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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이유야 어떻든 간에 30년 동안 몽골의 압도적인 군사력에 맞서 처절하게 항전한 나라야. 그렇지만 동시에 일단 항복이 결정되자 급속도로 몽골과 밀착하게 된 나라이기도 해. 이런 극적인 대몽골 정책의 전환이 성공적으로 먹혀 들어간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가 고려가 아닐까? 물론 지배층끼리 혼인 관계로 엮이는 바람에 80년에 걸친 원간섭기 동안 숱한 위기를 맞게 되지만 동시에 세계제국의 부마국이라는 독특한 고려의 지위 덕을 본 경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 일단 어찌됐든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외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인 정체성을 끝끝내 지켜낸 것 자체가 큰 성과라고 생각해.
몽골 변수가 나타났을 때 많은 국가들이 일단 전쟁을 선택하지만 베트남의 쩐 왕조나 이집트의 맘루크들처럼 끝끝내 침략을 물리치는 데 성공한 예는 그다지 많지 않아. 몽골군이 지평선 너머에 나타나기 전까지 나름대로 지역 강국 내지는 대국의 지위를 누리던 나라들이 수없이 갈려나가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지.
고려처럼 결과적으로 정복당하긴 했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몽골 지배층을 현지 문화에 동화시키는 데 성공한 페르시아의 사례나 킵차크 칸국에 예속된 상태에서 서서히 힘을 축적해 훗날 러시아 제국으로 성장하게 되는 모스크바 공국의 사례도 있긴 한데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인 것 같아. 페르시아나 러시아는 각각 일 칸국과 킵차크 칸국의 관할지로, 제국의 중심부와 지리적으로 가까워 제국의 영향력이 직접적으로 투사되던 고려와는 정치사회적인 환경이 완전히 달랐을 테니까.
이미 세자 시절에 쿠빌라이를 만나 안면을 텄던 충렬왕이 황녀 제국대장공주를 아내로 맞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충선왕이 다시 원 성종의 조카딸 계국대장공주와 혼인하면서 고려 왕실과 원나라 황실은 급속도로 가까워지게 되지. 고려 왕이 되려면 1) 세자 시절에 일정기간 원에 머물며 숙위활동을 해야 하고 2) 원나라 황실 여성과 혼인해야 한다는 것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던 시대였지.
개인적으로 충선왕은 '쿠빌라이의 외손자'라는 자기 인식이 '고려 왕족'이라는 정체성을 압도했던 사람인 것 같아. 가장 중요한 생애 첫 십수년을 원나라에서 보냈고, 중요한 정치 활동의 무대도 개경이 아닌 대도였기 때문이지. 실제로 충선왕은 쿠빌라이의 외손이라는 혈통과 스스로의 정치적/학문적 식견을 활용해 성종 사후 발생한 권력 투쟁에서 결정적인 공을 세우게 돼. 이로 인해 원나라 황실에서 충선왕의 정치적 영향력은 정점을 찍게 되지. 충선왕은 고려왕 외에 새로 '심양왕'의 작위를 더하게 돼. 불과 반세기 전에 모든 실권을 잃고 강화도에 유폐되어 있던 고려 왕이 제국의 중심에서 실세로 발돋움하는 순간이었지.
그렇지만 이는 충선왕의 정치생명이 곧 원의 정치환경과 직결되는 부산물을 낳았어. 그가 즉위에 공을 세운 무종과 인종의 시대가 끝나자 호시절도 막을 내리게 돼. 충선왕은 정적들의 공세에 밀려 대도에서 서쪽으로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티베트로 유배를 가게 되지. 마치 트럼프 정권 때 백악관에서 끗발 날리던 한국계 미국 정치인이 정권이 바뀌자 아프리카 소국 주재 대사로 좌천된 꼴이라고나 할까? 충선왕의 이런 극적인 상승과 추락은 우리에게 부마국 체제에 내재되어 있는 근본적인 모순에 대해 질문하게 하지.
3권에서는 원의 간섭과 파행적인 정국 운영이 한층 가속화되는 충숙-충혜-충목-충정 시대를 다루고 있어. 왕이 섹스 스캔들에 연루되고 원나라 사신들에게 포박되어 원으로 압송되는 등 엽기적인 사건들이 발생한 시대인 동시에 심왕 옹립 책동, 입성 책동 등으로 고려의 독자적인 정체성이 가장 심각하게 위협을 받은 시기이기도 해. 여러모로 기대가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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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장이 냅뒀을까? - dc App
고려에 그럴 군대도 돈도 없다
모어는 당연히 몽골어고 고려어 중국어 다음 제2외국어 쯤으로 쓰지 않았을까 싶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