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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타니 고진이 쏘아 올린 작은공

가라타니 고진이 던진 ‘근대문학의 종언’은 자국에서만이 아니라 한국에도 적잖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국내 평론가들은 각자 나름의 의견을 갖고 ‘근대문학의 종언’을 다루었는데,

이를테면 ‘소설의 죽음’을 정면에서 부정하고 현재의 문학을 긍정하는 오혜진의 <지극히 문학적인 취향>이라든가,

아니면 ‘소설의 죽음’에 무관심한 태도를 유지하며 앞으로도 문학은 계속 지속될 것이라 전망하는 신형철의 <몰락의 에티카>,

‘소설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소설의 부활’을 도모해야 한다는 김영찬의 <문학이 하는 일>

그리고 오늘 다뤄볼 조영일의 <한국문학과 그 적들>이 있겠다.

이 평론집은 자신의 주장을 전면에 드러내지는 않지만, ‘근대문학의 종언’을 둘러싼 평론계의 이런저런 주장들을 일축하며 ‘죽음’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자는 입장에 가깝다.

예를 들어, 조영일이 비판하는 주된 대상은 김영찬과 같은 입장을 가진 평론가들(소설의 부활을 믿는 평론가들)이다.

각기 다른 비평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비평가들이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테제 앞에서는 하나같이 비슷한 논리를 취하고 있다.

우선 그들은 오늘날의 한국문학계에서 감지되는 위기감을 이야기하면서, 딴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는 데 공감을 표한다. 그리고 나서 바로 ‘위기야말로 기회이지 않은가!’하며, 갑작스러운(그러나 뻔한) 역전을 시도한다.

물론 이때 이용되는 것은 가리타니가 슬쩍 내던지는 몇몇 희망적인 구절들이다. 한마디로 그들은 너무나도 쉽게 가리타니의 고민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28p)

이러한 비판 속에서 조영일은 가라타니 고진을 다시 인용하며, “이미 근대문학은 죽었다”고, “애당초 소설의 본질은 오락이었으며,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오히려 지나친 영향력을 행사했던 근대문학이 이상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조영일이 가장 비판하는 대상은 아직도 근대문학의 그림자에 머물러 있는 문단 원로들과 그들이 만들어낸 시스템이다. 이 평론집에서 가장 처음 언급되는 내용이 (독붕이들도 익히 알고 있을) 유종호의 하루키 비판이라는 것만 봐도 자명하다.




* 장편대망론의 속사정

문단을 신랄하게 까는 책으로는 강준만, 권성우의 <문학권력>을 재밌게 읽은 적이 있고, 그 날카로움이나 깊이에 있어서는 <문학권력>이 한 수 위라고 평하고 싶다. (정작 강준만이 비전문가라는 게 아이러니한 점이지만.)

그렇다 해서 이 책을 읽을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문학권력> 때의 문단(2001)과 <한국문학과 그 적들> 때의 문단(2009)은 또 다른 법이다. 00년대 부상한 장편대망론의 숨은 의도를 파헤치는 부분만으로도 이 평론은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알 수 있지만, 이 특집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장편대망론’이라기보다는 창비에서 주관하는 <제1회 창비장편소설상>에 대한 홍보이다. (160p)

저는 한국 비평가들이 ‘장편소설 대망론’, ‘장편소설의 빈곤론’을 읽으면서 그들이 무언가를 은폐하고 있다는 의심이 자꾸 들었습니다. 그럼, 여기서 그들이 은폐한 것은 무엇일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장편비평(전작비평)의 부재였습니다. (148p)

조영일은 ‘장편대망론’의 두 가지 비밀을 폭로한다. 첫째, 창비의 ‘장편대망론’ 특집은 자사에서 주관하는 <제1회 창비장편소설상>의 홍보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것.

둘째, 평론가들은 본인도 장편비평을 쓰지 않으면서, 소설가들에게는 장편소설을 강권한다는 것. 달리 말해, ‘소설의 위기’를 내세워 ‘비평의 위기’를 은폐하고 책임전가 하려 했다는 것이다.




* 아쉬운 부분

다소 억까 느낌이 나는 부분도 몇 있긴 하다. 타블로의 <당신의 조각들>을 비평할 때, “연예인의 문학계 진출을 꺼릴 이유는 없다”, “완성도도 나쁘지 않다”고 평하면서도, “지금 쓴 작품이 아닌 과거에 습작한 작품을 내놓았다”는 엉뚱한 부분을 꼬집고 있다.

사실 그냥 연예인이 쓴 소설을 까고 싶었던 게 아닐까? 어떨 때는 대중을 읽지 못한다고 까고, 어떨 때는 대중영합주의라고 까는 부분이 다소 아이러니하다.

또한 <창작과 비평>에는 자기들과 정반대되는 성향의 글을 실어, 관대함을 과시하려는 부분이 있다고 비판하기도 하는데, 이건 솔직히 가불기다. 실어도 욕하고 안 실어도 욕하지 않았을까.

조영일은 현 문단 시스템으로는 결코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렇다 해서 달리 좋은 대안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적절한 대안이 있어야만 정당한 비판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조영일의 논리에는 평소 문단에 품고 있던 안 좋은 감정이 투영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구석이 있다. 이 부분은 경계해서 봐야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일반적인 독붕이들의 입맛에 가장 잘 맞는 평론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문학을 더 구체적으로 까고 싶을 때는 이 책을 참고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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