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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이라는 슈퍼 스타 문학계 탑 인기를 자랑하며 김초엽이니 뭐니하는 이들과 격을 달리하는 데이비드 보위라칭호와 창비 장편소설상 수상작이라는 명성을 믿고 구매를 했다.
그러나 제갈량의 명성처럼 허명이라는 걸 깨닫는데 오래 걸리지않았다. 이소설은 도데체 알수 없는 글이며 프루스트가 이글을 본다면 자신의 글쓰기 기법이 이리도 한소설을 망칠수 있다고 깨닫고 과감하게 소설 쓰는 것을 포기할것이다. 그렇지않다면 프루스트가 한국어를 못해서라고 믿는다.
이글은 프루스트가 창시한 의식의 흐름기법을 적극 차용한소설로 시공간이 넘나들며 포인트 포린트로 생각나는 부분들을 길게 길게 적어내려가고 있다. 현재와 과거 를 넘나들지만 그리 매끄럽게 넘나 들지않는다. 오히려 너무나 넘나들어 현재 와과거아니라 현재과거 미래가 한곳에 뭉쳐있는 것 처럼 보인다.
이런 이유는 이소설이 어렸을 때 남자친구가 탈영 군인인가 북한군인가로 의심받아 초등학생 총에 맞고 죽은 경험에서 못벗어난 여자가 친구들을 대상으로 단편 다큐 멘터리를 수년동안 만들면서 과거이야기를 미친년 널뛰듯기 하듯이 줏대없이 회상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괜히하는 말이아니라 회상을 그런식으로한다. 보통 회상을 할때 순차적으로 하는게 일반적인데 여기는 회상을 현재 - 과거1-과거2-과거3
이거나 현재- 과거1- 현재2-과거2-현재3-과거3 식이 아니라, 현재-과거1-현재2- 과거1의 과거- 현재2의 다른 시점 - 과거1의 과거의 과거의과거-현재3의 과거- 과거2-과거 1의 다른 시점 뭐 이런식이기때문이다.
그래서 이해하기 힘들고 복잡해보인다. 물론 내용은 그렇게 복잡한 내용은 없고 책의 절반이상의 분량은 사실 이야기적으로 별 필요도 없고 의미도 없다. 소설에서 언급 하기를 몇분이면 할이야기를 길게쓰지말라는 누구나 아는 칠레의 장님 단편 소설가 의 명언을 인용 했는데 그 명언을 적으면서 진지하게 마음에안찔렸나? 생각한다. 왜냐면 이소설이 그 명언을 위반 한 가장 좋은 예이기때문이다.
이소설은 정말 30 페이지 이내로 줄일수도 있다. 그래야만하고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하지않은거보면 출판사나 상준 사람들이나 작가나 양심이없나 보다. 아니면 칠레 장님 소설가 가 노벨상을 받지못해거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했거나 말이다.
그래서 노벨상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론이다. 이소설도 마지막은 자기가만든 단편다큐멘터리로 수상을 한다. 걍 마음속으로 끝내지를 않아 역시 한국 답다라고 할수 있겠다. 과거로 보상을 받아야겠다는 혹은 내 능력은 과거를 팔아서라도 인정 받아야겠다는 세속적인 태도 스바라시하다.
그래서 이소설은 해외에 가는 걸 상당히 중요시한다. 해외에 간 사람은 한국에서는 고통 받는 사람도 성공을 하고 행복해진다. 잠깐 있다가 돌아와도 한국에서는 대접을 받는다. 주인공도 해외에 가고 싶지만 해외에 갈수가 없어서 해외에 간친구를 부러워한다.
하지만 가지못하니 한국 안주해서 별로 사랑하지않은 남자 별로 맞지않은 남자랑 만나 섹스를 하고 동거릉 하게된다. 해외에 간 주인공의 친구는 백인 말잘통하고 유쾌하고 유머스러운 남자랑 만나 잘지내는 데 말이다. 이 남자친구 전에도 마찬가지고 그 전남자친구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있는 주인공의 남자친구 보다 우월 하다. 주인공은 그곳으로 갈수 없으니 되는데로 좋아하지않아도 만난다.
