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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우의 두 사람의 걸어가


일단 오프닝이 정말 쌈박함

책을 펴자마자 잡담 같은 두 사람의 대화가 오가는데 누가 하는 말인지 구별하기도 어려움.

사실 구별할 필요도 없음.

소설 내내 어디까지가 재현이고 어디까지가 소설 안의 세계인가 그런 구분선이 지워져 있거든


거기서 두어 장 넘기다 보면 제목이 딱 뜨고 서지정보 뜨고 글이 시작됨.

근데 소설이 처음부터 끝까지 어떻게 서로 엮여 있긴 한데

조사도 과감히 생략되어 있고(문장에서 은는이가가 종종 빠져 있단 소리)

도무지 어떤 식으로 어떤 논리에 의하여 엮여 있는지 파악할 수가 없음.


계속 반복되는 키워드는 대강 이런 것들임: 빛, 어둠, 비, 햇볕, 나뭇잎, 홈리스, 고양이, 트램, 전철, 개, 이민자, 술, 커피, 담배, 백인, 농구공, 물기, 과거, 현재, 미래, 기억, 아이들, 새, 안개, 소리...


문장은 기본적으로 만연체. 비문도 간간이 보이는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작가의 의도인 듯. 나사 풀린 듯한 느낌이 나는 소설임. 가끔씩 끝내주는 시적인 묘사나 비유, 센스 있는 유머도 나옴.


아무튼 도무지 말하려는 바를 파악할 수가 없는데, 내 생각엔 아무래도 말하려는 바가 없는 게 말하려는 바 같음. 다른 후장사실주의자들 소설에서는 그래도 뭔 말을 하는지는 대강 느낌이 오고 뭘 쓴 건지는 대강 알아먹겠는데 이 작품은 확실히 그냥 읽기도 힘들고 암튼 여러모로 힘들었음...


이상우의 다른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단언하기 어렵지만 이상우는 언어의 이미지화 또는 심상화, 소설의 감각적인 측면에만 관심 있는 작가인 거 같다는 인상을 받았음.

정말 읽기 어렵긴 했는데... 중간중간 이미지가 정말 혼자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는 좋음. 건질 문장도 종종 있는데 자주 나오지는 않음. 필력이 달리는 것 같진 않고 오히려 엄청 탁월한데 그냥 작가가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거에 크게 관심이 없어 보임.


어쨌든 신기한 소설 읽기 체험이었다. 다만 나는 이게 소설의 미래인가? 이게 좋은 소설인가에 대해서는 판단을 못 하겠음. 판단 유보. 특이하니까 관심 있는 사람들은 서점 들를 때 한번 들춰나 보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