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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30

논어는 공자의 제자들이 스승과 나누었던 대화를 기록해 정리한 책이다. 공자가 직접 집필한 책이 아니기 때문인지 특정한 주제나 내용이 정해져 있지 않으며, 원문읽기에도 공자의 유명한 제자 중 한 명인 증자가 매일 반성했던 세 가지와 같이 후대에 덧붙인 것 같은 이야기가 더러 실려있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66쪽)라는 유명한 논어의 첫 구절을 지나, 내 눈길을 사로잡은 문장은 ‘교언영색’을 경계한 말씀이었다. 의역이 들어가 더욱 신랄하게 느껴지는 이 문장에서 알 수 있듯, 공자는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을 싫어해 평소에도 재여와 같이 언변이 뛰어났던 제자들을 엄하게 꾸짖곤 하였다. 어찌보면 공자가 제자들에게 너무 가혹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고대 그리스에서 궤변과 비논리적인 호소에 능한 소피스트들이 위세를 떨쳤던 것처럼 공자가 살던 고대 중국에서도 제후나 가신들에게 자신의 언변과 지식을 뽐내 등용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공자가 말의 무게에 엄격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입시나 취업 등을 이유로 면접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럴듯한 핑계를 잘 지어내는 사람과 실제로 능력있는 사람을 구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나 또한 군대에 있을 때 잘 모르는 내용을 가지고 자연스레 거짓말을 지어내는 후임 때문에 한동안 고생한 적이 있다. 그런데 공자는 제자들과 위정자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면서도, 소인과 민중에겐 언제나 유연한 태도를 가지고 인덕으로 대우하기를 강조했다. 작정하고 자신을 속이려 드는 사람을 일일이 가려내기는 어려운 일이기에, 군자의 인덕으로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모이게끔 해야한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가부장적 태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논어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구절 중 하나인 “소인과 여자는 다루기가 어렵다”는 말 또한, 군자라면 아랫 사람들에게 흠결이 있더라도 이해해야 한다는 뜻에서 한 말으로 해석되곤 한다.

공자의 제자인 자공 또한 수완이 좋고 언변이 뛰어나 큰 돈을 모으고 천하에 이름을 널리 알렸다고 전해진다. 논어에서도 그의 뛰어난 기량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 많은데, 원문읽기에 나온 것처럼 자공이 시경의 ‘절차탁마’의 고사를 인용하자 공자가 직접 자공은 나와 함께 시를 논할만 하다고 평한 것은 그 중 하나다.(66쪽) 다만 공자는 군자불기라 하여, 군자는 (특정한 기능을 가진) 그릇이 아니라고 말한 바 있는데, 그럼에도 자공에 대해서는 호련(제사에 사용하는 그릇)이라 평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자공의 능력이 뛰어나긴 하나 백성을 다스리는 군자의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일 것으로 해석한다.

널리 알려진 내용과 같이, 공자는 언제나 인에 대해 강조하면서도, 제자의 성격이나 능력에 따라 초점을 달리하여 가르쳤다. 가령 원문읽기에서는 안연과 번지가 인에 대해 묻자 안연에게는 극기복례라 하여 다른 사람이 아닌 스스로를 다스려 예를 지키고 인을 얻어야 한다고 설명하고(68쪽), 번지에게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잘 가려 뽑아서 정직한 사람이 부정직한 사람 위에 있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설명하는 것으로 나온다.(69쪽)

그러나 논어에 나와있는 내용만으로는 이러한 맥락을 알기 힘든 경우도 많은데, 원문읽기에서 위나라에서 관직을 하고 있던 자로가 공자에게 정치의 우선순위를 묻자 공자가 명분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것은 그 대표적인 예다.(69쪽) 답변을 들은 자로는 무례하게도 스승인 공자에게 사정에 어둡다며 핀잔을 주는데, 그 이유가 원문에는 나와있지 않다.

그 사정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이러하다. 과거 위나라 영공의 첩이었던 남자는 문란하고 간교한 것으로 유명한 경국지색이었다. 그런데 영공의 세자였던 괴외가 남자를 암살하려다 실패해 외국으로 망명하는 바람에, 영공의 손자이자 괴외의 아들이 어린 나이에 왕위를 물려받아 위출공이 되었다. 자신의 아들이 왕위에 오른 것을 안 괴외는 몰래 돌아와 가신들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켰다. 아버지가 아들의 자리를 빼았은 셈인데, 결국 반란이 성공해 괴외가 왕위에 올라 위후장공이 되었다. 이렇듯 혼란스러운 위나라의 전후사정을 알고보면 자로가 공자에게 핀잔을 준 이유가 이해는 가지만, 따지고 보면 이 모든 일이 공자의 말대로 명분이 바로 서지 않아 벌어진 일이기도 하다. (여담이지만 자로는 괴외가 반란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괴외가 서 있던 누각에 불을 붙이려다 괴외의 부하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러한 공자의 명분론, 정명론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흔히 명분이라 하면 대의명분이라 하여 거창한 것을 생각하기 마련인데, 사실 명분이란 곧 이름에 걸맞는 본분, 즉 나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한다는 뜻이다. 물론 공자가 살던 시대는 계급이 존재하던 시기였으므로, 신하의 본분은 제 군주를 성의를 다해 섬기는 것이었고 이는 자식이 부모를, 아내가 남편을 모시는 것처럼 당연한 것이었다. 따라서 5장의 사기 백이 열전에 나오는 것처럼 무왕이 부친의 상이 끝나기도 전에 군사를 일으켜 제 임금을 죽이고 자리에 올랐다 하여 관직에서 물러나 는 경우도 있던 것이다.