그런 주인공에게도 인생을 지배하는 완벽한 남자친구가 한명있는데 그남자애는 인도 미국 인 학교를 다니다 한국에 온 남자 아이다. 한국 학교도 가지않고 집에만 틀어박혀서 주인공과 영화를 같이보는 한국 남자. 그러나 사실 한국 남자라고 완벽하게 볼수 없는 그런 남자 그런남자가 주인공이 지금까지만난 남자중 최고 의남자다.
이 남자는 주인공의 친구인데 이 친구를 묘사하는 내용중에는
미국인 학교를 다녀서 그녀안에 미국인이 한국 출판 회사에 다니는 걸 힘들어한다는 묘사가 나오고 주인공이 일하는 영화계를 주인공이 미친듯이 쌍욕을 한다. 그런데 주인공은 감독들이 오만하다니 어쩌니 하지만 실제로 뭘 당했다는 묘사는 나오지를 않는다.
출판사다니는 주인공의 친구가 당한 일은 소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에서 상사가 비서에게시키는 일과 비슷한 부분이너무나 많다.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90프로 그렇다. 그런데 한국 회사 어쩌고 하면서 뒤지게 욕을한다.
해외로 건너가서 백인 남친과 연애 하는 친구는 행복 사할 삶을 산다. 공원에서 뜨개질을 하다가 지나가는 할머니가 사실 알고보니 디자인어라서 자기의 가족적인고 친근로자적인 가게로 취직을 시켜줬고
사장이 은퇴하고 나서도 그녀를 챙겨서 다른 회사로 취업까지 도와 줬다.
그런데 사실 미국에서 의류업은 초박봉이라 이민자들이 하거나 부자집 자식들이 헐값받으면서 샤넬백 들고 자기 브랜드 낼 생각으로 하는 험한일이다.
그렇게 성공한 친구가 의류업에 가기전에 스튜어디스를 했는데 그이유는 한국이 정말 싫어서라고 했다. 그런데 그녀가 대학에 입학한 과는 스튜어디스과인데 한국에서도 공부를 존나 못해야 하는 학교다. 그런 그녀가 외국인들과 편하게 프리토킹 어바웃을 한다는건 사실 판타지 아닐까한다.
서울대를 나와도 외국인과 프리토킹 어바웃 하기가 힘든데 말이다. 하지만 이소설에서는 그런 것 따위는 지적하지않는다. 마치 이광수의 무정이 떠오른다. 무지렁뱅이 자식이 미국에 가더니 박사가되고 위대한 인물이된다는 그 설정이 아직까지도 한국 에 깊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같다.
나는 이점이 의아하다 이광수는 대한제국 과 일제 시대의 사람인데 정세랑은 20세기 말에태어나 한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등단을 한 젋은 이인데 이둘이 쓴 소설에 비슷한 부분이 나온다. 이것을 어떻게받아드려야할까. 우리는 아직도 대한제국과 일제시대의 연장선인 이광수의 시대를 살고있는 걸까. 아니면 정세랑과 이광수는 현실을 인정못하고 남탓을 하는 거 아닐까?. 한국인이 문제야 나는 문제가 없어 라고 말이다.
그점을 상징하는 인물이 주인공의 남자친구를 죽인 초등학생이다.
주인공은 그 초등 학생이 성장 한 모습을 보는 것 더욱이 소년범이라 어떠한 처벌도 안받는 걸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미국으로 떠나 의류 업계에서 성공 한 친구가 스튜어디스를 그만두고 한국과 승객들에 불평 하게된이유는 성범죄자가 불법택시를 운행하며 스튜어디스를 죽여서 라고 적혀있다.
소설에서는 그와같은 과정을 묘사하기를 스튜어디스는 선망받는 직업이기때문에 그런 제복을 입은 여자를 죽이는 것이 무언가 순수한 고결함이라도 죽인듯이 묘사를 한다. 마치 주인공의 첫사랑이 죽은 것 처럼 말이다.
고결함이 죽은 자리에는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여자가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와 한국에서 산다.
그러나 제갈량의 명성처럼 허명이라는 걸 깨닫는데 오래 걸리지않았다. 이소설은 도데체 알수 없는 글이며 프루스트가 이글을 본다면 자신의 글쓰기 기법이 이리도 한소설을 망칠수 있다고 깨닫고 과감하게 소설 쓰는 것을 포기할것이다. 그렇지않다면 프루스트가 한국어를 못해서라고 믿는다.
