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독갤러들이 사랑하는 독회와 욥기를 동시에 가져와봤습니다. 흥미있는 독갤러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 Job Tormented by Demons and Abused by His Wife, 1622~1628년 경
욥을 무자비하게 괴롭히는 사탄과 옆에서 부추기는 아내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이 그림의 흥미로운 점은 사탄의 묘사가 흔히 생각하는 기독교의 악마, 마귀라는 점인데요(뿔달리고 날개달리고 대충 사람 못살게 구는)
욥기의 저작 시기에는(B.C 6-4세기 경?) 사탄이라는 단어가 마귀를 가리키지 않고, '고발자, 고소자, 적대자, 반대자, 원수, 적수' 등의 뜻을 지닌
보통명사로 쓰였다는걸 생각하면(출처:가톨릭 주석 성경) 좀 아이러니한게 재밌습니다.
오늘의 독회 본문 : 욥기(27장까지)
정해진 본문을 읽고 드는 생각, 느낀 점이나 궁금한 점 등 다양하게 자신의 의견을 나누시면 됩니다.
지나친 비방이나 분란을 일으키는 댓글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주 독회 일정 : 2021년 10월 3일 19시
다음 주 독회 본문 : 욥기(27장~41장까지)
오발탄! 오발탄! 오발탄! 욥기! - dc App
ㅋㅋㅋㅋㅋ
욥기의 등장인물 전원이 이스라엘 출신이 아니라는 말이 있는데 맞음? 그리고 맞다면 뭔가 의도같은게 있는거?
친구들은 모르겠는데, 욥은 우스 땅 출신으로 나옴. 우스 땅이 어딘지는 대략적으로 요단강 동편의 에돔으로 추정하지만 때로 이스라엘 북쪽 지방이라고도 하고 동남편 출신이라고도 함.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음. 이스라엘 출신이 아닌 사람이 성경에 몇명 나옴. 대표적으로 창세기의 멜기세덱, 모세의 장인 이드로 등등. 그래서 여호와 신앙이 히브리인 안에서만 공유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유추해볼 수도 있음. 또 욥기가 지어진 시기는 (내가 본 책에서는)학자들이 B.C. 7-3세기경으로 보지만, 욥기의 이야기 배경 자체는 족장시대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몇몇 특징들이 있음. 아마 그런 점에서 앞에서 말한 멜기세덱이나 이드로처럼 히브리 밖의 사람이지만 여호와 신앙을 공유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볼 수는 있음.
성경이 구전되어 온 것을 기록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의도라기 보다는 원래 내용 자체가 그 시기, 그 지역에서 유래됐거나, 저자가 그 배경을 가정하고 지었거나 겠지
1. 욥의 고향인 우츠는 정확히 어디인지 모르는 땅입니다. 에돔의 한 지방 혹은 갈릴래아 호수 북동쪽의 하란 지방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2. 테만 사람 엘리파즈는 에돔의 한 지역 출신으로 여겨집니다. 엘리파즈라는 이름은 창세기 36장에 따르면 에돔족의 한 족장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3.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초파르는 출신을 확인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4. '욥'이라는 이름은 B.C 2천년대쯤의 쐐기문자로 된 문헌들에서도 나타나는데, 이 시대 서부 셈족 사이에서 흔한 이름이었던걸로 여겨진다고 하네요. 욥 이야기는 가장 멀리까지 나가면 B.C 3천년대의, 악의 문제를 다루는 수메르 문헌(수메르 욥기)와 B.C 1400-1000년대쯤의 '바빌론의 욥기'
(이 문학의 주인공들이 욥과 그의 친구들, 하느님은 아니나 그 구조가 욥기와 비슷하다고 해 저런 별명들이 붙여진 것으로 알고 있읍니다), 그리고 이집트 문헌 (한 남자와 그의 영혼의 대화였나..)들의 대화 형식과 변신론같은 주제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1. 27장까지의 감상을 짧게 요약하면 '고상한 말싸움'임. 좋게 말해서 말싸움임. 주먹만 휘두르지 않았지 나중에 갈수록 점점 상대방을 욕하기 시작함. 하지만 그럼에도 고상한 이유는 '시'라서. 시인데 굉장히 구조가 얼기설기 섥힌 구조임. 2. 내가 참고한 책에서는 '아이러니'라고 표현하는데 의미의 전환 혹은 반전 이라고 볼 수 있는 구절이 많이 나옴. 쉽게 말하면 말장난. 예를 들어, 2-1) 7:17 욥이 '사람이 무엇이관대~' 로 하찮은 사람을 왜 괴롭게 하십니까 라고 말한다면 시편 8:4은 '사람이 무엇이관대~' 로 하찮은 사람을 왜 높이십니까. 로 나타남
2-2) 4:13-14 에서 엘리바스가 이상(환상) 중에 두렵고 뼈가 떨림을 통해 하나님을 바라라고 욥에게 말하는 한편, 7:14-15에서 욥은 이상 중에 두렵고 뼈가 죽는 것이 낫다는 표현으로 차라리 죽기를 바란다고 표현함. 이렇게 상대방의 동일한 표현으로 전혀 반대되는 내용을 표현하는 부분이 많음. 찾아보니 2-3) 소발 11:13-14 & 욥 13:21-22, 2-4) 욥 13:2 & 엘리바스 15:9, 2-5) 욥 21:16 & 엘리바스 22:18, 이렇게 몇몇 부분에서 나타나는데 아마 더 있을 것 같음.
