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상은 쉽게 말해 우리가 보는 사과는 사과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눈이라는 신체, 즉 인식 기관을 통해 이해하기 때문에 주관적이라는거지. 그래서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는 표상이라는거야. 즉, 껍데기지.

여기서 진짜 사과가 무슨 모양인지, 무슨 색인지는 우리가 제대로 파악할 수 없게 되지. 칸트는 이걸 물자체라고 했어.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물자체를 파악할 수 없는 객체라고 보면서도 의지라고 해석했지.

사과의 진정한 모양, 색은 알 수 없어도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존재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는 뜻이거든. 그래서 표상 이면에는 의지가 있고 끊임없이 욕망하는 것들의 집합체가 세계라는 거야.

그 결과 인간을 포함해서 세계는 계속 갈망하므로 결핍이 수반되고, 고통을 낳게 된다고 해. 쇼펜하우어는 고통을 벗어나기 위한 궁극적인 해결책으로 욕망을 줄이는 것, 의지를 부정해야 한다고 했어.

이는 불교적인 해석과 맞닿지. 실제로 쇼펜하우어는 인도 불교인 우파니샤드에 심취했었다고 해. 욕망을 줄이면 그만큼 결핍도 정비례해서 줄어들게 되니까, 고통도 줄어든다고 본 게지.

여담으로,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의자와 표상으로서 세계를 읽고 심취했어. 다만, 그 고통을 줄이기 위한 해결책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을 하게 돼. 의지, 욕망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이를 인정하고, 고통과 맞서야 한다는 철학을 기본으로 삼게 되지. 그게 니체 철학의 시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