으로는 남자를 가지고 노는 느낌이었음.
    
롯데 그룹은 창업주가 <베르테르> 책을 너무 좋아해서
여주인공의 이름을 따 회사 이름을 '롯데'라고 지었다는데....
    
개인적으로 로테는 딱히 괜찮다 싶거나 매력적인 캐릭터가 아니어서, 
자기 회사 이름으로까지 삼았다는 롯데 그룹의 창업주의 마음이 잘 이해되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