3. 엘리바스, 빌닷, 소발이 어떤 논리를 구성하는지 대략적으로 정리해 보자면, 3-1) 엘리바스 : 계시를 통해 말함. 하나님의 초월성과 사람(의인이라 할지라도)의 낮음을 강조. 그렇기에 하나님을 바라라고 함. 3-2) 빌닷 : 옛시대 사람들의 말을 빌림. 즉, 율법, 전통, 조상들의 권위 등이라고 볼 수 있음. 욥의 자녀가 죄를 지어 욥이 벌 받는 것이다. 회개해라. 3-3) 소발 : 제일 격렬하게 욥을 비난하고, 성미가 급한 사람. 누군가의 권위를 빌리기 보다는 자기의 감정을 따라 혹은 욥의 죄악이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말함.
4. 2번에서 의미의 반전이 일어난다고 했는데, 욥은 이 의미의 반전을 통해 엘리바스와 빌닷의 말의 권위를 비판함. 즉, 4-1) 엘리바스는 이상을 보고 말했음. 그런데 욥은 2-2)에서 본 것처럼 자기도 이상을 봤고, 그렇기에 너와는 다르게 반응하겠다 라고 볼 수 있음. 4-2) 빌닷은 조상의 권위를 통해 말했음. 그런데 욥은 26:4-5에서 누구의 영이 네게서 나왔냐고 말하고, 5절에서 '음령'을 말함. 이거 원어를 보니까 '망자'라고 번역할 수 있음. 즉, 욥은 빌닷에게 이렇게 말하는 거임. "조상의 권위를 들먹이냐? 그 사람들 죽은 사람에 불과하다." 그리고 26:6-14에서 보면 욥은 망령에 불과한 조상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거슬러 올라가서 신의 권위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줌.
5. 마지막으로 욥의 신앙적(혹은 신학적?) 발전이 있음. 5-1) 14:7-14 에서 사람은 죽으면 소멸된다 에서 -> 19:25-27 의 사람이 죽은 후에 다시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말함. 5-2) 23-24장은 욥의 심정변화가 극적으로 드러나는 부분. 23장 : 나는 하나님을 볼 수 없다. 그러나 그가 나를 연단하고 계신다. 왜냐면 내가 아직 죽지 않았으니까. 24장 : 하나님이 시기를 정했다. 그러니 악인도 결국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지라도...
6. 쓰고 보니 너무 많이 써서 미안해 지는데... 느낀점 하나만 말함. 살면서 언제든 주위에 어려운 친구들을 보는데, 사실 그 때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같이 슬퍼해 주는 것이라고 봄. 세 친구들도 원래는 욥을 위로하려 와서 7일동안 그저 슬퍼하기만 했음. 근데 욥이 자기를 한탄하는 모습을 보고 한 마디 씩 하려다가 서로에게 화를 내게 됨. 뭔가 도와주려고 말을 꺼냈지만 결국 불화로 결론지어지지 않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많잖아. 결국 그런 것 같음. 상대방에게 정답이나 조언을 제시하는 것보다는 그저 같이 있어주면서 나는 너를 신경 쓰고 있다고 표현해 주는 것이 최선의 위로라는 것...
1. ㅋㅋㅋ갈수록 에스컬레이트 되는게 흔히 보는 인터넷 말싸움같아서 재밌었음. 그럼에도 욥과 친구들이 디시에서 자주보는 ㅇㅇ(39.7)과 ㅇㅇ(223.62)와 달리 천박하게 보이지 않는 이유는 님이 말했듯이 문학이라 그런듯 2. 성경은 말장난들이 자주 나와서 재밌음. 이 재밌는 아이러니 혹은 말장난을 이해할려면 히브리어 지식이 많이 필요하긴 하지만... 3,4. 엘리파스, 빌닷, 초파르의 논리는 걍 간단하게 '니가 지은 죄가 있으니 벌을 받는거 아니냐'로 짚고 넘어갔는데 자세하게 분석한걸 보니 인상적이네. 5. 5.... 이런식으로 생각해본적은 없었는데 흥미롭네. 난 14:7-14의 '해방'과 19:25-27의 '하느님을 보리라'를 같은 의미로 봤음
39.7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5. 확실히 내가 부활로 본 부분이 원어상 다소 애매한 문장이긴 함. 동일하게 볼 수도 있긴 한데 나는 발전으로 봄.