이글은 프루스트가 창시한 의식의 흐름기법을 적극 차용한소설로 시공간이 넘나들며 포인트 포린트로 생각나는 부분들을 길게 길게 적어내려가고 있다. 현재와 과거 를 넘나들지만 그리 매끄럽게 넘나 들지않는다. 오히려 너무나 넘나들어 현재 와과거아니라 현재과거 미래가 한곳에 뭉쳐있는 것 처럼 보인다.
이런 이유는 이소설이 어렸을 때 남자친구가 탈영 군인인가 북한군인가로 의심받아 초등학생 총에 맞고 죽은 경험에서 못벗어난 여자가 친구들을 대상으로 단편 다큐 멘터리를 수년동안 만들면서 과거이야기를 미친년 널뛰듯기 하듯이 줏대없이 회상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괜히하는 말이아니라 회상을 그런식으로한다. 보통 회상을 할때 순차적으로 하는게 일반적인데 여기는 회상을 현재 - 과거1-과거2-과거3
이거나 현재- 과거1- 현재2-과거2-현재3-과거3 식이 아니라, 현재-과거1-현재2- 과거1의 과거- 현재2의 다른 시점 - 과거1의 과거의 과거의과거-현재3의 과거- 과거2-과거 1의 다른 시점 뭐 이런식이기때문이다.
그래서 이해하기 힘들고 복잡해보인다. 물론 내용은 그렇게 복잡한 내용은 없고 책의 절반이상의 분량은 사실 이야기적으로 별 필요도 없고 의미도 없다. 소설에서 언급 하기를 몇분이면 할이야기를 길게쓰지말라는 누구나 아는 칠레의 장님 단편 소설가 의 명언을 인용 했는데 그 명언을 적으면서 진지하게 마음에안찔렸나? 생각한다. 왜냐면 이소설이 그 명언을 위반 한 가장 좋은 예이기때문이다.
이소설은 정말 30 페이지 이내로 줄일수도 있다. 그래야만하고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하지않은거보면 출판사나 상준 사람들이나 작가나 양심이없나 보다. 아니면 칠레 장님 소설가 가 노벨상을 받지못해거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했거나 말이다.
그래서 노벨상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론이다. 이소설도 마지막은 자기가만든 단편다큐멘터리로 수상을 한다. 걍 마음속으로 끝내지를 않아 역시 한국 답다라고 할수 있겠다. 과거로 보상을 받아야겠다는 혹은 내 능력은 과거를 팔아서라도 인정 받아야겠다는 세속적인 태도 스바라시하다.
그래서 이소설은 해외에 가는 걸 상당히 중요시한다. 해외에 간 사람은 한국에서는 고통 받는 사람도 성공을 하고 행복해진다. 잠깐 있다가 돌아와도 한국에서는 대접을 받는다. 주인공도 해외에 가고 싶지만 해외에 갈수가 없어서 해외에 간친구를 부러워한다.
하지만 가지못하니 한국 안주해서 별로 사랑하지않은 남자 별로 맞지않은 남자랑 만나 섹스를 하고 동거릉 하게된다. 해외에 간 주인공의 친구는 백인 말잘통하고 유쾌하고 유머스러운 남자랑 만나 잘지내는 데 말이다. 이 남자친구 전에도 마찬가지고 그 전남자친구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있는 주인공의 남자친구 보다 우월 하다. 주인공은 그곳으로 갈수 없으니 되는데로 좋아하지않아도 만난다.
그런 주인공에게도 인생을 지배하는 완벽한 남자친구가 한명있는데 그남자애는 인도 미국 인 학교를 다니다 한국에 온 남자 아이다. 한국 학교도 가지않고 집에만 틀어박혀서 주인공과 영화를 같이보는 한국 남자. 그러나 사실 한국 남자라고 완벽하게 볼수 없는 그런 남자 그런남자가 주인공이 지금까지만난 남자중 최고 의남자다.
이 남자는 주인공의 친구인데 이 친구를 묘사하는 내용중에는
미국인 학교를 다녀서 그녀안에 미국인이 한국 출판 회사에 다니는 걸 힘들어한다는 묘사가 나오고 주인공이 일하는 영화계를 주인공이 미친듯이 쌍욕을 한다. 그런데 주인공은 감독들이 오만하다니 어쩌니 하지만 실제로 뭘 당했다는 묘사는 나오지를 않는다.
