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타는 이웃집으로 들어가 아이를 구해서 나오는 영웅에게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합니다. 그러나 만약 그가 아이뿐만 아니라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도 함께 찾아서 들고나오려고 5초를 허비하는 위험을 무릅썼다면 나는 그와 악수할 겁니다.
어떤 만화가 기억납니다. 굴뚝 청소부가 높은 건물의 옥상에서 떨어지다가 철자법이 틀린 간판을 발견합니다. 정신없이 떨어지는 와중에도 그는 왜 아무도 저것을 바로잡지 않았는지 궁금해하지요.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태어나는 순간부터 건물 최상층에서 묘지 돌바닥을 향해 추락하며 옆을 스쳐 가는 벽의 무늬에 대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함께 고민하는 존재입니다.
위험이 임박한 상태에서도 사소한 것에 놀라고 고민할 수 있는 능력, 영혼의 여담이자 인생이라는 책 속의 각주인 이런 능력은 의식의 여러 형태 중 가장 상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상식이나 상식적인 논리와는 크게 다른 이 어린애 같고 호기심 많은 의식 속에서 세상이 좋은 곳임을 깨닫습니다.
얌전한 예언자, 동굴 속의 마법사, 분노한 예술가, 규율에 따르지 않는 학생, 이들은 모두 신성한 위험에 처해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들을 축복합시다. 이 괴짜들을 찬양합시다! 자연의 진화 중 어느 한 집안에서 괴짜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아마 원숭이는 인간이 되지 못했을 겁니다. 항상 정해진 자손만 낳는 것을 거부할 만큼 긍지 높은 정신을 지닌 사람은 모두 뇌의 뒤편에 비밀스러운 폭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안합니다. 그냥 재미를 위해서라도 그 폭탄을 꺼내 상식이라는 모범도시에 조심스레 떨어뜨리자고요. 폭발의 눈 부신 불빛 속에서 신기한 일들이 많이 일어날 겁니다.
한 사람의 신조, 넥타이, 눈동자, 생각, 버릇, 말투의 색채는 시간이나 공간 속 어느 지점에서 바로 그 색채를 증오하는 군중의 치명적인 반대와 맞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총명하고 비범한 사람일수록 화형대가 더 가깝지요. 낯선 사람을 뜻하는 stranger(스트레인저)는 위험을 뜻하는 danger(데인저)와 항상 각운을 이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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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사람이 진정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상식을 깨뜨리고 오로지 순수한 예술의 세계에 향유하는 그 태도가...
예술가는 상식을 부수는 자로써 어쩌면 그가 롤리타를 창조한 이유는 진정한 예술가들과 독자들에게 위로를 전하려 한것이 아니었을까?
그들의 신념에 대한 용기를 잃지 말라고,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끝까지 관철시키라고...
문학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은 어쩌면 앨리스처럼 구덩이에서 떨어지는 순간 찬장과 책이 흘러넘치는 벽 속에서 "오렌지 마멀레이드"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단지를 집어들고 자신의 고양이를 떠올리며, 역시 상식을 뒤엎는 생각: 지구를 관통하고 끝까지 가면 반대로 돼있는 지구 즉 antipath-반대로 걷는 인간과 antipathy-혐오스러운 자를 고려한 언어유희를 우연히 생각해내며 떨어지는 어두운 구덩이 속에서 문학이란 빛을 바라보는 자들이 아닐까?
"if a violin string could ache, i would be that string."
"만약 한 바이올린 현이 아플 수 있다면, 내가 바로 그 현일 것이다."
그를 존경한다.
글 존나 멋있다....
참 뭔가 이 아죠시는 쿤데라랑 생각하는게 비슷한 거 같다가도 정작 미학과 작품에서는 완전히 반대되고... 어느 비슷한 분야에 업적을 쌓은 사람들은 서로 통하는게 있는 건가
롤리타가 1955년도에 쓰였단건 지금도 믿기지가 않음
지금 쓰였어도 믿기지 않겠지만
어디서 한 말이야?
나보코프 문학 강의
고마워
출처좀 개멋지다ㄹㅇ - dc App
나보코프 문학 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