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뚝심있는 걸물로 나오던(길상은 3부부터 안보이므로)

구천이가 3부에서 죽은 게 크다고 봄.

나는 그것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는데

나이드신 분이랑 토지얘기를 하다보니 그런 얘기를 하시더라고.

구천이가 죽었을 때 알았다고.

나는 토지의 이야기가 즐거운 게 아니라 구천이를 보는 게 즐가워서 토지를 봤던 거라고.

뭐 관성상 3부는 다 끝내는 거 같던데. 당시 책이 나오던 때에 청년층으로선 한창 진행중에 마지막으로 애정이 가는 최애캐가 나가리되는 걸 보니 현타가 왔을 법함.

외려 00년대 이후로 토지 읽으려드는 자들은 작정하고 읽는거라 본 놈들은 끝까지 본 케이스가 많겄지만.

2부까지는 그래도 걸물처럼 보이는 양반들이 나와서 캐릭터의 힘이 강한데 3부에서 그게 다 스러져가니.. 시대상과 맞물리기도 하고.

그런데 나는 인실과 오가다나 예수쟁이나 이혼쟁이 이야기, 관수 아들내미와 봉순이 딸내미 얘기가 워낙 와닿아서
4~5부도 재미만 있었음. 솔직히 더 재밌었던 거 같은데.


다음은 킹갓위키에서 퍼온 4부집필시 작가의 심경

4부를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사명이라는 동아줄에 묶이고 말았다. 그 동아줄은 전신을 칭칭 감았고 날로 강하게 나를 죄었다. 4부의 시간이며 무대인 1930년에서 45년까지, 철저히 봉쇄되고 바닥까지 수탈당했으며 모든 것이 말살되었던 일제 침략의 말기를 살았던 마지막 세대인 나, 작가라는 멍에를 짊어진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뭔가에 의해 쫓기는 기분이었다. 강박이었고 초조, 불안이었다.

열 가닥의 씨올로 짠 피륙이 3부까지의 『土地』라면 4부는 삼십 줄 오십 줄의 씨올로 짜야 하는 베다. 내용도 나락같이 깊었지만 엄청난 양감 때문에 나는 망연자실했으며 어디서부터 허물어야 할지, 나를 비웃는 태산이었다. 만주사변에서 중일전쟁, 세계대전, 이미 민족의 수난이라는 테두리를 넘어서 인류의 수난으로 치닫는 전쟁의 광란, 어느 누가 환난을 피할 수 있을 것이며 인간은 소모품으로 파괴되고 영혼과 육체가 참살되던, 일찍이 역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가공할 시기... 그 고통스런 작업의 포기를 나는 수없이 생각했다.

4부는 일본이 기둥이다. 철저한 일본의 분석 없이 작품의 진행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며 민족주의의 한 측면인 에고이즘에서 빠져나가야 했고 냉정히 통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감정, 수만의 신경이 바람에 전율하는 풀잎일지라도 무디게 뚫고 나가야, 내면은 아우성이며 포탄이며 전진이었다. 먼지와 거미줄과 기록의 난무 속에서 나는 내가 황폐해가는 것을 느꼈다. 두 번이나 소설 연재를 중단했고, 다시 시작하여 겨우겨우 1938년 남경대학살에까지 왔는데 나는 기진맥진했다. 때맞추어 월간경향지는 사(社)의 사정으로 『土地』 연재를 중단했다. 작가생활 30여 년 게재지에서 작품을 중단하기론 이번이 처음이며 안으로 지쳤고 밖으로 중단의 고배를 마신 것이다. 사정이야 여하튼 나는 나를 추스려야 했다.

-1988년 시집 『못 떠나는 배』의 작가서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