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이미 우리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바로 그 평균적인 이해는 현존재 자신의 본질적인 체제의 일부이다.
여기에서 논술한 '전제'의 의미는, 어떤 근본명제를 내걸고 거기에서 일련의 명제를 연역적으로 이끌어 내는 설정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을 설정하는 탐구과정 안에는 순환논증이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물음에 대한 대답에서 목적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연역적 논증이 아니라 근거를 거시적으로 밝혀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이유를 연역적으로 찾지 말고 자신의 의미를 자신이 찾으라는 거 같은데 '거시적으로'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개소리같은 근거로 의미를 찾지 말라는 뜻이려나? 아마 연역적으로 생각하면 순환논증에 빠질 수밖에 없는 물음이니 그렇게 접근말라는 거인 듯.
이거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서 발췌한 문구인데, 내 생각으로도 그게 맞는 말인 것 같음. 마치,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 비슷한 걸 하라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듬.
아마 거시적이라는 것이 존재라는 것 자체가 어느 물건이든 어느 형상이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거시적으로 보라는 거 아닌가 싶음.
하이데거인건 알고 있지. 내가 하이데거를 몰라서 아는 척을 안했던 거.. 저 질문 제대로 이해하려면 현존재랑 존재자 존재 다 거론하면서 생각해야 거시적으로가 풀릴거임.
내 생각엔 비트겐슈타인 말대로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고민해봐야 좆망하니까 우리의 존재를 한층 업그레이드하는 방식으로 우리가 잘 사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는 뜻일 거 같아. 굳이 우리의 사고방식이 우리의 일부라는 걸 말하는 거로 보아(내해석) 그 사고방식을 업그레이드할 생각으로 삶의 지표를 찾으라는 게 아닐까.
갓무위키에 따르면 내 말이 대충 맞는 추론인 거 같음, 존재자가 존재의 의미를 찾을 때 존재를 넘어 현존재가 된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