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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화성 연대기>를 SF를 보기 위해 읽는 사람은 바보다. 아무리 SF가 꼭 엄밀한 과학적 고증이니 배경이니 하는 것들에 구애 받을 필요는 없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시대에 화성의 물이 흐르는 운하-화성의 운하에 대한 그 유서 깊은 오해란!-나 환상적인 자연 환경, 텔레파시로 소통하는 화성인들이 가득한 이야기를 SF로서 읽을 수는 없다. 그러기에는 거부감이 너무 크다. 기실, 이 책은 예전에 읽을 때나 지금 다시 읽을 때나 화성이라는 실존 행성보다는 일종의 판타지적 이세계에 인류가 도착하는 소설로 읽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젤라즈니의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를 읽을 때처럼.
<화성 연대기>를 판타지로 읽으면 훨씬 더 좋은 글이 된다. 같은 글인데도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평가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건 참 신기한 일이다. 하지만 인간과는 다른 관념적인, 시간을 초월한 세상에서 살아가며, 정신이 물질을 수반하는 신비로운 종족들이 사는 세상은 확실히 판타지적으로 매력적인 설정이다. 그리고 브래드버리의 시적인 표현들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 수많은 SF 소설들이 시대가 흐르며 더 이상 읽을 가치가 없는 글로 전락했지만, 정작 시대착오적인 가정들로 가득한 <화성 연대기>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이유는 아마 여기에 있을 테다.
가끔 브래드버리는 너무 당당하게 비유를 꺼낸다. 흑인들이 이 지구를 떠나 화성에서 살기 위해 단체로 로켓을 타기 위해 움직이는 장면에서, <화성 연대기>는 그저 "새까맣고 따뜻한 물이 흘러들어와 마을을 집어삼키고 있었다"는 식의 표현을 이어나가며 그 수많은 인파를 이 일관된 비유로 묘사해나간다. 또 가끔은 당당하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주인 없이 홀로 작동하다가 화재로 인해 불타며 기계 목소리로 구조 요청을 하다가 결국 멈춰버리는 집의 하루 일과를 느긋하게 그려나가며, 우리 마음 속에서 이 자동 인형이라는 구시대가 바라본 환상적인 미래를 꿈꿔보도록 요구한다. 또 어떨 때는 자기가 쓰는 것이 딱히 SF가 아니라고 말하는 양, 당당하게 에드거 앨런 포 팬이 온갖 환상적인 기계 장치들로 재현해낸 그의 소설 속 이야기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들이 <화성 연대기>가 여전히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이다. 과학을 마법의 재료로 살짝 흩뿌린 우주 속의 판타지. SF가 매우 한시적인, 냉전의 끝으로 끝내 생명을 잃어버린데다 더 이상 현대의 독자들에게는 그리 흥미롭지도 않은 글들로 가득한 장르가 되어버린 시대에 <화성 연대기>는 기묘한 방식으로 훨씬 오래 갈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사실, 어쩌면 <화성 연대기>가 다른 SF 문학들과는 달리 환상문학이라는 훨씬 더 긴 역사와 넓은 포용성을 가진 장르에 속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P. S. 브래드버리의 다른 대표작 <화씨 451>과는 달리 매우 수려한 번역을 자랑한다. 수많은 지인들이 <화씨 451>을 읽고 사실 왜 그렇게나 고평가 받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했는데, 아무래도 번역 문제도 한몫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다시 한다. <뉴로맨서>나 <신들의 전쟁>처럼 고의적으로 약간 비비 꼰 글도 아닌데, 참 아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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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버리의 장점이 수려한 표현력에 있다보니 솔직히 현 번역본으로 보면 매력이 잔뜩 퇴색되는듯... 기차길을 걷는 후반부 장면도 그렇고
이런 SF가 좋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