너무 늦었네요 ㅜㅠ 얼렁 소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1. 욥기는 참 독특한 작품입니다. 저작시기를 명확히 찾기 힘들고(에제키엘서에 욥의 이야기가 언급되는걸 보면 이 책, 혹은 원형이 되는 이야기가 에제키엘서 저작시기보다 앞서 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내용이 쉽지 않거나 시대가 지나면서 단어의 의미가 달라지는 문제로 여러가지 오해를 불러 일으킨다는 점이 그렇죠
1.1 아마 가장 대중적인 오해, 그리고 가장 치명적인 오해가 '사탄'의 정체인것 같습니다. 위에서 언급했지만서도 '성경에 수록된' 욥기가 써졌을 시기(B.C 7세기-3세기? B.C 6세기-4세기?)에는 사탄이라는 단어는 마귀를 나타내는 것이 아닌, 적대자 혹은 고소자를 나타내는 단어였죠. 욥기를 이렇게 해석한다면 욥기의 하느님은 사탄(마귀)에게 일이나 시키고 그와 내기나 하는 악신으로 비쳐질수도 있습니다.
1.2. 또 다른 오해는 욥기가 악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작성됐다는 것입니다. 욥기는 선한 인간에게 닥치는 불의한 고통, 혹은 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작성된 책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신학자들과 성서비평가들은 욥기가 그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쓴 책이 아님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런 문제들을 생각해볼만한 내용이 있긴 하지만서도요)
1.3 그렇다면 욥기 저자의 의도는 무엇이냐?는 의문이 남는데... 일단 41장까지 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에 다음주에 쓰겠습니다. 간단하게 짚기만 하자면, 제가 보는 주석서에 따르면(가톨릭 주석 성경) 욥기 저자는 인간적인 도덕주의를 순화하고('까닭 없이 하느님을 경외'하지 않은 욥처럼 계약 신학의 위험) 하느님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법의 모색(하느님의 현존이 고통에 대한 승리의 원천임을 강조) 등이 욥기의 주제라고 하네요. 좀 더 조사해서 다음주에 자세하게 쓰도록 하겠습니다....가능하면.....
1.3 확실히 욥기가 말하는 바는 결말에서 확실해 지니 지금 말하기엔 이른 느낌이 있긴 함. 그런데 사람들마다 해석은 조금 다양한 것 같음. 시몬 베유는 유한한 사랑에서 무한한 사랑으로 가기 위해 필요한 고통이라고 말하고, 키르케고르는 절망 속에서의 계시를 강조함. 어쩌면 이런 것은 욥기 끝부분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기도 함.
아 그리고 독회 참여해주시는 분들께 정말 죄송하지만 다음주 저녁에 일이 생겨서 평소보다 조금 일찍 글을 올려야 할 것 같습니다 ㅜ 참여자분들이 괜찮으시다면 다음 주에 한해서 16시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ㅇㅋㅇㅋ
SF작가 테드 창이 욥기의 결말이 욥기의 아름다움을 저해하는것 같다며 관련된 단편을 쓴 적이 있음. <지옥은 신의 부재>였나 아마 그럴거임. 욥은 사탄과 신의 내기를 알 턱이 없었기에 신에게 자신의 불행을 원망도 하고 하소연도 하지만 결국 신의 권능을 느낀 후에ㅡ네가 레비아탄의 코를 꿰어올릴 수 있겠느냐! ㅡ결국 다시 믿음의 길을 걸어감.
진정한 믿음은 신에게 무언가를 얻고자 함이 아니라 반대로 신을 위해 내 모든것을 내어줄수 있는 그런 상태에 달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욥이 받은 최후의 보상은 쌓아올린 서사를 무너뜨리는 사족인것 같았다 뭐 이런 의견이었음. 그럴듯 하다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지더라. 테드창을 좋아하는 이유가 SF작가인데 이렇게 인문학적 베이스를 바탕으로 세계관을
구성해나가는 솜씨가 장난이 아님. 욥기는 성서 내에서도 참 독특한 포지션인것 같음. 욥기에서 느꼈던 강렬한 서사와 문제의식을 계속 보고싶으면 소예언서인 하박국서 를 추천함. 언제까지 악인들만 잘먹고 잘살아야하느냐고 신에게 원망하는 하박국과 그의 심경변화가 볼만함
와 당신 인생의 이야기 사놓고 수학의 오류를 깨달은 수학자 나오는 부분에서 재미 없어서 그만 뒀는데 욥기를 언급한 게 있었을 줄은 몰랐네. 나도 최후의 보상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긴 했음. 어떤 윤리적인 것을 초월한 신앙을 말하는데 다시 재산을 얻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결국 결말의 의미에 대한 물음이 중요해 지는 듯. 하박국... 이 독회 시작한 사람도 하박국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