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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스턴의 책 <파시즘>을 보면, 서두에서 이 파시즘이라는 용어가 어떻게 잔뜩 남용되느라 점차 의미 없는 감탄사에 가까워지고 있는지 비판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에서 빨갱이라는 용어가 남용되는 것처럼, 단순히 비방하는 용어로만 과다하게 쓰이다 보니 이 파시즘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것인지를 말하기가 애매해졌고, 그래서 정작 실제 파시즘과 유사한 것들을 비판할 때의 효과가 떨어졌다고 말이다. 단턴은 <검열관들>에서 검열에 관해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이 시대에는 너무 많은 것들을 검열로 부른다. 일반적으로 검열이라고 부를 정부의 압박부터 시작해서, 작가 개인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자기검열과, 애초에 이런 뚜렷한 행위라 할 만한 것이 없이 시장에서 거부되는 세세한 움직임들까지. 단턴이 인용하듯, 푸코식 미시 권력의 이름을 빌어 검열을 확대 해석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확대 해석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단턴은 서로 다른 세 시대의 세 지역에서 있었던 검열 사례들을 비교하며 검열이라는 개념을 헤집는다. 18세기의 프랑스, 19세기의 영국령 인도, 그리고 20세기의 동독이 그 사례다. 이 셋은 전부 "표현의 자유"를 논하는 자유주의의 영향을 받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현대의 자유주의와는 시대적으로 다른 맥락의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이 검열이라는 것이 행해지는 방식도 전혀 다르다.
18세기 프랑스, 그러니까 앙시앵 레짐 시절에는 글이 전혀 독립적이지 못했다. 딱히 자유주의가 근본적인 사상이지도 않았던 시기니 그럴 수밖에 없을 테다. 검열관들은 일종의 국가 소속 출판인 같은 역할을 맡으며, 자기에게 들어온 글들이 왕의 이름으로 허락할 만한 글인지 아닌지를 검사하였다. 곧, 사상의 불순 자체보다는 글의 우수성을 더 따졌다는 뜻이다. 보수적인 신학을 옹호하는 글을 검사할 때조차 오히려 논리 구조가 빈약하여 종교의 권위를 낮출 것이라며 반려하는 경우도 있다. 대신, 우수한 글일 경우에는 검열관 본인의 이름과 함께 일종의 추천사 따위를 책에 함께 첨부하여 출판하였다. 왕을 위한 책이라는 허가증은 당연한 이야기다.
그러다보니, 검열 대상은 사상 자체보다는 사람에 대한 문제였다. 물론 왕을 위한 책이 왕을 비방하면 안 될 터다. 그리고, 귀족들도. 명예 훼손의 문제다. 특정 인물에 대해 안 좋은 말들이 적혀 있다면, 그 책의 저자는 물론이고 이런 책을 내도록 허락해준 검열관에게 불똥이 튄다. 그러니 검열관들은 글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자신에게 닥칠지도 모를 위험을 눈에 불을 켜고 찾아야만 한다. 너무나 비유적으로 숨겨 놓아 읽을 때는 깨닫지 못했다가, 추후 그 여파가 검열관에게 닥칠 때도 있었다.
이런 문제들을 피하고, 사상에 대한 논란이 뜨거워지는 시기를 피해 책을 내기 위해 검열로 "묵인"되거나 검열을 피해 해외에서 책을 내 프랑스로 들여오기도 했다. 이 모든 것들은 체제의 일부였고, 과하게 음란하거나 명예 훼손적 성격을 지닌 책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 묵인되는 편이었다. 인도에서도 이 묵인은 여전했다. 인도 주민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차원에서 출판 서적들이 전부 검열관의 손에 한 번씩은 들어가곤 했는데, 때때로 이 글들이 과하게 통속적이거나 무가치하다고 평을 적으면서도 구태여 막지는 않았다. 뭐, 큰 일이라도 있겠나? 영국은 인도를 선진적으로 통치하며 개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주고 있는데 말이다.
인도의 독립 요구가 커져가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우스꽝스럽게도 자유주의와 제국주의가 서로 양립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던 영국인들은 당연히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점차 피부로 느끼게 되었는데, 벵골어로 출판되거나 낭독되곤 하는 글들이 딱 잘라서 선동적이라 말할 순 없으면서도 그냥 내버려두기에는 너무 불온해보인다는 생각이 그 중심에 있었다. 기존에는 단순히 문학적 표현으로 넘어갔을 구절들이 진지한 검열 대상으로 변하며 재판정은 한 텍스트에 대한 최첨단의 분석을 하는 학술의 장이 되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글을 쓰는 사람들을 법조인들이 이런 문제로 이기기는 그리 쉽지 않았다. 결국 판사는 자유주의를 접어두고, 텍스트의 엄밀한 의미보다는 일반인이 읽었을 떄 느꼈을 인상을 근거로 들며 글을 검열하고 저자를 처벌하기 시작했다.
반면, 동독에서의 검열은 이 두 가지가 합쳐진 것만 같은 형태를 띄었다. 공식적으로는 검열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고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준다는 대외적인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실제로는 텍스트를 검열하고, 그 방식이 옛 프랑스에서 그랬듯 작가와 편집자 사이의 매우 밀접한, 저술이 완성되기도 전에 쓰기 시작하는 시점에서부터 계속 작용하는 내면화된 검열로 완성된다. 초창기의 혹독한 처벌이 사라지고 난 뒤에도 이미 내면화된 검열은 모두의 머릿속에 남았고, 실제로 동독의 검열은 표면상으로는 매우 순탄한 계획과 편집, 그리고 출판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검열의 핵심은 이것이 내면화되었든 되지 않았든 달라지지 않는다. 공산주의 치하에서의 검열에 대한 이야기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 정도로 유명하다. 그리고 실제로 책의 이야기 역시 거기에서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승인되지 않으면, 책을 낼 방법은 없다. 서독 등의 서방권의 시선을 받는 방법이 있다지만, 그러기 위해선 대체로 망명을 선택해야만 했다. 이 땅에서 계속 살려면 이러나 저러나 검열을 내면화해야만 한다.
저자와 옮긴이는 이 검열의 미시사에 대한 비교를 통해 현대에 일어나는 검열을 이야기하고자 한다만,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잘 모르겠다. 과연 플랫폼의 정보 취사 편향을 검열이라고까지 부를 수 있을까? 오히려 정체성 정치와 소위 Cancel Culture라는 현대의 문화가 우리에게 내면화된 검열을 안겨주고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쿳시의 에세이, <Giving Offense>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리 엄격하지는 않은) 검열의 미시사를 훑으며 결국 저자의 내면에 박혀 들어간, 사회에서 요구하는 무언가에 미리 글을 수정하려는 본능이 문제라고 지적하곤 했다. 물론, 이것도 너무 깐깐하게 따지고 있자면 단턴이 처음에 지적한 것처럼 검열이라는 용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결과로 나아가겠지만 말이다. 참 어려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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