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의 친구 중에 노래방에 가면 김학래, 임철우 듀엣의 <내가>를 부르는 이가 있었습니다.

그저 대중가요 가사이지만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했었습니다 - 무겁지 않으면서도 가슴에 와 닿았죠.
어린시절부터 애니메이션 <미래소년 코난> 한국어 주제곡을 무척 좋아했는데,
"새 희망이 넘실거리고 뭉게 꿈이 피어난다"는 가사가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를 거꾸로 매달아도 그런 표현은 쓸 수 없다고 생각했죠.
    
문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은근히 계층 구조가 있는데...
- 창작을 할 수 없지만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은 평론을 하고,
- 창작을 하긴 하는데 도저히 시를 쓸 수 없는 사람이 소설을 쓰고,
- 시를 쓰는 것이 가능한 사람은 시를 쓰는 시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시인이 가장 어렵다는 얘기가 되겠죠.
<의상대 해돋이>를 쓴 조종현 시인은 자기 아들이 <태백산맥>을 쓰며 좋은 소설가로 자리매김하였지만
그럼에도 아들 조정래가 시인이 되지 못한 것을 평생 아쉬워했다고 합니다.
문학하는 사람들 의식 속에 산문보다 운문이 어렵고 더 가치있다고 여기는 면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예입니다.
  
문학은 구텐베르그의 인쇄 혁명 이전까지 주로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듣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유럽의 귀족들이 겨우 내 밤마다 술잔치를 벌이고 음유시인의 노래를 들으면서 시간을 보냈던 이유는...
전기라는 게 없던 시절 달리 할 일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시간이 문화를 향유하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했기 때문이죠.
"독서"는 오랜 시간 동안 글을 입으로 읽는 행위를 뜻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입으로 떠들었을 때 듣기 좋은 운율이나 대구가 아름답게 어울리는 글이 훌륭하다 평가받았죠.
    
밥 딜런의 노래를 잘 모릅니다-제 부모님 세대에 빛났던 가수이거든요.
과거 해외 영화를 한국에서 개봉할 때 제목을 왜 한국어로 표기하지 않을까 의아했던 작품 중 하나가,
두 시한부 암환자들이 자동차를 훔쳐 타고 바다로 떠나는 로드 무비 <노킹 온 해븐스 도어>였습니다.
그냥 <천국의 문을 두드린다> 정도로 영화를 개봉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주제곡으로 쓰인 밥 딜런의 노래가 저보다 한 세대 윗쪽 사람들에게는 너무 유명해서
그 노래 제목을 차용한 영화의 제목도 쉽게 한국어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죠.
    
노래 하나를 접하고 그 노랫말의 표현이 정말 멋지다라고 여기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산문을 좋아하고 소설을 좋아하며 시를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한 구절의 싯귀와 노랫말 하나가 평생 기억에 남는 것이 신기하고 놀랍게 여겨지기도 하죠.
비단 밥 딜런뿐만 아니라 음악을 만들면서 좋은 가사를 쓰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꽤 있고,
그 결과물은 사람들 마음 속에 분명 형용하기 어려운 감동을 남기고 있거든요.
이번 노벨문학상은 그런 경험을 안겨 준 것에 대한 감사의 성의 표시 같은 느낌도 듭니다.
    
[사족]
히피 시대의 대표 가수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하여...
히피 소설의 대표작 스트레인저가 포함된 짤방을 첨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