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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문학이라 하면 당연하게도 1800년대부터 늦어봐야 1900년대 초중반 정도까지의 글들을 주로 읽었었다. 파스테르나크나 아흐마토바 등의 은의 세대라든가, 솔제니친, 샬라모프 등의 수용소 문학 등. 그러다가 이 시대의 러시아인들은 무슨 글을 쓰고 있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잘 아는 사람에게 추천해달라고 하자, 번역을 시작하기 전 유명세를 얻는 과정이나 실제 번역의 시간 따위의 당연한 패딩을 감안하여 추천 받은 책 중 하나가 이 30년 전에 나온 <오몬 라>이다. 그리고 충분히 흥미로웠다.
시작은 우주비행사를 꿈꾸게 된 소년의 가정사나 소소한 이야기였는데, 정말 이 우주비행사라는 꿈을 관장하는 소비에트와 얽히기 시작하면서 그 이야기는 매우 빠른 속도로 탈선하고, 비틀리기 시작한다. 비틀린다는 표현이 수사적으로 남용되긴 하지만, 지금은 말 그대로의 활용에 가깝다. 이야기는 비틀린다. 충분히 현실적이었던 사건들이 묘하게 비현실적인 색채를 띠기 시작하고, 주인공의 친구가 정부 인사와의 면접 과정에서 괴상한 독백을 쏟아내며 반복되는 역사의 일부분으로 이 이야기를 위치시킬 뿐더러, 달에 간다는 것은 일종의 거대한 사기극으로 변한다. 그러나 잠깐, 우리 소비에트의 현실은 이미 거대한 사기극 아니었던가? 그렇기에 진정으로 그는 달에 와 있고, 동시에 지구로 빠져나올 수 있다.
주인공 오몬 라는 소설의 첫 부분부터 소련에서 우주로 비행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몇 번이고 강조한다. 물질적인 비행만으로는 결코 완전해질 수 없는, 일종의 사상적인 도약. 그렇기에 사실 비행은 지구에서도 이뤄질 수 있고, 우주에서 한 것이 꼭 비행이라고 할 수도 없다. 단순히 진실은 존재하지 않고 정부가 이를 정한다는 식의 1984 이야기는 아니다. 그보다는, 기술이 부족해 매 추진용 로켓마다 수동으로 자신이 탄 이 기기를 작동시키고 탈착시킬 희생양을 넣고, 장비에 어떻게든 사람을 우겨넣기 위해 다리를 절단하는가 하면, 심지어 귀환시킬 기술조차 없어 그대로 달에서 권총 자살을 시키도록 만드는 정부의 우주 비행 계획에, 그럼에도 자의적으로 동참하는 데에 있다. 비현실적으로. 반복적으로.
어쩌면 오몬 라는 그 친구처럼 약을 먹고 면접관 앞에서 독백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 독백 속에서 그의 우주에 대한 집착과 소련에 대한 불신, 그리고 어렴풋하게 가지고 있는 우주 여행과 서방에 대한 지식이 뒤섞여 후반부의 혼란스러운 이야기들을 그대로 자기 머릿속에서 풀어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수많은 러시아인들이 오몬 라에게 공감했고 공감한다는 게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옐친 시절의 실패한 민주주의와, 이상 없이 돌아온 옛 체제를 보며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예전에 <모든 것은 영원했다, 사라지기 전까지는>이라는 소비에트 시절 사람들의 정신에 대한 책을 읽으며 이런 궁금증을 가졌었다. 만약 세상에 정말로 이런 식으로 생각하며 이런 세상을 살아온 사람들이 있었다면, 그 사람들이 쓰는 소설과 그 세상은 어떤 풍경일까? 그 해답이 바로 <오몬 라>에 있었다.
P. S. 펠레빈이 쓴 <P세대>라는 책이 아무래도 더 유명한 모양이다. 최근에 나온 동저자의 <스너프>와 함께 읽어볼 생각이다.
사상적인 도약이란 생각조차 사기지. 결국 체제 경쟁에 대한 포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이 소설도 뭐 그런 걸 굳이 띄워주는 글은 아님... 주인공도 다소 이 생각에 대해 점차 혼란스럽게 느껴가는 편이고 후반에 가서는 사실상 사람이 대한 의무감 속에서만 움직이는 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