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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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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전집 번역에 도전하시는 박종현 선생이 옮긴 「희랍 철학 입문」

소크라테스 이전의 자연철학자 파트 읽다가 흥미로운 내용이 나와서 그냥 정리해봤음.






희랍어 'einai' (to be) 는 '있음' 즉, '존재함'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 단어가 일상어로 사용될 때는 '~이다'라는 어떠한 상태를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ex. to be cold)
그러나 당시 희랍에는 그 누구도 'einai'를 '존재함'과 '어떠한 상태이다' 라는 두 가지 뜻이 있음을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했다.

'einal'이라는 동음이의어는 희랍철학을 큰 문제에 직면하게 했다.



이오니아 철학자들은 세계는 하나의 것이었으나(was) 여럿으로 되었다(become)고 했다.

그러나 파르메니데스에게 '존재하는 것'은 절대로 변할 수 없었다.
존재하는 것이 변한다는 것은 존재의 반대인 '존재하지 않음'이 되기 때문이다.

말장난처럼 들리지만 이 문제는 당시에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여졌다.
플라톤이 후기 대화편인 「소피스트」를 집필하기 전까지는, einal가 서로 다른 두 가지 뜻이 있음이 밝혀지지 않았다.



존재하는 것이 절대로 변할 수 없다는 파르메니데스의 설에서 이러한 결론이 도출되었다.
우주는 진정한 한 가지 실체의 불변하는 덩어리이다.
사람들은 그 속에서 허망하고 비실재적으로 단지 감각할 뿐이다.
오로지 정신만이 진정한 실체에 다다를 수 있다.


페르메니데스는 희랍인들에게 추상적인 사고를 하도록 길을 열었다.
지성을 외계의 사실과 상관 없이 활동하도록 부추겼고
지성의 활동을 감각의 활동보다 높은 격조로 올려놓았다.

그가 유물론자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파르메니데스의 실재는 감각에 의해서는 지각할 수 없는 것이었으며, 사유를 통해서만 이를 수 있었다는 점이다.

파르메니데스는 감각에 의해서 알 수 있는 것을 희생시키고
지성에 의해서 알 수 있는 것을 높인 최초의 철학자였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파르메니데스 이후의 희랍철학은 결코 이전과 같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