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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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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은 에밀 싱클레어라고 하는 인물이 평화로운 가정에서 뛰쳐나와 혼란을 겪다가, 데미안이라는 다소 선지자적인 캐릭터를 뒷따라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성장소설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싱클레어는 독자와 함께 발을 맞춰가며 성장하고 데미안이 전해주는 이야기들을 차근차근 받아들인다.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은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퇴를레스는 야망을 가지고 명문기숙학교로 진학하게 되고 거기서 친구들을 사귀게 된다. 핵심인물은 바이네베르크, 라이팅, 바시니이다.

바시니의 절도사건을 계기로 바이네베르크, 라이팅, 퇴를레스는 바시니를 [교정]하기위해 그를 노예처럼 부리게 되는데, 사실상 바이네베르크는 그의 영혼탐색을 위해서, 라이팅은 순수한 재미와 남을 부리는 연습을 위해서, 퇴를레스는 자신안의 숨어있는 두번째 시야에 대한 탐색을 위해 바시니를 실험체로 삼을 뿐이었다.


누구도 퇴를레스를 가르쳐주지 않는다. 심지어는 선생조차도 만족할 답변을 주지 못한다.

누구에게 배우면서 성장하는게 아니다. 오히려 퇴를레스는 바시니의 인격이, 인생이, 사람으로서의 품위가 철저히 박살나는 걸 바라보면서 그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내려 한다.

따라서 이건 성장소설이라고 부르기 애매하다. 오히려 피카레스크가 맞지 않나 싶을 정도.


니힐리즘의 세계 속에서 인간의 본질이란, 사고란, 인생이란 것이 자연스럽게 가질 수 밖에 없는 모순들을, 그런 모호함에 강하게 이끌린 한 선지자적인 인물이

그 모순을 해결하고자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온 인물을 파괴해가는 과정은 거진 광기에 가깝게 독자를 휘몰아친다.


데미안을 읽으면서 지루했었던 독자라면 오히려 퇴를레스는 어떤지 추천하고 싶다.






근데 게이섹스 나오니까 알아서 읽어라 난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