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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인간과 부대끼며 살아간다. 인간(人間)이라는 단어부터가 사람과 사람 사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정밀한 의사소통 능력은 인간의 힘의 원천이자 가장 큰 특징으로 여겨져왔다. 인간은 이 능력을 바탕으로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대자연을 정복했고, 거대한 문명을 건설했다.
물론, 이 의사소통 능력은 이런 놀라운 힘의 근원으로써의 의미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즉 누군가의 남편으로서, 친구로서, 애인으로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제대로 보고, 들을 수 있는 능력은 중대한 기능을 수행한다. 인터넷이 발전함에 따라 익명성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의사소통 방식이 등장했지만 현실에서의, 피와 살을 가진 다른 인간과 얼굴을 맞대는 관계의 중요성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이런 '편리한' 인간관계가 가능함에도 여전히 현실에 집착하는 우리의 모습은 이를 역설하고 있다.
영화 <퍼펙트 센스>의 한 장면. 요즘 들어 더 자주 생각나는 씬
그렇다면 이 능력에 문제가 생겼다면 어떨까. 제대로 보고 들을 수 없다면? 눈과 귀가 제대로 달려 있다고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의사소통이라는 것이 말만큼 간단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상 속 간단한 대화에서조차 하루가 멀다 하고 서로를 오해하고 의심한다. 여기에는 편리한 변명이 따라붙는다. '우리는서로 잘 모르니까'. 비겁한지는 몰라도 분명한 사실이긴 하다. 나 자신도 잘 모르는데, 하물며 남을 어떻게 잘 알겠는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집 <대성당>은 이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의 시각, 촉각, 청각은 지극히 멀쩡하다. 하지만 그들은 영 잘 듣지를 못한다. 개중에는 알코올 중독환자도 있고, 괴로운 과거에 갇혀있거나 지독하게 무관심한 인간도 있다. 여하튼, 이들의 공통점은 제대로 보고, 듣고, 말하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작가가 이런 '눈 뜬 장님들'에게 세상을 보여주는 방법은 참으로 별게 없다. 카버는 '아메리칸 체호프'답게, 사뭇 무덤덤한 태도로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이 그간 보지 못했던 세상에 약간 조명을 비춰줄 뿐이다. <깃털들>에서는 아이를 가지고 싶지 않다는 젊은 연인들에게 다른 가족-지독하게 못생긴 아이를 가진-을,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서는 단란한 가정에 뜻밖의 불운을, <내가 전화를 거는 곳>에서는 알코올 중독자인 주인공 본인과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환자를, 그리고 <대성당>에서는 자신과 관련되지 않은 것들에는 눈 돌릴 생각을 않는 이에게 맹인을 보내주는 식으로 말이다.
이에 대한 주인공들의 반응 또한 각양각색이다. 톱니바퀴 같은 일상에서 잠깐 발생한 괴현상으로 치부해버리거나, 색다른 세계에 감응하여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변화를 주고자 하기도, 아니면 이제는 너무 늦었다고 뒤늦게 깨닫는 이들도 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 속 주인공들과 독자들에게 어떤 모범답안도 내주지 않는다.
나 역시 답은 알 수 없다. 체호프의 글을 읽으며 간혹 아리송함을 느꼈듯, 카버의 글에서도 그가 암시하는 것이 절망인지, 희망인지, 그것도 아니면 불변인지 도통 알 수 없는 때가 자주 있었다. 하지만 총 9편의 단편에서 공통적으로 눈에 띄는 것 하나는 확실하다. 주인공들이 비로소 그간 보지 않던(혹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타인을 조금 더 알아갈 수 있으리라는 것. 불가해한 무언가를 마주치며, '우리는 잘 모르니까'라는 변명으로 끝나지 않고, '그래서 더 알아가려고 노력해야 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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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단편 몇 개는 그리 마음에 꽂히는 것이 없었다. 미국의 체호프로 명성이 자자하고, 영화 <버드맨>에서도 그의 작품이 중요하게 언급되기에 꽤나 기대가 컸기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책의 첫 번째, 두 번째 단편이 나와는 영 맞지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체호프도 지금이야 참 좋아하지만 민음사 단편선 중 앞에 있는 것 두세 개는 영 나와 맞지 않아서 '이번 책은 꽝이네'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으니.. 그리고 카버는 확실히 체호프에 비해 더 건조하다. 체호프는 묘사는 풍성한데 반해 카버는 묘사까지 지극히 건조해서 좀 과한 느낌이 있었다. 그를 보고 '더러운 사실주의(dirty realism)'의 대표격이라고 한다던데, 참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보석 같은 작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내가 전화를 거는 곳>, <비타민>, 그리고 화룡점정인 <대성당>까지. 이것조차 어찌 보면 체호프를 좋아하게 된 과정과 비슷하다. 확실히 단편 작가들은 짧은 호흡을 여러 번 취하면서 맛볼 수 있는, 장편 작가와는 다른 색다른 매력이 있긴 하다. 물론 그 짧은 호흡이 아쉬울 때도 있지만.. 그 아쉬움조차 매력 아니겠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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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맛 소설도 좀 썼나보네.. 나도 그냥 이런게 좋은듯
좋은 감상 잘봤어
카버는 문체가 지독히 건조하고 내용은 돌연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아서 감상문 쓰기 난감하더라. 잘 풀어낸 감상 읽고 간다. 추천!
그래서 몇개 읽어봐야 좀 느낌이 오는 것 같기도 함. 처음 두세개는 이게 뭔가 싶었는데 아리송한거 몇개 읽다보면 좀 색다름. 해설에서도 잘 나와있는데 단편들끼리 합을 맞추는 느낌이 좀 있는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