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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성 혐오는 가능한가?: 페미니스트 철학자 윤지영의 물음에 대한 한 남성 문화사회학자의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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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이나 여성학에서 말하는 '혐오'의 의미가 일반적인 '혐오'와 다른 의미를 쓰며 그런 의미에서 '남성혐오'(이하 남혐)은 없단 것을 들었다. 그렇게 알고는 있었지만 구체적 정립이 되지 않았고 논문을 찾아보게 되었다.
저자는 윤지영의 논문을 리뷰(?)한다. 중요했던 포인트는 가부장제나 기존 남성/여성 이분법적 체계에서 여성은 '남성의 대립항'으로 존재했으나 실제로 타자는 그러한 완전한 이분법적 환원이 불가능하단 부분이었다. 또, 그는 '혐오'를 "집단적 에토스로 일컬어지는 주류적 도덕규칙들과 가치체계들, 그것들을 바탕으로 사는 습성과 통념적 행동 패턴들의 재생산"으로 정의한다. 윤지영의 시각에서 한국의 에토스(지속적인 특질, 관습)은 남성 로고스를 체화한 악한 습속이다. 앞서 혐오의 정의를 생각하면 여성은 타자화되고 왜소화된 남성의 대립항으로, 주류적 도덕규칙을 주체적으러 전유하지 못했으므로 남성에 대한 '혐오'가 불가능함을 논증한다. 그러므로 메갈리안 등에서 일어나는 일은 '단순 혐오'가 되는 것이다. 이후 내용에서는 이러한 이분법적 프레이밍의 문제점과 '차이의 보편성'을 인간사회 작동의 초월적 기의로 삼을 것을 제시한다. 그 뒤로 사회학자인 저자의 질문이 던져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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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동안 남성성, 여성성 자체가 아예 구성된 허구인가 생각하는 동시에 그렇다고 그런 차이를 완전 부정하기도 어렵다고 생각했었다. 근거없는 사견으로 남성성 여성성 자체는 어느정도 실재하는 것이 아닐까 싶긴하다. 스펙트럼에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할 뿐. 아무튼 그러한 '남성/여성성'의 프레임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위계적인 구조를 바탕으로 형성되면 문제 아닐까? 하는 생각이 첫 번째로 들었다.
하나 더, 직관적으로는 여성이 남성의 대립항으로 존재했으며 위계질서 속에 있었음을 알겠으나 이걸 좀 더 명증적으로 확인할 방법은 뭐가 있는지 궁금하다. 사회학인가? 이건 원 논문을 봐야할 것 같다.
세번째로 '차이의 보편성'이 인간사회 유지의 초월적 기의가 되어야한다고 하던데 이게 과연 가능한지, 구체적으로 어떤건지가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메갈리안의 행위가 '남성 혐오'가 아니란걸 납득하더라도 그게 과연 '전략적으로' 괜찮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난 '폭력을 동반한 저항'은 집단적 규모의 구조적 억압이나 리바이어던에 대항할 최후의 수단으로써만 용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메갈리안의 행보는 그 정도의 저항을 했다고 보긴 어렵다. 그렇다면 그런 '단순 혐오'의 언어가 정치적, 전략적으로 올바른 선택이었을까 하는 의문을 떨치기가 어렵다. 아무튼 꽤 재밌고 생각할 거리가 많은 논문이니 이 논문과 윤지영의 논문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난 세 편의 논문을 모두 읽고 글을 써보지 않을까 싶다.

2. 도덕의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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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것은 제 1 논문이다. 오늘 막 제 2 논문에 들어갔다. 어렵지만 상당히 재미있고 충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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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니체는 제목 그대로 도덕의 계보를 풀이한다. 그는 영국학자들의 '공리', '망각'을 토대로 한 기존 설명을 비웃고, 새로운 가설을 제시한다. 귀족적인, 기사적인 도덕과 성직자적 도덕을 구분짓는데, 그는 성직자적(유대적, 노예적 그 어떤 것도 좋다) 도덕이 세계에 퍼져 사람들을 병들게 했다는 관점을 가지고있다.
귀족적 도덕은 건강한 것, 즐거운 것, 명랑함, '좋음'에 근거한 도덕이며 그러하지 못한 것이 '나쁨'이 된다. 그러나 성직자적 도덕, '선'과 '악'을 토대로하며 패배주의적이고 정신승리적 도덕이다. 이 도덕은 귀족의 도덕을 '악'한 것으로 하며 그러한 '악'에 대한 대립항으로서 '선'이 설정된다. 따라서 굴종적이고, 의무적인 도덕이다. (누워서 기억에 의존하여 쓰는 글이다. 오류가 있다면 지적해주길 바란다) 니체는 이런 류의 도덕을 비난한다. 가장 놀라웠던 부분은 앞서 보았던 논문과 니체의 논증에 있어 상당히 유사한 부분이 보인다는 것. 이항대립을 통해 설명하는 것이 겹친다. 이러한 구조주의적 설명이 니체가 시초인지는 아직 앎이 부족하여 모르겠으나 그의 통찰력이 시대를 앞서있음은 분명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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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궁금한 점이라면, 고귀한 주인도덕은 어째서 굳이 나의 '좋음'에 대비되는 '나쁨'을 상정하고 그것과 거리를 둠으로 자신을 더 완벽하게 만들려고 하냐는 것이다. 이런 이항대립에서 주인도덕은 분명 주체적이긴 하지만 '대립항'을 통해야만 완벽해진다는 것은 그 자체로 완벽하지 못함의 반증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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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서 대충 쓴거라서 글이 좀 두서없음에 양해를 바라고... 혹시나 니체 오독한거 있으면 지적부탁함. 혼자 읽는데 어렵기도하고 기억이 섞여있을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