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음에 어떤 세계로 가는가, 하는 따위는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내 인생의 빛나는 구십삼 퍼센트를 삼십오 년 사이에 다 써버렸다 해도 그래도 상관없다.


나는 그 칠 퍼센트를 소중하게 가슴에 품은 채 이 세계가 형성되어 있는 모습을 어디까지고

바라보면서 살고 싶은 것이다. 


왜 그런지 알 수는 없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내게 주어진 하나의 책임인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확실히 어느 시점부터 내 자신의 인생과 삶의 방식들을 비틀듯이 하며 살아왔다.


그런데에는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다른 누구도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뒤틀린 채로 인생을 놔두고 소멸해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내게는 그것을 끝까지 지켜봐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내 자신에 대한 공정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나는 이대로 내 인생을 놔두고 갈 수 없는 것이다.


내 소멸이 아무도 슬프게 하지 않는다 해도, 또 어느 누구의 마음에도 공허함을 안겨주지 않는다 해도,

아니면 거의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해도, 그것은 나 자신의 문제인 것이다.


확실히 나는 너무나 많은 것을 잃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잃어버릴 것은 나 지신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내 안에는 잃어버린 것들의 앙금이 일몰 뒤의 빛처럼 남아 있어 나를 지금까지 살 수 있도록 해주었던 것이다.


나는 이 세계에서 사라져버리고 싶지 않았다. 

눈을 감자, 나는 마음의 동요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슬픔과 고독감을 넘어선, 나 자신의 존재를 뿌리부터 뒤흔드는 듯한 깊고 커다란 파도였다.

그 파도는 언제까지나 계속되었다. 나는 벤치의 등받이에 팔꿈치를 대고, 그 일렁임을 견뎠다.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구제할 수 없는 것이다.

바로 내가, 누구도 구제할 수 없었던 것과 똑같이. 


나는 소리 내어 울고 싶었지만 울 수 없었다.

눈물을 흘리기에 나는 너무 나이를 먹었고, 너무나도 많은 일들을 지나치게 많이 경험해왔다.


세상에는 눈물을 흘릴 수 없는 슬픔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고 설사, 설명할 수 있다 해도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일일 것이다. 

그 슬픔은 어떤 형태로도 바꿀 수 없으며 바람 없는 밤에 내리는 눈처럼 단지 조용히 마음에 쌓여가기만 하는 것이다.

 

좀 더 젊었을 때 나는 그런 슬픔을 어떻게든 언어로 바꾸어보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단어를 쥐어짜내보아도 그것을 누구에게도 전할 수 없었고 

자기 자신에게조차 전할 수 없다는 생각에 나는 그러기를 단념했다. 


그렇게 나는 내 언어를 폐쇄하고 내 마음을 닫아갔다.

깊은 슬픔이란 눈물이라는 형태를 취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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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게 한 부분 읽는데 뭔가 찡하다. 하루키는 확실히 글을 잘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