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단에서 나오는 소설들 대부분에서 느껴지는 강박은

정치에 너무 민감하고,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점이야.

이건 한국의 민주화운동에서 큰 축을 담당한 세력이 문인들이었고,

그 사람들이 만든 문예지 <창비>나 <문학과사회> 등이

여전히 한국 문단에서 가장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디어이기 때문이지.

연예인들이 공중파 방송에 얼굴 비추고 싶어 하는 것처럼,

문인들이라면 누구나 그 문예지나 출판사와 계약하고 싶어 할 테니.


내가 한국 문학이 진보 편향적이라고 해서 문제를 삼겠다는 건 절대 아냐.

진보든 보수든 작품만 좋으면 오케이.


그런데 문학의 주제가 진보 '진영'이 요구하는 바와 같아지고,

거기에서 나오는 어떤 경직성 때문에 작품들 전반이 생기가 없다고 느낀다면?

그건 좀 곤란하겠지.


예전에 김금희가 백수린에게 해준 말이 있어.

"니 소설을 읽으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게 옳음을 추구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

정확한 워딩은 기억 안 나지만, 대충 이런 말이었음.

내가 생각할 때, 현재 한국 문학은 정파성에서 생기는 미감의 문제를

윤리학적 옳음의 문제와 동일시해서 보는 패착에 빠져 있어.


나는 한국 진보 진영도 비슷한 오류에 빠져 있다고 보는데,

온라인상의 진보 진영 지지자들도 보수 지지자들의 태극기 집회 모습을 보면

항상 "구리다" 이렇게 반응하잖아.

미적으로 후지기 때문에 옳지 않다고 보는 논리를 갖고 있는 거지.

그게 왜 문제이고, 자신들의 촛불집회와 어떤 점에서 다른지 성찰해보진 않지.


도올 김용옥의 노자 수업을 듣다 보니까

미국 현대 철학의 결론을 이모티즘이라고 말하면서,

결국 옳다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과 같다는 결론에 도달한 게 서양 철학인데,

이미 고대 노자 철학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지혜라고 하면서 방방 뜨면서 말하더라.

너희도 다 알겠지만, 도올은 어느 샌가 진보 진영의 대표적인 지식인이 되었고.

도올도 자신의 철학을 통해

"미적으로 아름답다 = 정치적으로 옳다" 이걸 강조하려고 하더라.


나는 도올이 말하는 이모티즘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

내가 생각할 때는 우리가 미적으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게

어떤 필연적 근거가 없는 것처럼,

우리가 옳다고 믿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도 겸허해질 필요가 있다는 얘기인 것 같거든?

미국의 현대 학문들은 대체로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그런데 한국 소설은 우리가 옳은 이유, 우리가 정치적으로 진보를 선택하는 이유는

그것이 더 아름답기 때문이야, 라는 편협한 주제로 이르는 것 같아.

대표적으로 김금희 소설 보면 그런데,

신형철 평론가로부터 "연대와 연애가 교차하는 지점에 가장 속 깊게 서 있는 작가"라는 찬사를 받잖아.

김금희의 <마지막 이기성>이라는 작품을 읽어봐도

진보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서투른 이기성이라는 남자 주인공에게

미학과 학생인 여자 재일동포가

배추밭을 일구면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게 왜 장기적으로 더 진보가 이길 수 있는 길인지를 보여주거든.

이것도 '미적으로 아름답다 = 정치적으로 옳다'의 도식에 빠져 있는 소설임.


현재 한국 문학에서 쏟아지는 페미니즘 소설들도 비슷한 오류에 빠져 있음.

미학이나 윤리학, 정치학적으로 나올 수 있는 섬세한 질문을

후지다, 구리다, 촌스럽다, 지금은 2020년대다, 이런 식으로 논리로

문학에서 이뤄질 수 있는 논증을 너무 가볍게 회피하고 있음.