그런데 백이와 숙제도 결국 굶어죽었듯이, 명분을 지키는 일은 쉽지 않았다. 실제로 공자가 살던 시기에도 그의 사상은 고리타분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자로가 죽임을 당한 것도 명분을 바로 세우지 못해서라고 하지만, 처음부터 자로가 명분을 버리고 괴외에게 충성했다면 죽을 일도 없지 않았겠는가? 이렇듯 춘추전국시대는 위나라처럼 신하가 제 주군을 죽이고 제후끼리 전쟁을 벌이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혼란기였다. 자로가 석문의 문지기에 들었던 말에서 알 수 있듯(“안 되는 줄 알면서도 하는 사람”(70쪽)) 명분을 지키는 사람이 손해를 보는 것은 당연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공자는 명분을 지키고 인과 예를 회복하는 것만이 혼란스러운 세상을 안정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고, 대부의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천하를 주유하며 자신의 사상을 인정해주는 군주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원문읽기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여러 일화들은 모두 말년의 공자가 천하를 주유하며 겪었던 고난들을 짐작케한다. 노나라의 실권자인 계강자 앞에서 잘못을 지적한 일(68쪽), 전쟁하는 법을 묻는 영공에게 실망해 위나라를 떠나 굶주리게 된 일,(70쪽) 접여나 장저, 걸닉과 같은 은자들마저 공자와 제자들에게 세상이 위태로우니 정치를 그만두라고 한 일(70쪽, 71쪽) 등이다.

원문읽기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이 천하주유의 결말은 꽤 참담한데, 공자와 제자들은 결국 어느 나라에서도 자리잡지 못하고 노나라로 돌아오게 된다. 자로와 같이 개중에는 결국 다른 나라에서 관직을 하게 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공자의 아들인 백이와 공자가 가장 아꼈던 제자 안회, 자로가 연달아 죽자, 공자도 몇 년 지나지 않아 사망하고 만다. 논어에도 스승님께서 하늘이 나를 버리신다고 재차 외치셨다 기록되어 있을 만큼 제자와 자식들의 죽음은 공자에게 큰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공자 사후에도 전국시대의 혼란은 계속되었다. 그의 제자 중에 특히 따르는 이가 많았던 증자와 유자를 통해 이어진 그의 사상은, 때론 맹자와 같이 영향력있는 사상가와 일부 군주들에게 받아들여지기도 했지만, 결국 이러한 혼란기에서 통일을 이뤄낸 것은 상앙의 법가를 받아들인 진나라의 진시황이었다. 분서갱유의 고사에서 알 수 있듯 진시황은 유학자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유방이 세운 한나라에서 그의 사상을 통치원리로 받아들인 뒤에야 공자의 사상과 논어는 중국을 대표하는 고전으로서 받아들여졌다.

학생 시절 나는 공자님 말씀을 입에 올리는 이상한 아이였다. 하필 그 누구도 말리지 못한다는 중학교 2학년이었던 탓에 논어를 100번 읽겠다는 치기어린 목표를 세우기도 했지만, 아쉽게도 목표의 10분의 1인 10회독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논어읽기는 관두고 말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당시의 나는 공자가 추구한 이상에 감명을 받았다기 보단 공자의 삶이 보여주는 비장미와 박력에 매료됐던 것 같다. 영웅은 난세에 등장한다는 말처럼, 동년배들이 초한지나 삼국지를 읽으면서 느낀 감정을 나는 공자에게 느꼈던 것이다.

누군가는 공자의 사상이 가부장적이며 지배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고 한다. 논어 또한 높으신 분들의 좋은 말을 늘어놓는 것일 뿐, 불후의 고전이 되지는 못한다고도 한다. 이런 비난에 침 튀기며 반박하던 용기가 지금의 나에게는 없다.

그러나 이번 과제를 진행하면서, 이런 나에게도 공자의 삶이 보여주는 강한 진실성은 여전히 예전과 같은 울림을 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이상을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사람은 비록 그가 틀렸다 해도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