출판사다니는 주인공의 친구가 당한 일은 소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에서 상사가 비서에게시키는 일과 비슷한 부분이너무나 많다.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90프로 그렇다. 그런데 한국 회사 어쩌고 하면서 뒤지게 욕을한다.
해외로 건너가서 백인 남친과 연애 하는 친구는 행복 사할 삶을 산다. 공원에서 뜨개질을 하다가 지나가는 할머니가 사실 알고보니 디자인어라서 자기의 가족적인고 친근로자적인 가게로 취직을 시켜줬고
사장이 은퇴하고 나서도 그녀를 챙겨서 다른 회사로 취업까지 도와 줬다.
그런데 사실 미국에서 의류업은 초박봉이라 이민자들이 하거나 부자집 자식들이 헐값받으면서 샤넬백 들고 자기 브랜드 낼 생각으로 하는 험한일이다.
그렇게 성공한 친구가 의류업에 가기전에 스튜어디스를 했는데 그이유는 한국이 정말 싫어서라고 했다. 그런데 그녀가 대학에 입학한 과는 스튜어디스과인데 한국에서도 공부를 존나 못해야 하는 학교다. 그런 그녀가 외국인들과 편하게 프리토킹 어바웃을 한다는건 사실 판타지 아닐까한다.
서울대를 나와도 외국인과 프리토킹 어바웃 하기가 힘든데 말이다. 하지만 이소설에서는 그런 것 따위는 지적하지않는다. 마치 이광수의 무정이 떠오른다. 무지렁뱅이 자식이 미국에 가더니 박사가되고 위대한 인물이된다는 그 설정이 아직까지도 한국 에 깊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같다.
나는 이점이 의아하다 이광수는 대한제국 과 일제 시대의 사람인데 정세랑은 20세기 말에태어나 한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등단을 한 젋은 이인데 이둘이 쓴 소설에 비슷한 부분이 나온다. 이것을 어떻게받아드려야할까. 우리는 아직도 대한제국과 일제시대의 연장선인 이광수의 시대를 살고있는 걸까. 아니면 정세랑과 이광수는 현실을 인정못하고 남탓을 하는 거 아닐까?. 한국인이 문제야 나는 문제가 없어 라고 말이다.
그점을 상징하는 인물이 주인공의 남자친구를 죽인 초등학생이다.
주인공은 그 초등 학생이 성장 한 모습을 보는 것 더욱이 소년범이라 어떠한 처벌도 안받는 걸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미국으로 떠나 의류 업계에서 성공 한 친구가 스튜어디스를 그만두고 한국과 승객들에 불평 하게된이유는 성범죄자가 불법택시를 운행하며 스튜어디스를 죽여서 라고 적혀있다.
소설에서는 그와같은 과정을 묘사하기를 스튜어디스는 선망받는 직업이기때문에 그런 제복을 입은 여자를 죽이는 것이 무언가 순수한 고결함이라도 죽인듯이 묘사를 한다. 마치 주인공의 첫사랑이 죽은 것 처럼 말이다.
고결함이 죽은 자리에는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여자가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와 한국에서 산다.
칠레의 장님 단편 소설가 : 설마 보르헤스? 맞다면 칠레를 아르헨티나로 고치셔야할 듯.
ㅇㅇ 오류 가있어서 죄송합니다.
좋은 감상에 사소한 오류야 뭐 별겁니까. 감상 좋아서 추천 눌렀다.
보르헤스는 아르헨티나 사람... 근데 감상글만 보면 프루스트보다는 울프 같은데
오류가 많아서 죄송. 울프를 안읽어서 울프를 읽었다면 울프 이야기를 했을 거다. 죄송 합니다.
죄송할건 없음 사실 울프를 읽었던 프루스트를 읽었든 시간 상의 뒤섞임이라는 모티브 가지고 못썻다는 거는 알 거 같음. 정세랑 피프티 피플 읽었을 때도 다소 실망이 컸음
잘썼는데 가독성좀
ㅇㅇ 내일 쓸 박솔뫼 소설 평은 가독성 신경써서 쓰겠다.
ㅇㅇ 덕분에 저 책 거르기로 함 서평 ㄱㅅ
정세랑은 레전드지...... 이것도 결국 시선으로부터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