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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조선후기 노론의 영수인 송시열의 문집과 그에 대한 국왕 및 후대 문인들의 그에 대한 평가를 담은 책이다.. 송시열은 17세기 보수 정치가의 대명사이지만 그 역시 양란 이후 혼란한 조선의 현실과 변화하는 국제 정세에 대해 눈과 귀를 닫고 있지만은 않았다. 


다만 그가 주자의 시대와 당시 조선이 처한 상황이 비슷하다고 느꼈고, 송시열 자체가 주자를 성인으로 생각하였기에 그의 경세사상은 주자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송시열의 경세사상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관념적 부분과 제도변통론이 그것이다. 


우선 관념적으로는 복수설치를 위해 도통의 연원을 밝힐 것과 끊임없이 수양하여 군주 스스로가 성인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이를 위한 인욕의 제거는 수반되는 것이었다.


제도 변통론의 측면에서는 유형원 등의 실학 계열과 다르게 지주전호제를 유지할 것을 주장했다. 대신 균부균세를 원칙으로 하여 공안을 개정하고, 부세 제도를 개정한다면 농민들의 삶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또한 궁방의 토지 침탈과 왕실의 사치가 농민 생활에 커다란 문제가 된다고 보았기에 내수사를 혁파하고 재정을 일원화 할 것을 국왕에게 요구했다. 또한 효종과의 이야기에서 왕실의 토지 침탈을 은유적으로 비판한 것을 볼 때 그 역시 당시 시대 상황을 나름대로 파악하고, 제도개혁을 위해 힘썼음을 알 수 있다. 


다만 그 자신이 유형원, 정약용 등의 실학자 계열과 달리 중앙 정치의 중심에 있었기에 급진적인 제도개혁론은 주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올린 기축봉사와 정유봉사를 보면 복수설치를 위해 왕조의 폐단을 개혁하고자 하는 의지는 충분했던 것처럼 보인다.


개인적 면모에서는 출가하는 딸에게 준 우암계녀서에 잘 나타나 있다. 비록 시대적 한계로 가부장적 면모를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지만 딸을 매우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과 함께 노비 등에게도 인간적 대우를 주문하는 등 그가 만악의 근원이라는 이덕일의 주장과 완전히 반대되는 모습을 보인다. 


우암선생사실기 등은 그 문하에서 자성한 글이기에 당파성이 짙게 보이지만 적어도 그가 학자로서는 존경할 만한 인물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종합하자면 송시열은 비록 그의 정치적 성향에서 지나치게 노론 편향적인 경향을 보인 것은 맞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잘못 생각하는 것처럼 그가 당파에만 관심이 있거나 제도개혁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것이 아니다. 


당연하지만 송시열은 유학자이면서 동시에 경세가요. 딸을 둔 아버지이자 정치가라는 다양한 면모를 지닌 인물이다. 따라서 송시열을 단편적으로만 평가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