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60년 전, 모리 아리노리가 영어를 국어로 채용하려고 했던 일을 이 전쟁 중 때때로 떠올렸다. 만약 그것이 실현되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일본의 문화가 지금보다 월등히 진보되어 있었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아마도 이번과 같은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들의 학업도 보다 쉽게 진전되어 있었을 것이며, 학교생활도 보다 즐겁게 회상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까지 생각했다. 우리들은 척관법(한 척, 두 척 하는 고전적인 도량형 방식을 말함. 동양 사회의 전통적인 도량형 방식)을 모르는 아이들처럼, 낡은 국어를 모른 채 외국어라는 의식 없이 영어를 말하고, 영문을 썼을 것이다. 영어 사전에 없는 일본의 독특한 말도 잔뜩 생겨났을 것이며, 만요슈도 겐지모노가타리도 그 말에 의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졌을 것이라는 것까지 생각할 수 있다.


만약 60년 전, 국어로 영어를 채용했다고 가정하여,  그 이익을 생각해보면 무수히 많다. 내 나이가 되어 지금까지의 국어와 결별하는 것은 감정적으로는 참을 수 없이 쓸쓸한 일이지만, 60년 전에 그것이 바뀌어 있었을 경우를 상상해 보면, 그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국어를 개혁할 필요는 모두 인정하고 있기에, 최근 그것을 위한 연구회가 생겨나 나는 발기인이 되었지만, 지금까지의 국어를 남긴 채 그것을 고쳐 완전한 것으로 만든다는 것에 나는 비관적이다. 스스로 좋은 방안이 없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이 일에는 매우 비관적이다. 철저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명안이 있을까. 잘 모른 채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듯 하지만, 나는 그 작업에 그다지 기대를 가질 수가 없다.


거기서 나는 이 경우 일본은 큰 맘을 먹고 세계에서 가장 좋은 언어, 가장 아름다운 언어를 가져와 그대로 국어로 채용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한다. 그러한 언어로는 프랑스어가 가장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60년 전 모리 아리노리가 생각했던 일을 지금이야말로 실현한다면 어떨까. 철저하지 못한 개혁보다도 이것은 옳은 일이다. 모리 아리노리의 시대에는 실현은 곤란했다지만, 지금이라면 실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반대 의견도 여러가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국어를 완전한 것으로 고치는 일이 가능하다면 그 이상 바랄 나위가 없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현재 우리들의 감정을 버리고, 100년에 100년 후의 자손을 위하여 결심할 때라고 생각한다.


외국어에 어두운 나는 프랑스어 채용에 자신을 가질 정도로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프랑스어를 생각한 것은 프랑스는 문화가 진보한 나라이며, 소설을 읽어봐도 무언가 일본인과 통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되며, 프랑스의 시에는 와카, 하이쿠 등의 경지와 공통되는 면이 있다고 언급되고 있으며, 문인들에 의해 때때로 정리된 언어라고도 하며, 그러한 의미로 프랑스어가 가장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는 모리 아리노리의 영어채용설에서 그 일을 생각하여, 어중간한 개혁으로 몇 년, 몇십년 동안 불완전한 국어로 잘못되는 것보다는 이 편이 확실하며, 철저한 것이며, 현명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국어의 전환에 대해서 기술적인 면의 일은 내게는 잘 모르는 일이나, 그렇게 곤란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교원의 양성이 완료된 때에 소학교 1학년부터, 그것(프랑스어)로 전환한다면 좋다고 본다. 조선어를 일본어로 전환했을 때는 어떻게 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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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의 '국어 문제'는 쇼와 21년(1946년) 3월 20일에 쓴 글이다. 11년 후, '수필 산케이'의 좌담회 '예술 야화'에서, 이 제안이 의도적인 것이었다는 사실을 시가는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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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패전한 뒤 일본인의 정신적 혼란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른바 '프랑스어 공용화론' 임. 당연히 이뭐병? 수준의 반응이었고 걍 묻혔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