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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강연: 당신이 몰랐던 진화론(2021.9.14.~2021.9.20. 5)


 『신, 만들어진 위험』을 읽었다면 당연히 도킨스가 생각하는 신학의 불완전함에 주목해야 하고, 『이기적 유전자』를 읽었다면 응당 유전자와 진화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유감스럽게도 『영혼이 숨 쉬는 과학』을 읽었기 때문에 리처드 도킨스라는 사람을 떠올린다면 가장 먼저 연상될 저 두 키워드와는 다소 동떨어진 주제에 집중할 생각이다. 이 독후감은 리처드 도킨스가 얼마나 과학을 사랑하고 동경하며 절대시하냐에 초점을 맞췄다. 그것이 덜 매력적일지라도 적절한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영혼이 숨 쉬는 과학』은 도킨스의 가치관으로 빚어 올린 작품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에는 도킨스의 생물학자로서의 확고한 관점과 발상은 물론이고 사회적 현상과 사건에 대한 도킨스의 견해, 도킨스의 가족이나 과학계에 중요한 인물에 대한 추모사, 그리고 리처드 도킨스하면 빼놓을 수 없는 신학에 대한 의구심과 이죽거림이 골고루 수록되어 있다. 마침 EBS 강연 역시 생물학자로서의 도킨스보다는 과학자로서의 도킨스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이번 독후감에서는 생물학에 대한 전문적이고 지엽적인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을 생각이다. 또한 도킨스의 진화생물학적 견해는 워낙 유명하고 확고해 언젠가는 다른 독후감으로 소개할 일이 있으리라는 발상도 내 이러한 선택에 힘을 실어줬다.



 도킨스가 생각하는 과학은 진리를 찾기 위한 가장 유효한 도구다. 같은 대상을 논하더라도 학자들의 가치관에 따라 여러 해석이 튀어나오기 일쑤인 다른 학문들과 달리, 과학자들은 개개인의 가치관과 무관하게 이미 정해져있는 단 하나의 사실에 다가가기를 학수고대한다. 개인적인 신념에 의해 진실을 외면하거나 해석을 의식적으로 곡해하는 일도 좀처럼 일어나지 않으며 일어나서도 안 된다. 이것은 인류 사회에 산재되었지만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의문과 진리를 파헤치기에는 과학만한 접근이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실제로 과거에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기에 으레 신앙으로 설명되던 신비한 자연 현상들의 대부분은 오늘날 발생 이유와 주기들이 과학에 의해 속 시원하게 규명되었다. 그리고 도킨스는 창조론 역시 자연 현상들이 불가사의한 신비함을 잃어버린 것과 동일하게 신비로움과 경외감을 박탈당해야만 하는 거대한 숙적이라고 생각했음이 틀림없다.



 생물학자 도킨스는 의사가 히포크라테스를 존경하는 것처럼 당연히 다윈을 존경한다. 다윈이 주장한 자연선택설은 수천 년 동안 세계 곳곳의 여러 지역에서 신앙으로 설명하던 생명 근원에 대한 의문을 생물학적으로 완벽하게 풀어버렸다. 그렇기에 다윈의 주장과 반대되는 창조론을 생물학자들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어떠한 관점에서는 그들의 직업상 적절한 입장을 취한 것뿐이라는 옹호가 뒤따를 수 있겠지만, 도킨스의 경우에는 극렬하고도 신랄한 기조를 유지한 탓에 이러한 옹호를 전혀 받지 못한다. 도킨스는 그가 개인적으로 창조론, 더 나아가서 기독교, 더더욱 진격해서 종교 전반을 혐오한다는 사실을 애써 숨기려고 하지 않았기에 더더욱 그에 대한 반발도 심하게 사는 편이다. 도킨스의 종교에 대한 끝없는 증오와 혐오감에 대한 이유는 어떤 면에서는 역설적이게도 그가 과학을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답변으로 채워 넣을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도킨스는 과학을 사랑하며 과학을 그 어떤 학문보다도 위에 올려두고 싶어 한다.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과학이 지금의 신학이 가진 영향력을 차지해야만 한다고 보았음이 자명하다. 그는 신앙에 맹목적으로 빠진 나머지 논리와 현실을 거스르는 사람들을 매우 한심스럽게 바라보면서도, 한편으로는 과학 역시 신학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배워지고 즐겨지기를 누구보다도 원했다. 책과 강연에서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도킨스는 종교의 끝은 타락뿐이라는, 종교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부정적인 이들도 고개를 갸웃하게 할 만한 극단적인 비난을 가한 적이 있는데, 신학과 과학의 관계를 개별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경쟁하는 관계라고 여긴다면 그가 왜 이런 무리한 비난을 행했는지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다. 생각보다 많은 생물학자들이 과학과 신학을 개별적인 학문으로 여기는 것과는 다르게, 적어도 도킨스만큼은 신학을 과학이 뛰어넘어야 할 고난이라고 생각했음이 틀림없다. 내 관점의 저의는 도킨스의 심하게 엇나간 발언을 옹호하고자 함이 아니다. 난 그저 도킨스는 정말로 신앙은 엇나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다. 도킨스의 종교에 대한 과도한 히스테릭의 옳고 그름은 별로 논하고 싶지 않다.



 도킨스는 두려워한다. 과학에 대한 낯선 인상이 반지성주의에 의해 적대감으로 물들어버리는 것을. 도킨스는 한편으로는 혐오한다. 다윈이 애써 풀어낸 생명 근원의 해답을 종교적 신념에 경도된 이들이 애써 외면하는 것을. 종교를 혐오하는 그가 책의 제목을 영혼이 숨 쉬는 과학』이라고 정한 사실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실소를 머금게 하겠지만, 그는 EBS 강연과 책에 수록된 ‘50년 뒤:영혼을 죽이다라는 에세이로 과학과 영혼, 과학과 감수성은 반대되는 개념이 아님을 충분히 설명했다. 현상이 과학으로 완벽하게 설명될 때, 세상은 더더욱 아름다워질 것이고 그것이 바로 지적인 힘을 나타내는 영혼, 감수성이라는 주장으로 도킨스는 과학을 예찬했다. 그는 악기를 연주할 줄 모르더라도 음악을 즐기듯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도 과학을 즐기는 시대를 꿈꾼다. 과학은 다른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겨져야만 한다. 리처드 도킨스는 과학이야말로 가슴 뛰는 마법이라는 말로 일주일간의 EBS 강연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