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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전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명실상부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대통령이었다고 할 수 있다.

청소부와도 주먹 인사를 나누며 보여준 백악관 직원들과의 허물없는 관계, 농구하는걸 좋아하는 스포츠광적인 면모, 공적인 자리에서도 농담을 주고받는 여유, 뛰어난 언변 등은 전임, 후임 대통령이 보여주었던 딱딱한 미국 대통령에 대한 이미지를 크게 바꿔주었다.

또한 미국 최초의 유색인종 대통령으로써 당선 당시 세계적으로도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고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었다.

'약속의 땅'은 그런 오바마의 정치인생을 본인 스스로 기록한 책이다.
900쪽이 넘는 분량에 처음엔 겁먹었지만(심지어 본 책은 총 2권으로 기획된 회고록의 1권에 해당한다) 오바마의 글빨이 워낙 좋아서 차분히 읽다보면 의외로 쉽게 읽을 수 있다.

하와이의 작은 가정에서 태어난 꼬맹이에 불과했던 오바마가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
오바마는 자신이 시간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자신을 선택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 말대로 워싱턴의 정치는 우연에 우연이 겹쳐진 결과이다.
연방 상원의원이었던 그가 이라크 전쟁을 처음부터 비판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정치적 입지를 다지고(이라크 전쟁을 처음엔 찬성한 힐러리를 후보 경쟁에서 이기는 주요 원인이 된다) 각종 언론이 주목하게 되자, 오만가지 정치적 기류가 작용하여 상원의 유명인사가 되었고 최후에는 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되기에 이른다.
책에서는 이런 오묘한 정치흐름이 자주 등장하는데,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중 하나는 미국과 전 세계에서 발생했던 굵직한 사건들을 미국 대통령의 관점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 아프간 전쟁, 아랍의 봄 등등 많은 사건들을 여러 장에 걸쳐 설명하는데, 현장감이 엄청나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수없이 많은 선택을 해야 한다. 막중한 책임감에 시달리면서도 개인적 신념과 실리 사이에서 저울질을 해야 하며, 그 끝에서 항상 이성적 판단을 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줄곧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느끼게 된다. 가령 서브프라임 사태의 책임을 놓고 부도덕한 은행 간부들을 처벌하느냐 경기 침체 장기화를 막기 위해 놔두느냐는 이러한 수많은 고뇌중의 일부이다.(여기서 오바마는 은행 간부를 처벌하지 않고 대신 경기부양책으로 8000억 달러를 내놓는 선택을 하는데, 이 때문에 경기는 어느정도 회복했지만 지지율이 많이 떨어졌다) 미국의 정치도 쉽지 않음을 느낀다.

다른 회고록이 그렇듯, 여기서도 저자의 주장이 강하게 드러난다. 오바마는 주변인들로부터 항상 이상주의자로 묘사된다. 이런 미국적 이상주의는 종종 다른 나라와의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평소에 뉴스를 보다보면 세계 정상들이 만나서 악수하며 담소를 나누는 영상을 종종 볼 수 있다. 불편한 관계에 있는 나라끼리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던 사람은 이 책을 읽으면 궁금증을 어느정도 해소할 수 있을것이다.
특히 러시아와 중국을 순방하는 장면은 꽤 재미있었다. 오바마의 시각에서 설명하는 푸틴 총리, 후진타오 주석은 뉴스로 통해 보는 대담과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아쉽게도 백악관을 둘러싼 정치암투나 음모같은것은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몇몇 정치인들과 언론의 뒤통수 공작은 몇번 나오기는 한다.(트럼프의 무슬림 음모론 등)
허나 오바마가 이 책을 집필하면서 휴머니즘을 컨셉으로 잡았는지 백악관 식구들의 노고와 그에 따른 인간적인 면모를 더 많이 보여준다. 특히 백악관 보좌진들은 대통령이랑 농구도 하고 카드게임도 하는 등 거의 친구나 마찬가지로 지내는데, 이 사람들과의 일화도 꽤 재미있다.
거기에 더해 오바마 스스로도 가족 이야기를 곳곳에 집어넣어 인간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주 의원이던 시절부터 대권에 도전하기까지 가족과의 숱한 갈등이 있었고 바쁜 업무 때문에 딸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수 없는데 대한 아쉬움을 숨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자라는 두 딸을 보고있으면 책을 읽는 독자까지 흐뭇해진다.



이 책을 읽고 나서의 가장 큰 변화는 내가 오바마를 존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누가 알겠어요? 우리가 해낼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어요. 하지만 제가 확실히 아는게 한가지 있어요. 제가 오른손을 들고 미국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는 날 세계가 미국을 다르게 보기 시작하리라는 걸 알아요. 이 나라 전역의 아이들ㅡ흑인 아이들, 히스패닉 아이들,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아이들ㅡ그 아이들도 자신을 다르게 보리라는 걸, 지평이 넓어지고, 가능성이 확장되리라는 걸 알아요. 그것만으로...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을 거예요."

오바마가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면서 한 말이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어서 실제로 많은 아이들에게 영향을 끼쳤을까? 지금의 나는 확신할 수 있다. 그가 대통령이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그랬을 것이다. 오바마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의 지도력은 전 세계의 모든 공직자들이 본 받을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