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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C. 에셔, 그리는 손들


내가 비록 괴델, 에셔, 바흐를 짧은 한마디로 요약하긴 했지만(여기에), 그런 식의 한마디로 요약하는 행위는 사실 이 책의 진정한 힘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거나, 혹은 심지어 이 책을 호도하는 거야. 이 책은 나의 성서들 중 하나이기 때문에,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조금 더 이 책에 대한 변호가 필요할 것 같다.


괴델, 에셔, 바흐는 역사에 남아야 할 걸작이야. 다른 사람들이 이 책을 어떻게 여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 심오해서? 그리 지식이 많이 들어 있어서? 그렇게 아주 맞는 말이 담겨 있어서?


그런 것들보다도, 내가 이 책을 높게 사는 이유는, 이 책이 책이라는 매체가 가질 수 있는 힘을 감명깊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야.


책이라는 것이 뭘까? 책을 읽는다는 것이 어떤 행위일까? 누군가의 말처럼, 인생의 길일까? 누군가의 말처럼, 사회부적응자들의 도피처일까? 혹은 누군가의 말처럼, 단순한 취미일까? 지금 독서 갤러리에 방문하는 '나'–이 글의 글쓴이인 '소견'이라는 고정 닉네임을 사용하는 어떤 특정한 사람만이 아닌–는, 왜 책을 읽는 것일까?


책이란 것이, 그렇게 어떻게인가 규정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책을 많이 읽어 왔고, 책이라는 매체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신중하게, 책이란 매체를 신격화, 신화화하지 않으면서도, 책이라는 매체의 힘에 대해서 정말로 충분히 잘 이해하고 있는 걸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책이라는 매체 자체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봐야만 했어. 이 한 권이 그런 총체적인 재검토를 해야만 하게 만들었지. 책의 표현, 책의 한계, 책의 힘, 책의 영향력, 책의 의미, 책의 정의.


어떤 사람은 이 책에서 논리를 읽어. 어떤 사람은 수학을 읽지. 어떤 사람은 예술을, 어떤 사람은 뇌과학을, 어떤 사람은 인공지능을, 그리고 어떤 사람은 철학을... 이러한 관점은 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해.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 책에서 읽어야 할것은 이것들이 아니야. 이 책을 논리나 수학으로 읽는 사람들은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에 역점을 두는 것이지만, 사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 책을 읽을 시간에 논리 교재와 논문을 읽는 것이 나아. 실제로 이 책에 부정적인 사람들은 그런 비판을 하기도 하지. 괴델, 에셔, 바흐와 같은 대중교양서를 읽으면서 오개념을 키우지 말고 제대로 된(!) 전문 교재와 논문을 읽으라고 말이지. 아마 크랙팟들과의 대립에 지친 전문가들의 다소 앨러직/히스테릭한 반응일지도 모르지. 어쩌면 이공계통 전문가들 사이에서 흔히 발견되는 오만한 인식론적 특권의식이 결합된. 또 한편으로, 이 책을 철학적으로 본다고 해도, 사실 심리철학적인 핵심주제에 대한 논변으로 보면 (개성적이기는 하지만) 주류 논의에서 다소 동떨어진 위치에 있고.


하지만 나는 이 책에서 그런 것들보다도, 다른 것을 읽었어. 나는 이 책에서 책을 읽었지. 위에서 여러 번 말했던 것처럼. 이 책이 책에 관한 책이라는 뜻이 아니야. 다만 나중에 돌이켜 보니 그런 것 같았다...는 거지.


이 책에는 어쩌면 저자인 호프스태터 자신이 의도했던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어. 저자는 이 책을 쓸 당시에 젊은 대학원생이었는데, 그는 이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책을 쓴 뒤에는, 함부로 말하건대, 그렇게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지. 아마 호프스태터의 모든 것, 아니, 그 이상이 담겨 있는 책이 이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야. 호프스태터는 물론 놀라운 지성과 성품을 가진 사람이지만, 때때로 사람은 자신의 능력 이상의 어떤 것을 창조해 내기도 하나봐.


다시 제목으로 돌아와 보자. 이 책이 뭐가 그렇게 대단한데? 빙빙 돌아가는 말만 했을 뿐, 결국 핵심적인 답을 하지는 않았잖아?


답은 읽어 보면 알게 될거야.


식상한 교훈 아니냐고? 원래 말로 듣고 보면 그런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