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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콜린스가 아일랜드 공화국 대표로서 영국-아일랜드 조약에 서명한 1921년 12월, 그는 영국의 비컨헤드 경에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아마도 내 사형 집행서에 서명한 것 같군요."

실제로 1922년 8월 22일, 아일랜드 내전 중 그 예언은 실현되고 말았다. 그는 코크 주변에서 IRA 대원들과 교전 중 한 아일랜드인이 쏜 총에 맞아 암살당한 것이다.

그는 1916년 아일랜드 독립운동의 서막이었던 부활절 봉기에서 활약했다가 항복하여 체포되었으나, 당시로서는 그저 일개 참가자(정확하게는 주도자 중 하나였던 플렁킷 백작의 부관)였기에 형무소 생활을 거쳐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는 영국의 경찰 조직과 군사 정보 조직망을 포착하여 먼저 그들을 암살하는 전술을 사용했다. IRA의 정보부장으로서, 그의 활약상은 대단한 것이었다. 정면 승부로는 도저히 가망이 없는 상황이었기에, 이러한 암살과 테러 전술은 매우 효율적인 저항 방식이었다. 당시, 1차대전을 갓 마친 영국의 지쳐 있는 상황을 노려, 영국 주민들의 염전 효과를 이끌어내는 데에도 매우 효과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영국이란 강대국을 상대로 완벽한 승리란 어려운 것이었고, 그 타협의 결과가 영국-아일랜드 조약이었던 것이다.

조약의 주요 내용은 오늘날의 북아일랜드에 해당되는 얼스터 지방 6개 주의 영국 잔류 여부를 자유 의사에 묻는 것 - 이 지역 인구의 다수는 친영파 개신교도였으므로 사실상 북아일랜드를 영국령으로 남기는 효과가 있었다 - 그리고 아일랜드 자유국이란 이름의 자치령이 되어, 자치권을 획득하지만 여전히 국가 원수로는 영국 국왕이 군림한다는, 반쪽짜리 독립안이었다.

여기에 반대한 아일랜드인들은 다시 자유국 정부를 부정하는 게릴라전에 들어갔으나, 마이클 콜린스는 이 조약은 어디까지나 독립을 위한 발판이며, 현실론적으로 '당면한 끔찍한 전쟁'을 피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 조약의 찬성론자로서 자유국 정부군을 지휘하여 반대파에 맞선다. 예전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내전이 일어난 것이다.

내전이 발발한 약 2개월 뒤, 그는 고향이었던 코크 근처에서 매복하고 있던 IRA의 기습 총격으로 사망하고 만다.

여러모로 아일랜드의 독립 영웅으로 추앙받는 인물로, 그의 뛰어난 전술과 고결한 인품은 존경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그의 말주변을 알려주는 일화를 소개한다.

아일랜드 자유국 정부가 출범한 1922년 1월 16일, 더블린 성에서 개최된 정권 이양식에서 영국 총독 핏잘란은 늦게 도착한 마이클 콜린스에게 말했다. "7분 늦었습니다. 콜린스 씨." 그러자 마이클 콜린스는 이를 되받아 답했다. "우리는 700년을 기다려 왔으니, 당신이 7분쯤은 참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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